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하균의 오랜 팬으로서, 불만이면서도 묘하게 자랑스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바로 그가 작품에서 맡는 역할들이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우리 형>에서 구순구개열 장애인, <예의없는 것들>에서는 벙어리 킬러, <박쥐>에서는 모자라고 병약한 마초, <박수칠 때 떠나라>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는 희대의 싸이코패스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11월에 오직 ‘신하균’의 이름만 믿고 보러 갔던 영화 <빅매치>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광기로 똘똘 뭉쳐 사람 목숨을 건 게임을 설계하는 그의 목소리며 제스쳐 하나하나가 “역시 신하균”이라는 감탄을 불러일으켰으니 말이다.
그런 그의 영화중에서, 딱 하나 내가 보기 겁났던 영화가 있다면 바로 <지구를 지켜라>였다. 신하균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렇게 물어본다. “<지구를 지켜라> 봤겠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잔인한 장면이 겁났고, 좀더 솔직해지자면, 그의 영화 중 싸이코패스 연기의 최고 걸작으로 뽑히는 그 작품이 혹시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었다. 몇 년을 망설이다가, 며칠 전 비오는 밤 불쑥 영화를 볼 용기가 났다.
◇'지구를 지켜라' 포스터
영화는 듣던 대로, 천진난만한 포스터가 무색하게 굉장히 잔인하고 슬펐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할 것이라 믿는 병구는 어느 날 자신이 일했던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을 납치하고, 온갖 엽기적인 고문을 통해 그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고문을 견디다 못한 강 사장은 병구의 수집 자료를 훔쳐본 후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미게 된다. 한편, ‘개코’ 주 형사와 김 형사는 강 사장 납치사건의 냄새를 맡고 병구의 집을 찾아 간다. 피가 튀고, 화면은 시종일관 검거나 짙은 초록빛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2003년 작이다. 10년도 더 된 영화라는 얘기다. 충격적인 것은, 영화 속 병구(신하균)가 겪었던 차별, 고된 노동과 그에 반해 눈곱만큼도 개선되지 않는 삶, 노조 투쟁 과잉 진압, 부당 해고 등의 처참한 모습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토씨하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카트’를 끌던 엄마들은 부당하게 해고되고, 정리해고 무효소송을 걸었던 수천의 노동자들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래서 병구는 ‘외계인’이 지구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벌어지는 상황에 비해, 차라리 그 가설이 믿을 만하다.
“너흰 절대 날 못 이겨. 난 너 같은 병신XX들한텐 한 번도 진 적이 없거든. 넌 아직도 겁나지? 약이 없으면 나한테 가까이 오지도 못 하잖아. 너 같은 겁쟁이는 결국 지게 돼 있어.”
병구가 외계인으로 추측하고 납치한 유제화학 강만식 사장(백윤식)이 어금니를 시리게 깨물면서 반복적으로 토해내는 이 외침은 ‘갑’의 고압 그 자체다. 병구는 생니를 뽑고, 손등을 못으로 뚫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강 사장을 신체적으로 위압하면서도 그가 이렇게 외칠 때마다 두려움을 감추지 못 한다.
영화 내내 주로 high angle(카메라가 피사체보다 위에 위치한 상태)로 강 사장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그가 이 대사를 할 때 마다 자연스레 low angle(카메라가 피사체보다 아래에 위치한 상태)로 전환된다. low angle로 강 사장의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강 사장에게 느끼는 병구의 위압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젊고, 건강한데다 잘생기기까지(솔직히 잘생겼다) 한 병구의 신체를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 자체인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에 기인한다. 강 사장의 “니 엄마, 니 애인을 내가 죽였냐”는 발악에는 계급의 꼬리에서 잔챙이처럼 우글대는 움직임이나 겨우 보이는, 수백, 수천의 병구에 대한 ‘상위 계급’의 무지가 깔려 있다. 계급의 꼬리에서 올려다 본 꼭대기는, 범접할 수 없게 아찔한 두려움이리라. 최근 어떤 사건은 너무나 간단하게 이 두려움을 사회 표면으로 끌어올렸다. 이른바 ‘땅콩 리턴’ 사건.
땅콩 한 봉지에 격분해 승객 250명이 탄 비행기를 돌아 세운, 돌아 세울 수 있었던 그 여자의 오만한 ‘갑질’은 승무원과 사무장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 수십 명의 승무원과, 250명의 탑승객이 한 사람의 말에 찍소리 못 하고 회항했다.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병구가 강 사장을 외계인이라고 판단했을 법도 하다. 내 눈에 ‘땅콩 리턴’의 장본인은 외계인보다도 이상해 보였으니 말이다. 뉴스와 SNS에서는 이를 ‘충격적인 사건’으로 대서특필하며 난리지만, 사실은 다들 아는 뻔한 얘기다. 뻔한 반복이다.
“알아? 다 안다고? 그래… 다 알 수 있겠지. 뻔한 얘기니까. 근데 다 알면서 어디 있었는데? 내가 미쳐갈 때 어디 있었어. 니들이 더 나빠. 니들이 죽인거야.”
병구가 미쳐 연쇄살인마가 되는 동안, 우리는 강 사장의 무지를 봤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봤다. 다 봤고 이해했다 생각했는데 병구는 또 발악한다. “니들이 더 나빠, 니들이 죽인거야”라고. 강 사장 잘못이고, 좀 더 크게 보자면 금수저 물고 태어난 윗선의 잘못이고, 조 전 부사장의 ‘갑질’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창피해지는 순간이다. 당연하다 믿고 내버려둔 우리가 까발려졌으니 말이다. 내버려둔 동안, 악(惡)이 발악을 낳았다.
병구의 발악은 질척이면서 무거운 갯벌 같다. ‘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순응이거나, 혹은 미치거나, 둘 중 하나인 셈이다. 그래서 목숨을 끊은 그 셀 수 없는 노동자들이며 그 불길보다 까맣게 타들었을 재개발 철거민들의 속, ’을‘의 발악은 결국 혀를 내두를 ’미친 짓‘이 되고, 급기야는 ’뻔한 얘기‘로 전락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가 죽인 걸까.
영화는 충격적 반전으로 귀여운 포스터에 ‘낚여’ 들어온 관객들을 마지막 멘붕 상태에 빠뜨리며 끝난다. 아마 이것이 장준환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배우들이 하나하나 모두 빛났고, 결국 나도 ‘신하균 영화’라면 <지구를 지켜라>를 첫 번째로 꼽을 결심이 섰다. 영화를 끄고 먹먹한 방에 빗소리만 들으며 앉아 있자니, 병구의 대사가 자꾸 귀에 맴돌았다. 짧은 생 동안, 선택하지 않은 고통에 죽도록 몸부림쳤을 그다.
“다 똑같애.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결국엔 다 불게 되지. 고통이라는 건, 절대로 익숙해질 수가 없거든.”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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