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괴벨스의 유령이 배회하는 대한민국
2012-10-24 16:04:52 2012-10-24 16:16:15
[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 말은 '위대한 독일제국의 재건'을 목표로 내 건 히틀러의 통치기반을 공고히 한 괴벨스의 어록이다.
 
공산주의 이론을 수립한 칼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선언했는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괴벨스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거짓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면 진실로 믿게 된다는 괴벨스의 선전선동이 난무하고 있다. 
 
서해안 북방한계선(NLL)을 놓고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의혹 부풀리기에 올인했다. 고 김지태 부일장학회 회장에게서 강탈한 정수장학회에 대해 "헌납"이라고 표현했다가 여론의 질타와 당 내부의 비판에 직면하자 NLL 의혹 부풀리기로 난국을 타개할려고 하고 있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부풀려 온 의혹에서 확인된 사실(fact)만 정리해보자.
 
최초에 의혹을 제기한 정문헌 의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7년 10월3일 오후 3시 백화원 초대소에서 남북정상이 '비밀'단독회담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북한통일전선부가 이 내용을 녹취해서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
 
확인된 팩트를 보자.
 
2007년 10월3일 오후 3시에는 양측 관계자들이 배석한 상태에서 '공식 정상회담'이 진행중이었다. 그리고 회담 내용은 남북 모두 기록했다. NLL 포기발언은 없었다.
 
정 의원은 주장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정 의원은 약속대로 정계은퇴해야 마땅하다.
 
특히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발언으로 사실이 아님이 확인됐다.
 
마치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지난 19일 뉴스토마토가 최초로 단독 보도한 기사(▶참조 盧, 남북회담 앞두고 "NLL 건드리지 말고 오라")에서 밝혀졌듯이 노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측 관계자들에게 "가서 헌법 건드리지 말고 와라, NLL 문제 얘기다. NLL 그거 건드리지 말고 와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세한 부연설명까지 곁들였다.
 
"'법적으로 합시다' 하고 내 맘대로 자를 대고 줄을 긋고 내려오면, 제가 내려오기 전에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것 아니냐. '좌파 친북 대통령 노무현은 돌아오지 말라'고 플랜카드 붙지 않겠냐. 그러니까 건드리지 말아라 이거다"
 
아니 이렇게 명확한 발언이 있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NLL은 명확하게 법적으로는 영토선이 아니다. 지금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NLL이 영토선이냐? 아니냐?"라고 다그쳐 묻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필자도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고 답할 것이다. 법적으로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3조 영토조항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한땅도 대한민국 영토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북한을 "괴뢰정부"라고 표현한 것이다. 괴뢰정부는 우리 땅에 불법적인 정부가 들어서있다는 의미다.
 
만약 NLL이 영토선이라면, 휴전선도 영토선이 된다. 그러면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 영토는 북한땅을 제외한 휴전선과 NLL 아래의 남한에 국한된다. 북한도 북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소위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대한민국의 영토는 어디까지인가? 압록강과 두만강까지인가? 휴전선과 NLL선까지인가?
 
현실을 보자. 헌법 규정과 달리 휴전선과 NLL은 영토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헌법과 충돌하고 있다. 휴전선과 NLL을 영토선으로 규정한다면 북한은 '북괴'가 아니다. 엄연한 외교의 대상인 주권국가로 인정해주고 그들의 공식 명칭인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 불러줘야 한다.
 
현실적으로 노태우 정권 당시 남북한이 동시에 UN에 가입하면서 우리나라는 북한을 북괴가 아니라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 인정해줬다.
 
그런데 만약 북한을 북조선으로 부른다면 아마 난리를 칠 것이다. 실제로 이석현 의원이 해외에서 쓰는 명함에 '남조선'이라는 표현을 넣었다가 빨갱이 사냥을 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대체 어쩌란 말인가? 자기들 편리한대로 휴전선과 NLL이 영토선이었다가 아니었다가 제 멋대로다. 상대방이 영토선을 전제로 하여 북괴라 부르지 않고 북조선이라 부르면 곧장 빨갱이 사냥을 한다.
 
그리고 이번 논란처럼 '법적으로는 영토선이 아니다'고 하면 무슨 대단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처럼 난리를 친다.
 
다시 NLL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는지 여부로 돌아가보자.
 
새누리당의 주장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한쪽에서는 기록이 있다는 전제로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봤다"고 주장하고, 또 한쪽에서는 "기록을 폐기했다"면서 기록을 공개하라고 떼를 쓰고 있다. "기록을 폐기했다"면 열람할 기록이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솔직히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새빨간 거짓말도 모자라서, 앞뒤가 맞지도 않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는걸 상대해주는게 짜증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자신들 스스로,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해는 된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는데 뭘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애국심 가득한 사람들이 자신들도 병역면제자로 가득하고, 자식들도 병역면제자가 수두룩하고,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나면 잽싸게 튈 수 있는 이중국적자도 수두룩한가?
 
6.25전쟁 당시 숨진 병사들의 유해발굴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 반공을 기치로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유신헌법을 만든 박정희나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전사자 유해발굴을 했는가? 유해발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좌파 빨갱이 소리를 듣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펼친 사업이다.
 
영화 실미도에 나오는 것처럼 국가를 위해서 청춘을 바친 사람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것도 바로 새누리당의 전신인 공화당과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 박정희였다. 그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앞장 선 것은 누구인가?
 
미국 원조를 받는 댓가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전쟁터에서 희생한 베트남 파병은 누가 했는가? 바로 박정희와 그 박정희를 존경해마지 않는 오늘날의 새누리당이다. 그리고 그 베트남 전쟁에서 고엽제로 피해를 입은 국군을 외면한 것도 지금의 집권 여당이다.
 
하지만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의 피해보상에 가장 앞장 섰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빨갱이 소리를 듣고 있는 <한겨레신문>이었고, 소위 좌파라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총구 하나 제대로 못 겨누고(이명박 대통령이 겨눈 자세로 격발을 하면 얼굴이 통째로 날아간다), 거수 경례조차 훈련병보다 못하다. 북한의 기습으로 찍소리도 못하고 침몰한 천안함 패전병들은 훈장을 받았다. 그러니 이중삼중의 휴전선을 뚫고 북한 병사가 귀순한 '귀순노크' 사건도 상벌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경계에 실패한 군인도 훈장을 받는 것'이 입으로만 애국심을 떠드는 보수정권 지배하의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여기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대표가 연평도 피격 현장에서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 어쩌고 했다가 망신을 당한 일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국민들이 무지한 시대가 있었다. 밟으면 밟히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제대로 배운 것 없어서 노예같은 삶을 살았던 그런 백성들이 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각성하고 살아가는 시대다.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없는 사실을 끊임없이 외치며, 그것도 앞뒤가 맞지도 않는 거짓말을 천역덕스럽게 사실인냥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떠드는 것은 시민들을 바보천치로 여기는 오만에 불과하다.
 
이왕 괴벨스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괴벨스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야말로 괴벨스도 울고 갈 상황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어록이다.
 
"99가지의 거짓과 1가지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한 가지라도 진실을 섞어서 거짓말을 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지, 온통 거짓말이면 역풍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괴벨스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던 그런 수준의 국민이 아니다.
 
권순욱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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