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권을 향한 레이스가 시작됐다. 대선까지 1년 넘게 남았지만, 벌써부터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양대 정당은 경제 문제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소득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을 동일하게 내놨다. 물론 접근법은 완전히 다르다. 경제를 바라보는 양당의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탓이다.
양당 후보가 이런 공약을 내건 이유는 소득 불평등 정도가 엄청나게 심화됐기 때문. 실제로 미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에 따르면 미국 상위 최고경영자(CEO) 350명의 연간 평균 급여는 1630만달러(181억9700만원)에 육박했다. 일반 노동자 연간 임금인 5만3000달러(5900만원)의 300배에 달하는 액수다. 소득 상위와 중위의 격차가 이 정도로 벌어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 1965년만 해도 양측의 소득 격차는 20배에 불과했다. 1978년에는 30배, 1990년에는 60배였다. 그러던 것이 1990~2000년 사이 들어 300배로 뛰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대선을 앞두고 미국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주제는 바로 경제 정책이다. 갤럽이 지난 5월 초 50개 주 18세이상 성인 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6%가 대통령의 경제 공약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헬스케어 정책은 77%, 테러 대처능력은 74%, 대외정책은 61%로 그 뒤를 따랐다.
◇힐러리 큰 정부론, 부자 증세·최저임금 인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 고유의 ‘큰 정부론’에 입각한 정책을 선보였다. 그중 힐러리가 내놓은 핵심공약은 증세와 중산층 감세를 축으로 한 세제개혁이다. 부유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세수를 확보한 뒤, 공공지출을 확대하겠다는 것. 기업의 세금탈루를 막는 한편, 근로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힐러리는 최저임금 인상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민층 표심과 국제서비스노조연맹(SEIU)의 지지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 7일 힐러리는 ‘15달러를 위한 투쟁(Fight for $15)’이란 행사에 모인 1300여명의 패스트푸드 종사자들에게 최저임금 인상 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힐러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챔피언”으로 자처하며 본격적인 유세 활동에 돌입했다. 지난 13일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뉴욕 이스트리버 루스벨트섬의 포 프리덤스 파크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불투명했던 경제 공약을 구체화했다. 힐러리는 “미국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중산층 경제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며 “공장 노동자, 종일 서있는 음식 서비스 직원, 밤을 지새우는 간호사, 수 시간 동안 운전하는 트럭 드라이버, 우리를 먹여주는 농부, 나라를 지켰던 베테랑 용사들을 위한 정책을 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힐러리 대항마 젭 부시, 감세·재정감축 주장
힐러리의 대척점에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있다. 젭 부시는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15%의 지지를 얻으며 당내 1위에 올라 힐러리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젭 부시가 전면에 앞세운 것은 ‘4% 성장론’이다. 그는 공화당 출신답게 “재정 감축과 감세를 도입하면 기업 활동이 살아나 4%에 달하는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힐러리가 공공지출을 통한 경제 성장을 꿈꾼다면 젭 부시는 정부의 활동을 최소화하고 경제는 시장에 맡기는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여기에는 감세로 시장 친화적인 환경이 조성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중산층의 부 또한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란 논리가 깔려있다. 중산층 부흥책에는 교육개혁도 포함돼있다. 교사의 책임성과 학교 선택권을 강화해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겠다는 것. 앞서 그는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하면서 경험했던 바를 소개하며 자신의 주장이 공허한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15일 젭 부시는 출마 연설을 통해 “나는 재정 감축과 감세, 교육개혁과 투자유치로 플로리다 주 경제를 살린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또 젭 부시는 “미국에 1900만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미국 경제를 증권시장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서민층에 어필하기도 했다.
젭 부시는 감세 기조를 강조하는 만큼, 정부 자금을 푸는 식으로 경제를 살리는 경기부양책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부시는 “민주당은 최대로 불어난 부채, 중산층에 대한 엄청난 증세, 유례없이 느린 경제 회복 등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오바마케어 확대와 소수자 취업혜택 등 공공지출이 발생하는 정책을 거부하면서 힐러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양 후보, 암초에 걸릴 수도
양 후보는 이처럼 상대 후보를 견제하면서 자신이 지닌 강점을 내세우고 있다. 상대 공약이 지닌 맹점을 지적해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아울러 양 후보는 내부 문제를 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힐러리는 과거 국무장관 시절에 받은 이메일 수천개를 지워 입방아에 올랐고, 가족 소유 재산이 외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뇌물성 후원금을 받았다는 스캔들에도 휩싸였다. 지난 3월 힐러리의 국민 지지율이 59%에서 53%로 급감한 것도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젭 부시는 보수당 인사들이 정체성 문제를 제기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대 대선 후보인 스콧 워커 주지사, 마르코 루비아 상원의원, 렌드 폴 켄터키주 상원의원과의 경선에서 승리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어 갈길이 멀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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