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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여, 고통을 즐겨라? 우리가 무슨 변태인가요?"
새파란 외침
2015-01-14 19:48:03 2015-01-14 19:50:42
‘취업난’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월평균 20대 인구는 631만 2천 명. 이 가운데 경제활동인구는 399만 명인 63.2%로 집계되었다.
 
여기서 집계된 실업자 수는 36만 6천 명으로, 전체의 9.17%를 차지한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어진 경기불황의 여파로 기업들은 연이어 몸집을 줄이고 있으며, 채용에 있어도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의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나날이 고공행진을 벌이며 상향 평준화되어가고 있는 스펙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이름만 청춘인 이들은 토익 실전서와 자격증 서적을 붙들고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
 
‘혼밥’(치열한 학점경쟁과 취업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청하여 혼자 밥을 먹는 일을 일컬음), ‘밥터디’(자취생이나 고시생 등이 식사시간에 모여 밥만 함께 먹고 헤어지는 모임), ‘민달팽이’(값비싼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주거가 불확실한 청년 세대를 껍데기 집이 없는 민달팽이에 빗대어 표현)와 같은 신조어가 이 세대를 수식한다.
 
불황의 한파가 불어 닥친 엄동설한에, 단단히 걸쇠를 걸어 잠근 취업문을 부수고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취업 준비생 A를 만나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요즘은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많지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취업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스물넷 취업준비생입니다. 내년이면 스물다섯이네요.
 
-취업에 관련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요새는 제 스펙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부족한 것 같아서, 스펙을 좀 더 올리려고 노력 중이에요. 무조건 지원을 많이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요. 특히 영어점수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데요. 저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원하는 점수대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이 많아요. 그리고 컴퓨터 자격증도 준비하고 있어요.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시간을 분배하는데 어려움이 커요. 대외활동으로는 모 기업 마케팅 서포터즈로 활동 중인데요. 제가 요즘 마케팅 부서로 지원할지, 기획 쪽으로 지원할지 고민 중이어서 이 활동을 지속할지 말지도 고민이에요. 항상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니까요. 나이도 스펙이라는 말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해야 할 걸 생각하다 보면 하루가 가는 것 같아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크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가 않아서, 과외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거든요. 사실 10월 까지만 해도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요. 그만뒀어요. 아르바이트랑 취업 준비를 동시에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했죠.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미운 마음이 생기는 저 자신이 싫기도 했어요. 집안 사정이 좀 더 좋았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에 다녀올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 거죠. 일단 그게 큰 경험이기도 할 거고, 영어점수에 대한 부담이 좀 줄기도 할 거니까요. 사실 이런 생각하는 자체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알아요. 졸업을 유예하고 부모님께 생활비에 학원비까지 손 벌리고 있다는 자체가 죄송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준비해야 할 것이 많고 시간은 자꾸 가니까, 머리가 지끈거려요.
 
주변의 친구들과 저를 비교하게 되는 것도 힘들어요. 아, 이것만 좀 더 해놓을 걸 생각하다가 옆을 보니까 저 친구는 벌써 어디 인턴도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왔구나!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요.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저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고 나는 대체 뭘 하고 살았나 생각하게 되는 거요. 제 나름대로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학교 다닐 때 거의 전 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고 다녔고, 중앙 동아리 회장도 했고 봉사활동도 꾸준히 다녔으니까요. 잘해왔다고 자부했는데 비교해 보면 그게 아닌 거예요. 공부하면서 힘든 것,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것 다른 건 그냥 견뎌내면 되는데 초라한 나와 마주하는 건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물론 알죠. 비교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걸.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하지 않는 게 어디 쉽나요? 그냥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본인 스펙에 있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나요?
 
▲자격증이야 따면 되고, 인턴이야 어떻게든 지원해서 하면 될 것 같은데요. 바꿀 수 없는 부분이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져요. 말하자면 학교랑 학과. 출신학교 이름 말하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괜찮은 학교라고 말하지만요. 요즘 취업이 정말 많이 힘들잖아요. 소위 명문대 출신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또 제가 독문학을 전공했는데요. 전공 살릴 길은 이미 포기했지만, 문과 중에 그것도 어문 계열 취업이 얼마나 빡빡한지 주변 이야기를 굳이 듣지 않아도 제가 느끼니까 걱정이 많죠. 출신 학과가 기업이 원하지 않는 학과라는 건 정말 힘 빠지는 일인 것 같아요.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취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참 슬프기도 하고요. 
 
