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올해가 87년 민주항쟁 28주년이다. 대표적인 NL계로 활동하다 전향했고, 최근에는 옛 동지들인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주도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벌써 시간이 그만큼 흘렀나 싶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지난 시간을 되새겨봤다. 민주화·통일운동을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방법론적으로 틀렸다는 후회가 겹친다. 통진당 해산은 역사적 심판이고 사필귀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지들이 길을 잃었고, 잃게 놔뒀다는 점에서 미안하고 책임감도 느낀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와 '80년대'가 본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을 어떤 가치로 살 것인가 고민한 결과다. 우리 세대가 그랬지만 시대적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20대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 우리 세대 다수가 국가 시스템에 회의를 가졌고 그 문제를 깊이 고민한 결과,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는 데 헌신하고 자기 삶의 방향을 맞추자고 마음 먹게 만들었다. 우리 때는 그게 자연스레 내면화됐다. 현대사에서 우리 세대만이 가진 특징이자, 다른 세대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지점이다. 나도 우리사회의 문제 전반을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PD와 NL계열 중에 왜 NL을 선택했나.
▲평소 민족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분단 조국에서 태어난 탓일 텐데, 내가 생각해도 당시의 나는 노동문제보다 통일문제가 더 중차대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후 진로에 대해 어떻게 고민했나.
▲나는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의 실상을 확인하고 노선을 바꾼 경우다. 우리 때 용어로 말하면 스탈린식 좌파(PD), 김일성식 좌파(NL)와 모두와 결별했다. 내가 믿었고 그대로 혁명해야 한다고 믿었던 길이 틀렸음을 알았기 때문에 전향에 망설임은 없었다.
-전향 후 주위의 반응은.
▲진로를 바꾼 후 당연히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이해해준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동지들을 설득하려 했고 논쟁을 많이 했지만 설득은 잘 안 됐다. 설득이 얼마나 안 됐느냐 하면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설득하고 다녔는데 통진당 해산할 때까지도 설득이 안 되고 남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
-다시 80년대로 돌아가도 운동을 할 것인가.
▲다시 80년대 돌아간다면 운동할 것이다. 그 시대는 그런 시대다. 나는 80년대를 평가할 때 민주화 운동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반면 운동권 내의 반민주적인 요소는 제거해야 했다. 다시 말하면 방법론적으로 틀렸다는 얘기다. 통진당만 봐도 이석기에 대한 추종이 민주적인 것인가. 한총련 의장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방법론적으로 옳을까.
아울러 이념을 추구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었다. PD든 NL이든 폭력성이 짙었다. 사회주의 기본 이념이,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는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도 폭력혁명을 주장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전향하고 보니 그것도 반민주적 요소다.
-제도권에 들어간 86세대가 제 역할을 못 했다는 비판이 많다.
▲86세대가 제 역할을 못한 것 맞다. 86세대가 16대 총선, 열린우리당 창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정치권에 대거 입성했다. 당시에는 개혁적이었겠지만 지금까지 연명한 사람은 드물다. 이 사람들은 내가 봐도 참 한심하다. 나는 전향할 때부터 알아봤지만, 이들은 무소신·무용기·무능 등 3무(無)다. 계파만 찾고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목소리도 없고, 문제해결 능력도 없다. 바른 소리를 외칠 용기도 없다.
과거 운동권의 장점은 내팽개치고 집단 속에서 반민주적 요소만 그대로 가지고 갔다. 그때부터 그들의 임무와 역할이 끝났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가리켜 퇴출대상이라고 말했다. 한때 진보가 영원한 진보가 아니듯 과거 개혁적인 86은 이제 수구 86이 됐다. 제대로 된 86이라면 3유(有), 소신과 용기, 능력을 갖춰야 한다.
-본인은 그들과 다르다는 말인가. 어느새 제도권 86인데.
▲나 역시 86 출신이다. 86 전체에 대한 비판과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나는 누구보다 먼저 자아비판하고 혁신했다. 누구보다 80년대를 치열하게 경험하면서 극복해야 할 것에 대해 먼저 깨닫고 잘못된 것은 반성했다. <데미안>을 보면 '알을 깬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는 젊은 시절에는 민주화를 위해, 이후에는 자아비판을 통해 알을 깼다. 헤겔의 정반합에 비유하면 학생운동은 '반', 지금은 '합'을 지향한다.
-언론 인터뷰를 보면 의정활동 중 가장 잘한 일로 통진당의 해산을 꼽았다.
▲그건 역사적인 일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한단계 높였다. 내 의정활동의 기조는 80년대 문제의식은 여전히 가지면서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이끌고 혁신을 이루되 반민주적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진당은 80년대 반민주적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가는 집단이다. 통진당 해산을 제2의 민주화라고 부른 이유다.
내가 전향 후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한 것도 반민주적 요소를 없애야 한다는 지론에서 비롯됐다. 내가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에서 정부를 비판한 것도 역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노래를 정부 방침에 따라 안 부르게 하는 게 반민주적이어서다.
-80년대 시대정신이 민주화·통일이었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뭐라고 보나.
▲통일과 평등이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는 반드시 위기가 올 수 있다. 평등 관련해서는 복지와 경제적 평등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복지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다. 새롭게 대두되는 유아와 노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자기 꿈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잘 알고 대화와 교류를 많이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북한 TV와 노동신문을 막고 북한 사이트 접속도 막는데 이것도 다 열어야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우리 인터넷과 TV를 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다. 내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정부 때 방북과 대북 투자를 금지한 5.24조치는 문제가 많다.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이 이명박-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보다 낫다는 말인가.
▲통일운동 측면에서 보면 DJ와 참여정부의 북한정책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다만 DJ와 참여정부는 북한 인권문제에 접근하는 측면은 소홀했다. DJ와 참여정부가 북한의 무력공격에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도 문제지만, 남북한 교류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가 양보하려고 했던 점은 칭찬할 만 하다. 강약 조절이 조금 아쉬웠다.
-청년세대 스스로 5포세대라고 말한다. 이제 기성세대가 된 86세대가 청년세대의 몫을 뺐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년세대의 몫을 뺐었다고 하면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청년세대와 우리에게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리는 80년 광주와 87년 항쟁을 겪으면서 공적 마인드를 가지게 됐다. 그런데 요즘 청년세대는 공적 마인드를 가질 경험을 못 했다. 지금 20대를 보면 개인주의가 강하다.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하는, 특히 집단으로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다. 우리는 지금 20대에게 장애물이다. 나는 그걸 인정한다.
우리는 이제 고착화된 기득권이다. 우리가 선배들에게 격렬하게 도전했듯 지금 20대는 우리에게 격렬하게 덤벼야 한다. 하지만 동력을 못 만들고 있다. 구조적 또는 개인적 문제일 수 있지만 어쨌든 조금 더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를 역사에 던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 어렵게 살더라도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과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87년 항쟁, 국가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이다. 근대화 세력의 공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박정희는 민족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지도자다.
최병호·이순민 기자 choib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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