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괴물같은 불평등을 어떻게 잠재울까
2014-09-28 10:58:48 2014-09-28 10:58:48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 장경덕 외 옮김 | 글항아리 펴냄
 
프랑스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을 번역한 한국어판을 읽고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자니 적잖이 망설여졌다. 저자가 내놓은 결과물의 '순수 버전'을 읽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 자본>이다. 전 세계에서 호평과 동시에 논란이 쏟아졌던 그 책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돈이 돈을 버는 속도인 자본 수익률이 사람이 돈을 버는 경제 성장률보다 빨라 앞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으므로 고소득층 대상으로 부유세를 매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돈이 있으면 돈을 빨리 벌 수 있다'는 얘기 정도는 많은 곳에서 들었다. 연암(燕巖) 박지원의 <허생전>에도 얼핏 등장한다. 허생은 변 부자에게 1만냥을 빌려 빠른 속도로 투자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책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대충' 아는 것을 방대한 통계를 통해 증명한다는 데 있다. 책은 자본주의에 내재한 불평등의 문제를 300년에 달하는 통계를 바탕으로 15년간 공동작업 등을 통해 분석한 뒤 글로벌 자본세 등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통계의 정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이 책은 경제학 못지않게 역사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하는 점과 "최선의 추정치"라고 고백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연구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전체 주장을 해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더군다나 국내에서도 소득 양극화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오지만, 서민을 대상으로 증세해 복지 재원으로 쓰겠다는 움직임이 한창인 현실에서 이 책이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지난 20일 연세대에서 열린 그의 강연회에 참석해 저자의 책 소개를 2시간가량 들었으니 원본을 읽지 못했다는 무책임의 혐의는 조금이나마 벗은 것 같다. 한국어판은 국내 번역 전문가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저자가 '훌륭하다'고 평가한 영어판을 풀고 프랑스어판과도 대조했다. 서장 등 중요한 부분은 프랑스어 원본을 직접 번역했다. 그것을 대표 역자가 다시 정리했다고 한다.
 
▶ 전문성 : 불평등과 부유세 등의 키워드가 책 끝까지 살아있는 아주 긴 논문이랄까. 학술 서적이다. 수학은 아주 조금 나온다. 'α=r x β'와 r > g 같은 것들. 중국의 미래를 점치는 부분과 퇴직연금 관련한 지적도 눈여겨 볼만하다. '사 놓고 안 읽는 책'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적에 손뼉을 치면서 읽지 않고 넘어가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부분도 더러 있다.
 
▶ 대중성 : 문학을 소개한 책이 문학은 아닐 것이지만,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의 문학작품과 타이타닉 등의 영화도 등장해 어렵지 않은 경제 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대중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불평등이란 주제 자체가 그러하다. 700페이지만 읽으면 된다.
 
▶ 참신성 : 이 책에서 고(故) 스티브 잡스를 만나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었지만, 소설과 영화를 통해 경제와 불평등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저자의 시도는 그의 영어 억양 만큼이나 발랄하다.
 
저자는 책에서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낮은 세율과 작은 정부라는 관념을 공격하고 있다. 책 첫머리부터 성장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고 조망한 경제학자 쿠즈네츠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식이다.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자동으로 양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파멸을 예언한 것이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라고 일갈한다. 다만, 과거에 축적된 부가 사회의 조화를 해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에는 동의한다.
 
이어 현실 세계는 외면한 채 과학적 분석에 몰두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풍토를 비판한다. 자기가 사는 시대의 부와 소득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통계자료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연구 방법을 택해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고찰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는 설명이다. 3세기에 걸친 20개국 이상의 데이터를 토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적 전개를 살펴본 책이 탄생한 배경이다.
 