저는 제 전공을 정말 좋아하고, 제 인생에 있어 정말 큰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후회되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이해는 돼요. 경제가 어렵다 보니 기업들이 점점 리스크를 줄이려고 실무 중심의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거란 걸. 그런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저 같은 문과생들은 점점 취업문이 좁아지고 있고. 뭐 이과생인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디나 다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요. 어디든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 같고, 내가 앉을 의자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고 속상해요. 제가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큰 걱정이죠.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나요. 대학이 언제부터 취업 학원이 되었는지 말하자면 입이 아프겠죠? 또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다녀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자소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쓰기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감하나요?
 
▲저는 좀 더 스펙 준비를 한 후에 이곳저곳 지원해 볼 예정이라, 아직 자기소개서를 많이 써보지는 않았는데요. 몇 군데 쓰면서 알게 됐어요. 자기소개서 쓰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요. 정말 힘들었어요. 몇 개 항목만 봐도 진짜 숨이 턱턱 막히더라고요. 공들여 쌓은 스펙은 사실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거고, 그 안에 세세하게 요구하는 게 정말 많다는 걸 체감하기도 했죠. 쓰다가, 쓰다가 너무 쓸 말이 없어서 이건 무슨 자소서가 아니라 자조서인가 싶었죠.?
 
한 번은 모 기업의 자기소개서 양식에서 ‘본인이 영업사원이라고 가정하고, 자사 상품을 선택해 영업 전략을 분석하라’와 같은 항목을 봤어요. 거의 기말고사 보고서에서 요구하는 분량을 요구하고 있더라고요. 눈이 핑 돌았어요. 회사들이 뽑고 싶은 건 신입사원이 아니라 전문가인가 생각하게 됐죠. 사실 고전적인 항목들도 생각해보면 걱정이에요. ‘역경을 이겨냈던 일’ 같은 걸 써내라고 하는 질문을 보면 정말 누구 말대로 철인 삼종 경기라도 도전해 봐야 하나 싶은 거예요. 동아리에서 회장 한 번 했다, 학과에서 과대로 일했다 이런 경험은 써내봤자 눈에나 띄겠나 싶어서요. 점점 자기소개서 쓰는 게 까다로워지고 말마따나 ‘자소설’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다들 튀려고 안달이니 저는 어떻게 그 항목들을 채워야 할 지 걱정만 늘죠.
 
-취업이 실패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는 세 군데 내고 세 군데 모두 서류에서 떨어져 봤는데요. 예상한 결과였고 기대도 안 했지만, 막상 불합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제일 처음에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자기소개서를 쓰던 제 모습이 생각났고, 다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점점 내 자기소개서에 혹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자괴감이 컸어요. 가족들 앞에서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는데 때 안 좋게 엄마가 “혹시 면접은 언제 보니?”하고 물어 오시더라고요. 그때 저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버렸어요. 괜히 죄송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무슨 결과라도 당당히 내보이고 싶은데 제가 아무것도 못 이뤄내고 있으니까 너무 죄송하고 속상했어요. 제가 맏이라, 잘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참 크게 다가오기도 했고요. 
 
