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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출구전략'에서 드러난 朴 대통령의 '진짜 의중'
지명 철회 피하면서 자진사퇴 압박..'책임모면' 꼼수
여당의 '사퇴촉구' 급선회도 朴 '실책' 덮으려는 듯
2014-06-19 17:08:52 2014-06-19 17:13:07
[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내정자로 지명하면서 "소신 있고 강직한 언론인 출신으로 그동안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라고 평가했다.
 
또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나갈 분"이라고도 치켜세웠다.
 
그러나 문 후보자가 친일 및 식민사관 등 총리 아닌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까지 의심을 받는 가운데 박 대통령 역시 그를 버리는 분위기다.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당초 13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었던 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의 재가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오는 21일 귀국 이후 검토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朴대통령 "재가여부 재검토"는 '자진사퇴' 시그널
 
국내로 돌아와 재가한다는 것이 아니라, 재가 여부를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점에서 사실상 '자진사퇴'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는 정작 신호를 접수해야 할 문 후보자는 청문회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박 대통령의 재가 검토 방침이 전해진 이튿날인 19일에도 정부서울청사 별관으로 평소같이 출근하며 "밤사이에 (입장) 변화가 없다. 오늘 하루도 제 일을 열심히 준비하겠다"라고 밝혔다. 청문회 준비에 매진하겠다는 의미다.
 
전날 퇴근길에서도 "대통령께서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실 때까지 저도 여기서 차분히 앉아서 제 일을 준비하겠다"라는 말로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여권에서조차 자진사퇴 압박이 거세다는 기자들의 질문엔 "나는 전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라고 일축했다. 문 후보자의 역사관이 도마 위에 오른 이후 인사권자와 내정자가 거취를 놓고 동상이몽(同床異夢)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창극 후보자 "전혀 들은 적 없다"
 
문 후보자가 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면돌파 의사를 고수하면서 혼선이 가중되는 상황이 벌어진 원인은 박 대통령의 애매한 태도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후보자 내정 직후 망언 논란이 불거졌지만 박 대통령은 아무 조치 없이 세월호 참사 이후 약속했던 인적쇄신을 강행·완료했다. 박 대통령은 문 후보자 총리 지명(10일)을 시작으로 청와대 참모진 일부 개편(12일)과 중폭 개각(13일)을 일사천리로 단행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극우적 발언들과 친일·식민사관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박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문 후보자에 버금가는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를 지난 17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한 사실로도 입증되고 있다. 즉 문 후보자도 파문만 없었다면 박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을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돌아선 여론은 물론이고 최근 여권내 상황이 급변하면서 박 대통령의 이같은 고집은 꺾이고 있는 형국이다.
 
◇친박 '좌장' 서청원 "국가·국민위해 물러나라"
 
김무성 의원과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로 나선 서청원 의원은 이날 "물러나시는 게 국민과 국가를 위해 좋지 않나"고 정면으로 사퇴를 촉구했다. 앞서 에둘러 사퇴를 권유한 입장과는 사뭇 다르다. 서 의원의 태도 변화는 그가 '친박계 좌장'이라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 의원의 맞수인 김 의원도 날이 갈수록 문 후보자에 대한 사퇴 압박에 힘을 넣고 있다. 소장파에서 시작된 새누리당 당내 사퇴요구 움직임도 지도부의 통제범위를 넘어섰다.
 
정가에서는 이 같은 부정적 여론과 여당 내외의 총체적 난국이 결국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문창극 카드'를 접게 만들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여당의 기류변화를 가만히 뜯어보면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 보다는 문 후보자 개인에 대한 비판과 질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대통령의 실책을 문 후보자에 대한 사퇴 압박으로 덮으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 2년도 안 돼 총리 후보자만 세 명이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출구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책임 전가" 정치권 시선 싸늘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이날 "국민이 문 후보자는 총리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지 이미 오래됐다"며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청와대와 문 후보자 본인만 모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도 "또 책임전가냐"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비겁하게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지명을 철회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하란 의미로, 박 대통령이 문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압박할 때가 아니라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질타했다. 
 
문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이번 인사 참사의 책임을 피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깊은 내상도 전망된다.
 
그 내상의 첫 영향은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퇴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김 실장은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어 문 후보자가 어떤 형태로 낙마하든 실무적 책임은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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