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복면을 쓴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의 두 사람이 본사를 급습하여 총기를 난사한 것이었다. 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총을 쏘았고, 이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상처를 입었다. ‘샤를리 에브도’는 과격한 풍자로 유명한 주간지였는데, 그동안 표현의 자유란 이름 아래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가리지 않아 온 곳이었다.
가령 이슬람교도 대다수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묘사를 금해야 한다고 믿고 있음에도, ‘샤를리 에브도’는 묘사를 넘어 조롱으로 느껴질 수 있을 과격한 풍자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에 그들은 수차례 테러 협박에 시달렸지만,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외길을 걸어오다가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국내외에선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샤를리 에브도 만평. 캡쳐/바람아시아
표현의 자유와 신성모독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샤를리 에브도처럼 줄곧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걸어온 한 인물이 있다.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일어나기 27년 전, 한 소설가가 발표한 작품이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 『악마의 시』라는 소설이다. 1988년 발표된 이 소설은 이슬람교를 모함한다는 이유로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나중엔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저자를 처형하라는 ‘파트와’라는 칙령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살해위협으로 영국의 보호 아래 오랜 기간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이 도피생활은 1~2년 만에 끝나지 않았다. 그는 무려 10여 년 동안 도망 다녀야 했으며, 호메이니 사후 취임한 모하메드가 저자의 처형선고를 철회한 뒤에야 도피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논란이 된 소설을 쓴 사람이 바로 『조지프 앤턴』이다. 사실 ‘조지프 앤턴’은 그가 사용했던 가명이었고, 실제 이름은 ‘살만 루슈디’다. 이 책은 기나긴 도피생활을 망라한 그의 자서전이다.
사진/바람아시아
살만 루슈디는 1947년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이슬람교도 가정이었으나 무신론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이에 루슈디도 무신론자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 ‘아니스 아흐메드 루슈디’에게 받은 영향이 컸다. 루슈디 아버지의 원래 이름은 ‘과자 무함마드 디 칼리키 델라비’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루슈디’라는 성을 만들어 개명했다. 이는 아니스가 동경하는 아랍인 철학자 ‘이븐루시드’ 때문이었다.
서양에서는 ‘아베로에스’라 불리는 이 철학자는 “당대의 이슬람 문자주의에 반기를 든 합리주의적 논증의 선봉에”(40) 서 있었고, 아니스는 이 모습을 존경했다.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종교, 특히 이슬람교의 탄생에 관심이 많았다. 맹목적 믿음보다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루슈디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깃발, 그것은 “지성과 논증과 분석과 진보를, 신학의 굴레를 벗어난 철학과 배움의 자유를, 인간의 이성을, 그리고 맹목적 신앙이나 순종이나 수용이나 정체(停滯)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41)
아니스는 열세 살 먹은 루슈디를 영국으로 데려갔다. 본격적인 영국생활의 시작이었다. 이후 루슈디는 인종차별적인, 자신을 ‘타자’로 규정하고 배제하려는 환경 속에서 인도와 영국을 두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생활해야 했다. 루슈디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외길을 갈 수 있게 한 고집스러움과 집요함은 이런 경험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 외곬의 기질은 생존을 위해 그가 터득해야 했던 지혜였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루슈디는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그는 특히 이슬람과 관련된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 시절부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루슈디는 대학을 졸업한 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1975년 『그라머스』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고, 1981년 두 번째 작품인 『한밤의 아이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이때부터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무신론자였지만 종교와 믿음에 관해 꾸준히 호기심을 가져온 그였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호기심에, 그동안 성찰해온 이슬람교에 관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승화시켜 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였다. 이 욕구는 그에게 기나긴 도피생활을 하게 할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게 했다.
1988년 완성된 『악마의 시』. 런던 펭귄 출판사에서 9월 26일에 출판된 이 책은 곧 이슬람 세력에게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루슈디는 소설 속에서 이슬람교를 모티브로 삼아 무엇이 어떻게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지를 물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이슬람 신자들은 그가 이슬람을 모욕했다고 여겼다. 무슬림 국가들은 이 책의 판매를 금지했으며, 여기저기서 이 책과 루슈디를 두고 과격한 시위가 발생했다.
