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역외 환투기에 흔들리나
2009-03-04 07:08:11 2009-03-04 07:08:11
최근 원.달러 환율이 역외세력의 매수세 영향으로 1,500원을 넘어선 데 이어 1,600원대 진입을 시도하면서 역외세력이 3월 위기설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환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33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수출기업들이 환율의 추가상승을 기다린 채 달러를 내놓지 않고 있어 역외세력 등 달러화 매수 세력이 주도하는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외환시장이 일부 역외세력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역외시장에 대한 정보력을 확대하고 현물환시장 참가자 확대를 통해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 3월 위기설에 역외세력 매수세 확대

4일 금융업계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600원 부근으로 급등하는 데 대형 투자은행(IB) 등 역외세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중반 이후 환율 상승을 부추긴 한국씨티은행의 달러화 매수세도 역외세력의 매수 주문에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외환당국과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역외세력의 달러화 매수 주문이 한꺼번에 나오면서 환율 급등을 초래하고 있어 투기적인 요인이 강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최근 역외세력이 달러화를 먼저 사기 시작하자 추종 세력이 달러화 매수에 가담하면서 환율을 급등시켰다"며 "역외세력의 외환거래는 주식투자와 연계돼 있기 때문에 투기적 동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외화자금 사정이 작년 4분기에 비해 나아졌기 때문에 최근 환율 상승은 국내 수급상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국을 신흥시장국과 동일시하는 시각과 새 경제팀에 대한 실망감 등이 맞물려 역외에서 달러를 매수하면서 환율 상승을 견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외신이 제기한 3월 위기설과 맞물리면서 역외세력의 투기 성향이 강화되는 양상이다.

지난달 28일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7개 신흥시장국 중 한국을 세 번째로 위기에 취약한 국가로 꼽은 데 이어 지난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회사채 등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빼면 외환보유액이 1천700억 달러로 떨어지면서 작년 말 외채 1천940억 달러를 밑돌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한국의 단기외채 비율은 HSBC의 추정치로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수치라고 반박했으며 HSBC 그룹 역시 "HSBC 글로벌 리서치의 전망은 그룹의 견해와 독립적"이라며 "한국 경제의 잠재력과 저력을 믿으며 한국경제의 전망도 안정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수출기업 달러화 안내놔

시장에 달러화를 공급하는 주체인 수출기업들이 달러화 매도를 자제하는 점도 외환시장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수출기업들은 작년 12월 이후 상당 규모 달러를 확보해둔 것으로 보인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지난해 11월 221억5천만 달러에서 12월 263억9천만 달러로 뛰면서 사상최고를 기록했으며 올해 1월에는 260억4천만 달러로 3억5천만 달러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기업 외화예금은 11월 200억5천만 달러에서 12월 237억 달러로 늘었고 1월에도 236억 달러로 1억 달러 감소하는데 그쳤다.

특히,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많이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12월에 예금 잔액이 많이 늘어난 이유는 수입대금 인출은 줄었지만 수출대금 입금이 전달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1월의 경우 수출이 많이 감소했는데도 불구하고 외화예금 잔액에 별다른 변동이 없었고 그나마 조금 감소한 것도 수입대금 결제를 위한 인출의 영향이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달러를 들고 있으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다만 환율이 너무 오를 때는 급락할 때에 대비해 내놓기도 하기 때문에 2월에는 조금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효근 연구위원은 "수출 업체들로서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추세라면 달러를 확보해두려는 게 당연하다"면서 "조선업체만 봐도 원화가치가 높아질 때는 외화가 들어오는 대로 헤지를 했겠지만 지금은 기존 수주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달러를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 외환시장 활성화 필요

그러나 금융당국은 환 투기 혐의를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고 외환거래를 점검하는 것이 거래 위축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이다. 특히 역외세력의 환 투기는 현실적으로 단속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역외 선물환 시장에서 투기적 거래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단속 권한이 없고 관련 정보를 얻기도 힘들다"며 "시장에서 막연히 떠도는 풍문을 가지고 투기세력 조사에 나서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역외세력의 환투기에 맞서기 위해 시장과 당국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를 확대하고 거래 규모를 경제 규모에 걸맞도록 키워 환율이 일부 역외세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외국환은행과 비거주자와의 거래가 대부분인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는 2002년 하루평균 6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작년 75억 달러로 6년 새 12.5배 급증했다.

작년 일평균 선물환 거래 규모 98억 달러 중 76.5%를 차지한 것으로 선물환 거래에서는 역외세력의 영향력이 조선업체 등 수출업체를 능가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또 IB 등 역외시장 참가자들과의 네트워크를 잘 구축해 잘못된 정보에 기반을 둔 투기적인 거래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원화의 국제화를 통해 시장 변동성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경제조사실장은 "현재로선 환투기 세력이 개입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해소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물환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고 역외시장 참가자들과의 정보 교환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역외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역외 선물환 시장은 우리 시장보다 규모가 커서 개입을 해도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고 파생거래 때 큰 손실을 볼 수 있어 개입을 지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오히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로 차입해서 달러를 매수하는 전향적인 투기성 거래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며 "자기 돈을 들이지 않는 이 같은 거래는 금융당국이 은행을 통해 지도 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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