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 기자]앵커: 한국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한 쪽 날개라고 할 수 있는 내수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와는 반대로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하며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곳간에만 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 내수를 진작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집중기획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3일간에 걸쳐 불황을 극복하는 기업들의 투자해법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황민규 기자와 함께 정리해보겠습니다.
황 기자, 가장 시청자들이 궁금해하실만한 부분은 바로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쌓아놓는 이른바 유보금이 어느정도 규모이고, 도대체 우리 기업들은 왜 이렇게 투자에 주저하는지에 대한 부분일텐데요. 설명을 부탁합니다.
기자: 네, 일단 국내 기업의 현금성자산은 지난 해 기준으로 54조340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최대치인데요, 지난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세계 수준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투자규모는 매우 미미한 수준입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전세계 1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 연구개발 관련 투자총액은 전년보다 4%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50위권 내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린 곳이 없었습니다.
기업들이 투자 기피증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투자를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충분히 확보한 뒤에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는 리스크 관리 차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롯데나 LG와 같은 거대기업들도 신성장동력사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리스크 적고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한 유통 도소매업이나 서비스업종 진출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최근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이 가중된 것도 이같은 기업들의 투자 기피증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앵커: 사실 기업들도 유럽 재정위기 등 전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증가한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를 벌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인데, 각계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땠나요?
기자:전반적인 결론은 역시 역시 '투자'였습니다. 답변에 응한 24명의 경제전문가들 중 62.5%에 해당하는 15명이 "투자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동성을 확보해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대답은 25%(6명)에 그쳤습니다.
김덕현 세종대 융합경영학과 교수는 "불황일수록 적극적인 신성장 동력 사업 발굴에 나서야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기업이 존립하기 위해서는 성장(growth)과 유지(survival)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데, 외부환경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함은 물론, 위협요인을 최소화하는 것은 경영진의 주요책무라는 설명입니다.
안재현 카이스트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장도 "쌓아놓은 현금성 자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서 "R&D(연구개발)와 M&A(인수합병) 등을 통해 미래성장 동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 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시민단체 연구소 관계자들은 보다 대기업의 공익적이고 도덕적인 역할을 주문했습니다. 권오인 경제정책 부장은 이어 "투자와 고용은 재벌뿐만 아니라 기업 본연의 책무"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위기일수록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또한 방기해선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앵커:경제전문가들의 해답도 결론은 투자였군요.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불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업이 정말 성공한 기업이라는 말인데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기자: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최근 애플과 함께 세계 휴대폰 시장 양강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게 R&D 투자 큐모를 매년 큰 폭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EC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R&D를 위해 재작년보다 24.9% 늘어난 61억8100만유로를 투자해 역대 최고 순인 7위를 기록하며 3계단 상승했습니다. 지난 2004년 33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6년 만에 무려 26단계나 상승한 셈인데요.
삼성은 파나소닉, 소니,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전자기업을 멀찌감치 제치고 전자업종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삼성의 과감한 R&D 투자가 삼성전자를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휴대폰 제조업체 중 하나로 끌어올렸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불황기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기업들 많습니다.
1990년대 초 미국경제는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져 있었는데요, 민간소비가 위축되자 GM, 크라이슬러 등 대표적인 자동차업체들이 약속한 듯이 R&D 투자를 대폭 감축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경제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대대적인 엔화 절상압박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져 있었구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도요타와 혼다는 R&D투자를 오히려 큰 폭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런 투자의 차이는 15년 뒤 이들 업체들의 운명을 갈랐는데요, GM과 크라이슬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도요타와 혼다가 새로운 글로벌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의 시계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일쇼크로 세계 경기가 수렁에 빠졌던 1970년대 스위스 시계산업은 일본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줄줄이 도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와치그룹의 니콜라스 하이엑 회장은 채권은행들을 일일이 설득해 오메가나 라도와 같은 유명 브랜드 17개를 사들였다. 부품을 공동생산하고 마케팅을 함께 하는 등 군살을 빼면서 첨단 기술력과 고급화 노하우를 살렸다. 그 결과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스와치그룹을 전 세계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시계제조회사에 등극했습니다.
앵커: 기업의 불황기 투자가 국가의 대표산업을 키워낸 셈이군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패턴도 굳이 따지자면 몰락한 미국 자동차제조업체들과 같은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불황이 오면 일단 각종 비용을 삭감하고, 그 다음 투자를 줄이는 식입니다. 반도체, 스마트폰 이후 마땅한 신수종 사업 전략이 정체를 빚고 있는데 대기업들도 곳간에 쌓여가는 유보금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서 불확실한 경제정책, 고유가, 내수침체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경제의 탈출구는 오직 기업들의 투자뿐이라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전문가들도 불황 때 한발 앞선 투자가 값진 열매를 맺는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즉 기존의 성과로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제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투자를 준비해야하고, 이것이 지금 처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