“루슈디는 죽은 목숨이다! 시위대는 그렇게 외쳤고, 처음으로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이 폭력을 낳았다. 이튿날 카슈미르에서도 (...) 폭동이 일어나 다시 한 남자가 목숨을 잃었다.”(183)
그리고 1989년 발렌타인데이 날에 이란의 지도자는 파트와라는 종교 칙령을 발표했다. 이슬람 지도자가 이 명령을 내리면 이는 이슬람 율법과 동등한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루슈디를 살해하려는 암살단이 꾸려졌다. 10여 년간의 도피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방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의 아들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무슬림이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원인은 책 한 권, 이슬람교를 모독한 책 한 권이라고 했다. 몇 시간 후 아들은 문서 한 장을 들고 이란 텔레비전 방송국에 도착했다. 파트와 (...) 노인의 아들은 아버지의 칙령이라면서 이 글을 읽었고 아무도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183)
여기까지가 책의 1/5 가량의 이야기다. 이후로 루슈디는 영국 특수부의 삼엄한 보호 아래에서 생활을 해나간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글을 꾸준히 쓰고, 표현의 자유를 외쳤으며, 파트와를 철회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표현의 자유 옹호와 종교적 극단주의 비판이란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의 도움 속에서 지내온, 숨 막히는 10여 년의 도피생활이 나머지 600페이지에 걸쳐 세세히 묘사되어있다. 루슈디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자유로운 창작의 전제 조건은 자유롭다는 믿음이다.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은 자신의 작품을 진정성의 산물로 인정해주리라는 믿음이다.”(161)
“남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신념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참된 자유다. 그래서 자유로운 사회는 평온하지 않고 항상 소란스럽다. 진실로 자유로운 사회는 온갖 의견이 충돌하는 저잣거리 같은 곳이다.”(277)
“누가 이슬람교의 호전성이나 신격화된 지도자를 비판하면 편견이라고 한다. 이른바 혐오증을 가진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극단적이고 불합리하기 마련이니 잘못은 그쪽에 있다. 전 세계 신도의 수가 10억을 헤아리는 신앙체계에 문제가 있을 리 없다. 10억 신도의 판단이 틀렸을 리 없으니 비판자는 미치광이가 분명하다. 그러나 루슈디는 묻고 싶었다. 어떤 종교이든 간에 종교를 싫어하는 것이 언제부터 불합리한 일이 되었나?”(449)
책에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화두는 단연히 ‘표현의 자유’다. 자서전을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루슈디의 이야기’라고. 루슈디는 그저 소설을 한 편 발표했을 뿐인데, 이 소설을 이슬람계는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였고 그를 죽이려고 했다. 이 책을 번역하던 이탈리아와 노르웨이의 역자는 누군가에게 습격당했으며, 일본인 교수는 살해당했다.
우리는 당연히 표현의 자유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는 따져보아야 할 문제가 많다. 가령 모집단의 각종 혐오발언은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명제이냐는 질문을 제기한다. 어느 학생이 세월호 희생자를 두고 어묵 인증사진으로 비하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한 부장판사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저 학생을 두둔했다. 아마 저 부장판사는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희생자에 대한 비하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YTN뉴스 장면. 캡쳐/바람아시아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하니까 소수자와 약자를 혐오하는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걸까? 표현의 자유가 중요시되던 역사적 상황을 보자. 한국에선 많은 사람이 해방 전후부터 87년까지 민주주의를 견인하고자 표현의 자유를 외쳤다. 당시 표현의 자유는 아무 말이나 던질 권리만을 뜻하진 않았다. 삶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공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한다는 문제의식과 깊이 결부된 권리였다.
자유주의의 고전인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나 밀의 『자유론』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특정한 문제의식과 관련된 말이었다. 밀턴은 영국 의회파의 출판허가명령이 진리의 발견을 막는다며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은 개인의 사적인 삶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다수의 횡포가 만연할 사회를 우려하며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가 등장한 역사적 맥락을 보면, 이는 더 나은 사회와 삶을 추구한다는 문제의식과 관련 있는 것이었다. 결국, 어떤 맥락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냐는 질문, 무엇을 위한 표현의 자유냐는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루슈디는 어떤 맥락 속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걸까? 그의 의도는 종교를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것에 있진 않았다. 『악마의 시』는 조롱의 산물이라기보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종교의 탄생에 관한 호기심의 산물이었다. 그는 성찰을 통해 소설을 진지하게 썼으며, 이 소설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문학’임을 강조했다.
“소설 속에서 가공의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이슬람교 이야기를 참고했다. 제일 잘 아는 사례였기 때문이다.”(356)
반면 어느 학생이 어묵 인증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의 의도는 오랜 성찰 끝에 내놓은 결론이라기보다는 타인을 향한 근거가 부족한 혐오와 비난에 가까웠다. 『악마의 시』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지만, 이는 어묵 인증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준 ‘피해’와는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루슈디는 많은 이슬람인의 반발을 샀고, 또한 그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우리는 루슈디의 말처럼 극단주의가 옳지 않음을 알고,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며 그 자유 속에서 벌이는 경합의 과정이 중요함을 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서구의 사유 체계’ 속에서 당연한 일이지, 다른 곳에서는 다를 수 있다.
