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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모음집 <무문관>을 철학자 강신주의 방식으로 해설한 것이다. 48개 화두를 통해 상식과 권위를 타파하고 자유로운 사유를 권한다. 흥미로운 화두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에 전하는 메시지도 풍부하다. 특히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철학에서 얻은 깨달음이 저자의 철학과 만나 시너지를 얻었다. 서양철학의 어울림도 덤.
▶ 전문성: 솔직히 쉽지 않다고 저자도 인정. 어려운 불교 전문 용어와 낯선 말과 일화들에 놀랄 가능성 다분하다.
▶ 대중성: 소위 요즘 핫한 철학자 강신주의 저서다. 대중의 마음을 읽는 거리의 철학자로도 통하는데, 어려운 화두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다. 핵심은 반복하는 친절함.
▶ 참신성: 불교철학과 강신주 철학, 서양철학이 만나 화학작용을 한다. 절묘하게 공통점을 만들며 버무려지는데 꽤 괜찮은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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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내려 놓고 화두를 쥐다
끊임없이 질문해 온 철학자 강신주가 이번에는 이렇게 묻는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고. 선뜻 대답하기 곤란했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면 어디론가 굴러 떨어지게 될 텐데. 제목부터 강한 화두다.
이 책은 1228년에 무문스님이 48개 화두를 선별해 완성한 무문관(無門關)을 강신주의 방식으로 쉽게 풀이한 것이다. 저자는 화두라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역설적인 질문을 뜻한다고 전한다.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의 무문관 역시 제목 자체로 고난이도의 화두인 셈.
그렇다면 왜 무문관일까? 철학자 강신주는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삶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아가야 한다는 불교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많은 스님들의 다양한 삶의 스타일이 담긴 화두 모음집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 때문에 뇌리에 들어온 무문관이라는 책을 그래서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상식을 넘어서 자유롭게 48개의 관문에 무모하게 몸을 던져보라고 독자에게 권한다. 낯선 용어와 일화들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데, 48개의 화두를 통과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은 쏠쏠하다.
맛보기로 화두 하나를 꺼내보자.
서암 사언 화상은 매일 자기자신을 "주인공!"하고 부르고서는 다시 스스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 예!"라고 말했다.
무문관 12칙, 암환주인(巖喚主人) 부분이다. 서암 스님이 왜 아침마다 자기 자신을 뜬금없이주인공이라고 불렀을까. 저자는 서암스님이 깨달음이란 별 것이 아니라 바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손님에서 주인으로..잃어버린 현재를 찾아라
그리하여 강신주는 이 화두를 지나며 자신의 삶에서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지금까지 우리가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를 부정해 왔는지를 지적한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 행복을 포기해 왔던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처럼 48개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맨얼굴, 본래면목을 긍정하는 사람이야 말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인되기 철학과 초월자를 믿는 것이 아니라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전하는 불교적 철학이 절묘하게 통한다.
잃어버린 현재를 찾아 지금 바로 여기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 어떠냐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자신도 이롭게 만들고 타인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도 매력적이지 않냐고 물어본다. 언어로 세상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물론 불교 철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스피노자와 니체, 비트겐슈타인 등 서양철학자도 속속 등장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동서양 철학의 어우러짐을 목격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잔잔한 깨달음과 더불어 무수히 많은 밑줄 역시 남길 수 있다.
◇집착을 버리고 스스로 서라..오만한 독서 '강추'
마침 지난 14일 책과 관련된 저자의 강연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저자는 직장, 학벌, 돈, 권력 등 우리가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들을 비유해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단다. 우리가 왜 우리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하는 지를 제목으로 딱 표현하고 싶었다고. 지금 내가 잡고 있는 것은 내가 잡을 수 있는 것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 한 번만 놓아보면 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핵심은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서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8월14일 대학로 벙커1 강신주 강연 현장. (사진=최하나 기자)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을 힘든 책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무문관의 48개의 화두를 저자가 풀어낸 방식이 아닌 독자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보라고 강조했다. 강신주도 뚫었는데 나도 한다는 마음, 오만한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그리하며 책 마지막엔 무문관 원문도 친절하게 첨부해 놓았다. 참고로 저자는 1년에 걸쳐 48개의 화두를 지나갔다고 한다. 이 책은 법보신문에 1년간 연재한 내용을 묶은 것이기도 하다.
오만한 독서라, 생소하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하세요. 그것이 바로 평상심에 머무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저자는 이렇게 책 속에서 쓰기도 했다. 그냥 하면 된다. 이 작은 한 걸음이 노예도 손님도 아닌 스스로 주인인 삶을 만끽하는 시작이 될 테니까.
책 속 밑줄긋기
-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힘과 자유가 없다면, 어른이라고 해도 어른일 수 없는 법이니까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아야 어른입니다.
싫은 건 싫다고 하고 좋은 건 좋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어른입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는 힘과 자기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본질적으로는 어른이 될 수 없음을, 그리고 힘과 자유는 나이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용기를 갖고 싸워 얻어야 하는 것임을.
-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인간이 힘과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걸 긍정합니다.
최소한 저는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인간의 힘과 자유를 위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저는 대자유를 얻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 문이 없는 관문을 뚫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어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자극과 격려가 되리라 기대해 봅니다. 죽기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우리 정말로 진짜 어른이 되어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 그렇다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으로 산다고 해서 마치 독재자나 잔혹한 자본가, 혹은 권위적인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노예처럼 부린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단지 내 삶의 주인이되었다는 것, 달리 말해 내 자신이 가진 잠재성을 활짝 꽃피우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진정한 주인은 타인을 노예로 부리지 않는 법입니다.
- 비트겐슈타인의 충고를 반복하고 싶습니다. "생각하지 말고,보라!"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럴 거야'라는 가치평가나 희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근본적인 경험을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직시할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임제 스님의 속내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그의 사자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란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다'는 뜻입니다.
-절대적 존재로서 신을 숭배하는 초월종교인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내재적 사유 체계입니다.
(중략) 그러니까 내재적 사유에 따르면
우리 자신의 노력에 따라 세계가 극락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 기독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도 인간이 절대로 신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불교는 노력 여하에 따라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한다는 겁니다.
- 무문 스님은 서른두 번째 관문을 마무리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계단이나 사다리를 밟지 않아야 하고,
매달려 있는 절벽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계단이나 사다리에 의존해 절벽에 매달려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설 수가 없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단이나 사다리가 우리의 당당한 삶을 막고 있었던 셈입니다.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것, 그건 우리가 그것에 좌지우지된다는 말입니다.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도움이 되어도 그것이 외적인 것이라면,
어느 순간 반드시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중략) 깨달음은 스스로 주인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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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스피노자의 48개의 감정을 48개의 세계문학과 철학자의 충고로 채웠다. 역시 만만치는 않다. )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 (부제가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인데, 좀 더 쉽게 읽힌다. 살면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준다.)
최하나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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