피케티 교수는 불평등의 구조와 역사를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수식 두 개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이라고 칭한 부등식을 통해 증명을 시도한다. 자본주의의 제1 기본법칙은 α = r × β로 표현된다. α는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이고, r은 자본수익률이다. β는 자본 총량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선진국은 이 값이 5~6 사이를 오간다. 수치가 클수록 부가 소수에게 집중됐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이 수치가 선진국보다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제2 기본법칙은 β = s / g로 제시된다. s는 저축률이고, g는 성장률이다. 이 공식을 통해 저성장 사회에서는 과거에 축적된 부가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세계의 자본·소득 비율이 상승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700%에 도달함으로써 18세기 유럽의 극심한 불평등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는 자본의 힘이 강해지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저축을 많이 하고 느리게 성장하는 국가는 장기적으로 소득에 비해 거대한 자본 총량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부등식 r > g는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늘 높다는 이론이다.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임대료·배당·이자·이윤·부동산·금융상품 등)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임금·보너스 등)을 웃돌기 때문에 자본 소유의 유무에 따라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r > g를 역사적 사실로 본다. 고대에서 17세기까지 연간 경제성장률은 0.1~0.2%였지만, 자본수익률은 적어도 연간 2~3%였다. 반면,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토지수익률은 4~5%에 달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자본수익률이 항상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보다 10~20배 높았다는 분석이다. 20세기 초중반에 불평등이 잠시 줄어든 이유는 성장과 누진세 도입, 전쟁으로 인한 파괴, 인플레이션 등이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돈이 돈을 번 실제 사례도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포브스의 자료를 인용해 화장품 기업 로레알의 상속녀인 릴리앙 베타쿠르의 재산이 지난 1990년 20억달러에서 2010년 250억달러로 증가했다며 이는 같은 기간 빌 게이츠(40억→500억달러)의 재산만큼이나 늘어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누구도 사회에서 기업가, 발명, 혁신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기업가는 세대를 거치면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생 동안 자본 소득자로 변모해가는 특징이 있다"고 꼬집는다.
 
특히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으며, 능력 없는 자녀의 재산이 급증하는 경우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경영자가 지나치게 많이 받는 임금도 함께 짚는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0년 전체 부에서 상위 10%가 차지나는 몫이 70%가 넘었고, 상위 1%의 몫은 35%에 가까웠다. 이는 1910년에 각각 80%, 45%였다.
 
저성장이 예상되는 21세기에는 불평등이 다시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물론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구 성장과 기술 진보가 한계에 이르렀고,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의 몫이 커지고 노동의 몫은 줄어들면서 자본이 자본을 낳는 '세습자본주의'가 불가피할 것이란 결론이다.
 
저자의 대안은 고소득자에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방안과 글로벌 자본세다. 미국의 경우 연간 소득이 50만~100만 달러(5억~10억원)인 상위 0.5~1% 소득계층에 80%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 전 세계에 있는 부에 대해 매년 누진세를 부과하자고도 제안한다. 자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 세금이라는 것이다.
 
국내 독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종종 눈에 띄는 탓에 번역자를 탓할 수도 있겠다. 출판사는 "문장을 다듬을 수도 있었으나, 원본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의역을 최대한 피했다"고 설명한다. 더군다나 저자는 뛰어난 문장가가 아니라 성실한 연구자일 것이다. 어쩌면 원문만 700쪽이 넘는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가 분석 대상일 것이다. 책은 불평등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우리 사회에 제공하고 있다는 것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피케티 교수는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라고 썼다.
 
"모든 사회과학자, 모든 저널리스트와 논평가, 노동조합의 모든 활동가와 온갖 부류의 정치가, 특히 모든 시민은 돈과 그에 대한 측정, 그를 둘러싼 사실들 그리고 그 역사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책 속 밑줄 긋기
 
경영자가 대개 그들 자신의 보수를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 보수가 개인적인 생산성과 뚜렷한 관련이 없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거대 자산가의 수가 아주 적고 자본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사실이 바로 민주주의 정신이 미국에 뿌리내리게 된 명백한 이유다."
-토크빌
 
성장률이 높으면 젊은 세대가 부를 축적하기 쉬워지고 노년층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 임금 상승률이 하락하면 필연적으로 노년층이 대부분의 이용 가능 자산을 취득할 것이고 그들의 부는 자본수익률에 의해 결정되는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모든 시민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선과 악의 문제를 연구하겠다는 이 겁 없는 열망은 독자들을 미소 짓게 할 수도 있겠다. 
 
이 세계는 한편에 정치적 엘리트가 있고 다른 한편에 일단의 논평과와 또 책임이라고는 4~5년에 한 번씩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것밖에 없는 구경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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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자본주의> 로버트 라이시 
<자본론> 칼 마르크스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김동훈 문화체육부 기자
 
이 뉴스는 2014년 09월 24일 ( 8:15:50 ) 토마토프라임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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