방문 걸어 잠그고 한참 울다가 나오는데, 엄마가 부엌 한 켠에서 울고 계시더라고요. 정말 그때 제가 느꼈던 감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어요. 그때 엄마 품에 안겨서 펑펑 울면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했어요. 엄마께선 계속 미안하다고, 해준 것도 많이 없는데 괜히 부담 줘서 미안하다고 우시고. 아, 이때 이야기하니까 다시 눈물 날 것 같아서 힘드네요. 어쨌든 한동안 우울했는데 누구한테 하소연하기도 그렇더라고요. 요즘 주변에 지원하는 거 보면, 저는 세 군데 내고 떨어진 게 고작이니까 발도 못 내미는 거죠. 어쨌거나 점점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겠죠? 붙을 일보다 이렇게 떨어질 일이 더 많을 테니까.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책적으로든 인식적으로든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부분이 있나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굉장히 불쾌하게 다가왔던 게요.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나, “낮은 연봉에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지 요즘 젊은이들은 대기업만 선호한다.” 이런 소리예요. 저도 처음에는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중소기업 다니는 선배에게 상담을 받아봤어요. 이직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왜 이직 준비를 하시느냐고 물어보니까, 회사에서 매일 야근 시키는 건 기본이고 야근 수당은커녕 주말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출근하라고 이야기한대요. 대기업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여긴 돈이라도 많이 주죠. 그런데 180만 원 받으면서 이렇게 일하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착취죠. 젊은이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주면서 노동력을 착취하려 드는 구조가 문제인 거죠. 그런데 여기에 대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느니, 청춘은 으레 고생 좀 해야 한다니, 고통을 즐기라니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진정한 청춘은 무슨 변태가 되어야 하는 건가 싶어요. 환자한테 고통을 즐기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요.
 
또 열정이나 패기라는 말을 들이대면서, 실상 적은 돈으로 어떻든 착취하고 부려 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명치를 세게’ 때려주고 싶어요. 이 말은 꼭 적어주세요. 사실 기업 대외활동을 몇 개 하면서 많이 느낀 건데요. 우린 정말 항상 ‘을’이고 아쉬운 ‘호구’에요. 아르바이트비도 못 받고 일하는 ‘호구’요. 공짜로 SNS에 기업 제품을 홍보해주고, 시간을 할애해서 홍보영상 찍어주죠. 차비도 안 될 돈을 받고요. 그런데 기업에서 자랑처럼 내거는 게 뭔지 아세요? ‘우수 팀을 선정해 시상합니다.’ 이거죠. 무슨 대단한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그런데 기업에서 주최하는 활동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스펙에 한 줄이라도 더 올려야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하는 거죠. 말 그대로 아쉬우니까.
 
 
당한 게 많아서 저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했는데요. 진짜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 보면 참기름 짜는 기계가 생각나요. 들들 볶아서 기름만 짜내고, 버려지는 참깨찌꺼기랑 우리가 다를 게 뭐예요. 제가 절대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일한 만큼 그리고 노력한 만큼의 보수를 줘야 한다는 거죠. 열정페이가 어디 있어요. 대가 없이 남의 것을 거저 가져가면 그게 도둑 내지는 거지지, 맞는 말 아녜요?
 
-취업 준비를 떠나,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여행을 가고 싶어요. 유럽 여행. 그 어디보다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괴테의 생가에 가보고 싶어요. 그럴 수 있다면 세계를 좀 더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가서 여러 나라의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요. 요즘에는 체중 관리한다고 식단조절을 하고 있는데 실은 저 먹는 거 정말 좋아하거든요. 무엇보다 일상을 떠나서 모든 걸 다 잊고 여유를 즐겨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물론 꿈같은 소리라는 것도 알아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즘은 과거의 자신이 가끔 부끄럽게 다가와요. 막연한 두려움 내지는 나태함에 졌던 저 자신이요. 조금만 더 부지런했었다면, 용기가 있었다면 미루고 미루다가 쉽게 포기해버린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었겠죠? 그랬다면 지금의 삶에서 좀 더 후회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나를 돌아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면 참 좋겠네요. 그거면 됐어요.
 
-마지막으로 이 시각에도 힘써 취업 준비를 하고 있을 다른 취업 준비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요?
  
▲다른 건 몰라도 이 말만큼은 꼭 하고 싶어요. 우리, 취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모두 취업이 안 될까 봐 참 불안하고, 힘들죠. 이 상황에서 자꾸만 주변과 나를 비교하고, 주위의 눈치를 보다 보면 나는 저만큼 되지 못했으니까 내지는 남들에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지 하고 더 힘들어지는 일만 남죠. 하지만 일자리 유무를 떠나서 우린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잖아요. 안 그래요?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으면 해요. 사실 이 말은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겠죠?
 
 
박소현 기자 www.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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