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간첩 증거조작'…결국 '윗선'은 빠져나가
이 모 처장 등 벌금·선고유예로 감형
확정시 공무원 신분 유지 가능
2015-05-21 15:55:09 2015-05-21 15:55:09
희대의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 사건에 관여한 국가정보원 전·현직 직원들이 항소심에서 벌금형 및 선고유예로 대부분 감형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상준)는 20일 검찰이 증거조작의 '최종 윗선'으로 지목한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모(55·3급) 처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처장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허위 확인서를 발급한 이인철(49·4급) 주선양총영사관 영사와 이를 지시한 권모(51·4급) 전 국정원 과장에 대해서는 벌금 7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역시 1심에서 선고된 집행유예 보다 낮아졌다.
  
형량이 낮아진 결정적 이유는 재판부가 모해증거위조 혐의가 적용된 <이인철 명의 확인서 및 사실확인서(2013.9.27)>와 <이인철 명의 확인서(2013.12.17)>를 '증거'가 아닌 '진술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형법에서 증거위조죄의 '위조'는 문서위조 개념과 달리 '새로운 증거의 창조'를 의미하고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허위의 진술을 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이들은 새 증거를 창조한 게 아니고 수사기관에 허위 진술한 것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모해의 목적을 불문하고 증거위조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선고유예…'개전의 정상' 있었나
 
그러나 공문서를 조작한 수사기관의 '윗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해증거위조 혐의를 무죄로 보더라도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혐의는 여전히 '유죄'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고유예'란 경미한 범행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던 일(면소)로 해주는 처분이다.
 
형법 59조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피고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개전의 정상이 현저할 때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증거조작으로 재판이 방해 받고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으며, 피해자 유우성(35)씨는 피고인들의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또 수사단계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들이 줄곧 혐의를 부인한 점을 고려할 때 선고유예를 할 만큼 '개전의 정상'이 있었는 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재판부도 "재외공관 공문서의 신용을 담보해야 할 영사확인서 등을 대공수사에 변칙적으로 이용해 허위공문서를 작출하게 하여 재외공관 공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시정을 위해 피고인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길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조직적으로 증거 위조에 가담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들 3명은 전·현직 국정원 직원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일부 무죄' 국정원 김 과장, '범행 자백' 협조자 형량 늘어
 
반면 재판부는 증거조작에 직접 가담한 자들을 더 무겁게 처벌했다.
 
증거조작을 주도한 국정원 김모(49) 과장에 대해 <이인철 영사의 확인서(2013.12.17)> 관련 모해증거위조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징역 4년으로 형을 가중했다. 1심에서는 징역 2년6월이 선고됐었다.
 
재판부는 "화룡시 출입경기록의 위조 사실이 드러날 상황에 처하자 대담하게도 회신공문을 추가 위조하는 등 무려 5개의 문서를 위조했다"면서 "위조 증거로라도 대공수사에 공을 세우고자 한 잘못된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국정원의 신뢰를 훼손시켰으며, 한중 외교관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며 "협조자 김씨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심히 불량하다"고 강조했다.
 
또 김 과장과 공모해 증거조작을 직접 실행한 조선족 협조자 김모씨에 대해서도 징역 1년2월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으며, 또 다른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도 징역 8월에서 1년6월로 형을 늘렸다.
 
한 변호사는 "협조자 김씨가 자백하지 않았다면 조작 사실이 이렇게 밝혀지기 어려웠을텐데 오히려 형량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유우성씨의 변호인은 "변호인 측이 해당 영사확인서를 동의했다면 증거로 채택됐을텐데 진술서로 본 것은 아쉬운 판단"이라며 "영사확인서가 증거인지 진술서인지 판단한 첫 사례로 알고 있어 대법원 판단을 받아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공판검사도 증거조작에 관여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공판검사가 확인서가 허위로 작성되는 것을 승인하거나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씨가 지난 2013년 1심에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후 시작됐다.
 
유씨의 여동생 유가려씨가 "오빠는 간첩"이라는 진술을 뒤집으면서 유일한 유죄 증거가 사라지자 수사기관은 유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드나들었다는 출입경기록을 확보해야 했다.
 
국정원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비공식 루트로 문서를 입수해 2013년 11월 검찰을 통해 법정에 제출했으나, 결국 위조된 문서라는 사실이 중국대사관을 통해 공식 확인됐다. 
 
결국 검찰은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 등 위조 증거를 모두 철회하고, 당초 유가려씨의 진술대로 "(유우성씨가) 두만강을 도강(渡江)해 북한으로 건너갔다"고 공소사실을 바꿨다. 유씨는 항소심에서도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국정원 /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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