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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메르스, 그 후
김형석 칼럼니스트(과학콘텐츠스토리협동조합 SCOOP 대표)
2015-07-14 12:00:00 2015-07-14 12:00:00
김형석 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동네 목욕탕을 갔다. 유난히 물을 좋아하는 작은 녀석도 신이 났다. 생각해보니 여름철에도 한 달에 두 번씩 찾곤 하던 이곳을 거의 한 달 넘게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단골손님이 찾았기 때문일까? 평소 무뚝뚝하던 주인아저씨도 환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 그것은 반가운 인사라기보다는 하소연이었다. “오랜만이네요. 한 달 동안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겨울만큼이야 손님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처음인 것 같네요. 문을 아예 닫아야 하나 고민했었다니까요.”
 
지난 13일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근) 추가 확진자와 사망자가 8일째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 확진 환자가 186명(13일 기준)이나 치료를 받고 있으니 완전 퇴치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진정세는 뚜렷하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메르스 공포는 서서히 물러가고 있지만 동네 목욕탕 주인아저씨의 깊어진 이마 주름살이 펴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동네 목욕탕만이 아니다. 자주 가던 단골 식당도, 가끔씩 들르던 마트도 어김없이 메르스의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여름의 길목, 한국의 거리는 황량했다.
 
여기서 메르스 초기 대응의 허점과 우왕좌왕했던 정부 정책을 새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질책과 질타는 받을 만큼 받았을 테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지겹다. 다만 2002년 사스(SARS), 2008년 광우병 사태, 2009년 신종 플루, 그리고 2015년 메르스 등 짧게는 1~2년, 길게는 5~6년마다 주기적으로 질병과의 전투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또 어떤 ‘녀석’이 우리를 괴롭힐지 그게 걱정일 뿐이다. 우리는 또 어떤 공포와 직면하고, 또 얼마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가, 이런 걱정 말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름조차 생소한 ‘치쿤구니아’라는 감염병이 있는데 정부는 2010년부터 이 감염병을 국내 유입 가능성이 높은 ‘4군 감염병’의 하나로 지정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하던 뎅기열도 2004년 16명에서 2013년에는 252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명 ‘살인 진드기’에 의해 감염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근(SFTS)에 따른 사망자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메르스보다 더 전염성이 높은 감염병이 언제 어디서 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혹은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사람이 이긴 적은 없다. 기원전 430년 정체불명의 역병이 아테네를 덮쳤고, 6세기에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된 페스트(흑사병)는 동로마 제국뿐 아니라 유럽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였다. 이후 14세기 유럽에서는 몽골군이 후퇴하며 성벽 안으로 던진 시체로 인해 페스트가 다시 창궐했다. 유럽인들이 당시 재앙을 ‘대몰살(Great Dying)’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그 참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1918~1919년 스페인 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무려 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건과 의료가 강화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대재앙’은 역사 속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번 메르스에서 목격했듯 한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하다. 메르스는 마치 세력이 약화되는 태풍처럼 이제 소멸의 시점에 와 있지만 그 교훈만큼은 소멸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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