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희주인턴기자] '통일은 평화를 기반으로 이뤄지되 그 주체는 남북한 주민들, 즉 '우리'가 되어야 한다.'
남북한 통일문제를 소재로 삼은 공연 <더 라스트 월 비긴즈>는 '자주'와 '평화'를 통일의 대전제로 삼고 있다. 무대의 한 가운데에 있던 장벽이 북한 주민들의 손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은 자주평화 통일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연은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독일 시민들에 의해 부서졌듯 우리의 장벽은 우리 스스로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연에서 '통일' 대신 '재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공연팀은 "분단 이전에 대한민국은 이미 하나의 통일된 국가였으므로 분단 후에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곧 '재통일'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작 공연이 주목하는 것은 '재통일'이 아니라 '재통일 이후'다.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대신, 통일 이후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는 공연인 셈이다. 공연은 무용, 연극,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하면서 주체적인 통일을 이루고도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재통일 이후 북한 가정은 한국의 가정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 가장은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첫째 딸은 학연과 지연이 없어 남한의 무용계에 뿌리내리지 못하며, 막내 딸은 성형과 명품에 몰두하다 개성을 잃는다. 꿈을 이룰 수 없는 남한은 더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며, 세습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병폐에 이미 만성화된 남한주민과 달리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권력화된 세습에 저항한다.
특히 남한의 권력으로 대변되는 남자 무용수와 이에 저항하는 여자 무용수들의 춤 배틀 장면은 <더 라스트 월 비긴즈>의 큰 볼거리다. 미디어로 복제된 남자 무용수들의 모습은 개성 없이 획일화된 남한의 이념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여자 무용수들의 안무 중에는 '강남 스타일' 등 대중적인 코드를 접목해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공연 중 관객들이 직접 무대로 올라가 북한주민들과 어울려 춤을 추다 테러를 당하는 장면도 있는데, 관객들의 직접 참여라는 점이 새롭다.
결국 공연은 남북한 사이의 벽을 더욱 두껍고 높게 만드는 것은 권력자들의 이기심과 주변국들의 간섭 속에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자기 앞가림만을 목표로 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임을 지적하고 있다.
<더 라스트 월 비긴즈>는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더 라스트 월>의 기획을 맡았던 류병학 연출가의 연출 데뷔작이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무용수들의 춤과 배우들의 연기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영상과 음악이 더해지면서 무대를 풍성하게 꾸민다.
이밖에 실제 탈북자인 뮤지컬 배우 김충성과 김병수가 북한 주민을 연기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실감나는 함경도와 평안도 억양 덕분에 공연에는 현실감이 넘친다.
연출 류병학, 출연 김병수, 김승현, 김성숙, 김충성, 배성우, 안지은, 강요섭, 김모든, 박지은 등. 오는 13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은 R석 4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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