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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MB의 국격타령에 국격 떨어진다
2012-11-14 16:00:00 2012-11-16 16:10:04
내곡동 특검이 30일간의 수사를 마치고 끝났다.
 
수사 대상인 청와대에 의해 수사기간 연장이 불발됐고, 사법부가 승인한 압수수색 영장은 청와대의 비협조와 부실한 자료 제출에 막혀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틈만 나면 "법을 어기는 행위에 관용은 없다"며 법치주의 운운하던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법치주의가 무시당하고 말았다.
 
과거 독재정권이 그랬듯이 현 정부 역시 법치주의를 유독히 강조했다. 그 결과 촛불시위에 물대포를 쏘아대고, 용산참사가 벌어졌다.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패러디가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언론의 비판보도에 재갈을 물리는 일은 너무도 흔하게 벌어져서 무감각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대단한 국격(國格)이다.
 
그러고보니 국격이라는 말도 현 정부가 유난히 자주 쓰던 말이다. 이전까지 국격을 강조하는 정부는 별로 없었다.
 
국격은 이를테면 한 개개인의 인격처럼, 국가의 인격 혹은 국가의 품격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국격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품격과는 의미가 전혀 다른 듯 하다.
 
자기 힘으로 만든 것도 아닌 대한민국의 발전을 등에 업고 G20 같은 국제행사 유치하면 국격이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많이 따면 국격 높아지는 것으로 치부하는, 그야말로 돈 많이 벌고, 행세 좀 하면 인격이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그런 수준의 국격이 분명하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낼름 달려가 자신의 공적인냥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나쁜 일이 생기면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는 유체이탈화법을 쓰고는 했다. 품격을 느낄 여지는 거의 없다.
 
비록 청와대의 방해로 온전하게 진실을 밝히지 못했지만, 이번 수사 결과만으로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해야 마땅한데 퇴임 3개월여를 앞둔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듯 하다.
 
특검 수사결과가 나오자 전직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문제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봉하마을 사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의 돈으로 구입하고(돈이 모자라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 빚이 유산으로 남은 상태다), 경호시설은 국가재정으로 마련해 명백히 분리되어 있다.
 
이명박 일가의 돈과 국고가 뒤섞여 있는 내곡동 사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전직 대통령의 사저와 내곡동 사저를 비교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작태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는 그의 저서 <국가론(De re publica)>에서 "공화국은 인민의 일들이다. 그러나 인민은 아무렇게나 모인 일군의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동의 이익을 인정하고 동의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키케로가 말하는 그런 공화주의를 표방한 국가다. 우리가 문서에 사인을 했든 하지 않았든 헌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헌법은 민주공화국을 선언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다짐하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표방한 공화주의는 주종관계, 예속관계가 없는 자유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 즉 법치(法治, rule of law)'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법치주의는 객관성, 공정성 그리고 공공성을 바탕으로 공공선 획득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법치주의를 떠들던 대통령은 객관성과 공정성, 공공성을 모두 상실한 '자의적 법치주의'를 기치로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법치주의를 마음껏 활용했다. 여기에 객관성이니 공정성이니 공공성이니 하는 것들은 애당초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법치주의를 실현해야 할 검찰은 정권의 충견(忠犬), 주구(走狗) 노릇하기에 바빴고, 내곡동 특검 수사 결과는 대한민국 검찰이 얼마나 객관성과 공정성, 공공성을 상실했는지 증명해주었다.
 
'일그러진 법치주의'는 공화국 시민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명박의 대한민국, 검찰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이용되고 말았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 사람들은 클레이테네스(Kleithenes, B.C. 6세기 말)의 개혁으로 탄생한 정체를 '이소노미아(isonomia)'라고 불렀다. 정의(Justice)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소노미아는 '지배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곧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한다.
 
비록 그리스, 로마 사회가 노예제라는 신분제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으로부터 2600년전에 이미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 정의, 법치주의를 고민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공화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 아니라, 이명박이라는 한 개인의 권력유지와 시민들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유화되었다. 법기술자들인 검찰은 그 뜻에 충성을 다했다. 2600년전 그리스보다도, 로마 공화정보다도 못한 국격이다.
 
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열풍을 일으킨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에 정의가 실종됐음을 말한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가 파산했음을 증명한다.
 
이광범 특별검사의 내곡동 특검은 물구나무 선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품격에 회의감을 들게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맹자는 4단7정(四端七情)을 설파했다. 4단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격 타령은 낯뜨겁다. 더는 국격을 입에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국격 떨어진다. 
 
권순욱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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