논어(論語)의 위령공(衛靈公)편에서 공자는 자공에게 “서(恕)가 아닐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其恕乎己! 所不欲, 勿施於人.)고 말했다. 여기에서 ‘나’와 ‘타인’사이에서의 기준은 ‘나’로부터 나온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원치 않는지를 진지하게 숙고한 뒤에 이를 미루어 남을 대하라는 것이다. 루슈디의 행동이 이와 같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종교의 탄생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고, 나중에는 이를 소설로 풀어쓰고 싶어 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강요한 것도 아니었고, 제 진지한 생각을 소설이라는 예술적 장르로 단지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옳다는 전제하에 이런 행위가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책을 출판했다. 이 일련의 행위에서의 기준은 영국에서 자라온 루슈디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 신자들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과 남이 그런 것이 항상 같지 않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공자와 달리 장자(莊子)는 다른 원칙을 제시한다. 장자는 지락(至樂)편에서 공자가 제시한 서(恕)의 한계를, 공자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공자는 안연에게 노나라의 바닷새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바닷새가 노나라 교외에 내려앉자 임금은 새를 맞이하여 잔치를 열고, 좋은 음악과 음식으로 대접한다. 하지만 새는 슬픔 속에서 사흘 만에 죽고 말았다. 이에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자신을 기르는 식으로 새를 길렀을 뿐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탓이다.”(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여기에서 서(恕)는 새를 죽인 원인이다. 장자는 자신이 원하는 게 아니라 남이 원하는 걸 그에게 행하라고 말한다.
장자의 이야기는 공자의 ‘서’(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실마리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관계에서의 기준이 ‘나’보다 ‘너’에게 있으므로, 공자의 경우보다 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관계의 소통이 더욱 원활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루슈디에게 부족했던 것도 ‘남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장자가 제시한 원칙에도 한계는 있다. 이 원칙은 ‘나’와 ‘너’라는 도식 위에 그려진 그림이므로, 존중받아야 할 ‘나’가 배제되어있다. 이 경우 남을 배려하기만 해야 하는 ‘나’가 겪어야 할 어려움과 폭력이 감춰져 있다. 이 원칙은 배려받아야 할 ‘너’와 ‘너’가 아니라 배려하고자 하는 ‘나’와 ‘나’가 만났을 때에야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 그래야 ‘나’는 일방적으로 남이 원하는 걸 고려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동시에 남에게 배려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원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바람직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남이 원하는 것이 나에게 폭력으로 다가오거나,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게 명백한 경우다. 가령 이슬람 문화권의 열악한 여성인권이나, 종교를 향한 극단주의, 루슈디와 같은 사람들을 살해하고자 했던 폭력성까지 배려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열악한 여성인권처럼 우리가 보기엔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네들에겐 몸속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문화요소여서 이를 비판하는 것마저 폭력이 될 수 있는 경우다. 히잡을 쓰는 이슬람 여성을 두고 마냥 비판하거나 벗을 걸 강요하는 행위는 옳지 않지만, 우리는 히잡이 여성인권과 관련하여 좋지 않은 문화임을 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과도한 설득, 비판, 강요보단 어떤 삶이 더 좋은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어느 정도 열려있는 사람에게라면 히잡을 두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그게 왜 좋지 않은 지를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의 변수에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문제에서 시간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자유롭고 인권이 보장되는 삶이 어떤 건지를 계속 보다 보면 히잡을 쓰던 여인도 뭐가 더 좋은 삶인지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최근 들어 히잡을 벗어던지는 이슬람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표현의 자유를 향한 루슈디의 언행에 지지를 표하며 그가 가지고 있는 신념에도 동의한다.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이야기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을 하는 문화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므로, 표현의 자유라 해도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제 의도가 저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게 아니었다고 해도, 저들이 그렇게 받아드릴 여지가 있다면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는 있었다. 루슈디의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취해야 할 신중함과 조심스러움이라는 책임일 것이다.
ps : 무려 800페이지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보니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는데, 이는 난잡해 보이는 글의 문체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아마 루슈디는 과거의 상황을 세세히 묘사하는 데 신경 썼지 흐름에는 크게 신경 쓰진 않은 것 같다. 가령 A 이야기를 하다가 B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가 C 이야기를 하다가 A로 다시 돌아오는, 자주 뚝뚝 끊기는 글의 흐름은 이 책의 단점이다. 그래서 몰입이 쉽지 않은 책이었다.
반면 익살스러운 만담꾼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래서 인물 이름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제 인생을 더 객관적 시선으로 묘사하고자 3인칭으로 잡고 글을 써내려간 시도도 흥미로웠다. 다만 3인칭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자기 자랑과 불륜에 대한 자기변명과 합리화는 오글거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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