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미정기자]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인간을 인간으로서만, 사랑을 사랑으로서만, 신뢰를 신뢰로서만 교환할 수 있다"

'경제학-철학 수고'의 일부인 위 글대로 마르크스는 돈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인간적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같은 일은 무척 힘든 현실이다. 순수한 교환은 찾기 힘들고 '화폐'라는 수단이 감정까지 좌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풋풋한 대학 캠퍼스 커플이라도 둘 사이에 돈이 개입되면 사랑은 쉽게 변질되고 왜곡된다.
예를 들어, 졸업한 지 1~2년이 지났음에도 상대방이 계속 취업에 실패한다면 다른 한 쪽의 마음은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일'이라는 말에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결혼은 현실'이기 때문에 사랑보다는 경제력을 찾는다는 의미다.
이렇듯 자본주의의 틀은 두 사람 사이의 단독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위험에 빠뜨린다.
강신주 작가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책은 이런 자본주의의 세계 속에서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다.
작가는 서두에서 "자본주의적 삶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범해서 우리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길들어 있고, 그로부터 상처받는지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의식하기 어려운 상처를 일깨우는 학문,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학문이 여전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으로 작가는 탁월한 지성을 갖춘 여덟 사람을 소개하며 이들의 삶과 작품, 사상에서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은 삶을 묘사한다. 그 지성인들 중 문학자로는 이상, 보들레르, 유하, 투르니에를, 철학자로는 짐멜, 벤야민, 보드리야르, 부르디외를 선정했다.
이들 중 특히 부르디외가 '구별짓기'에서 경제적 자본 외에 문화자본, 학력자본, 사회관계자본을 제시한 점을 들며 '허영의 뿌리'를 찾아냈다.
부르드외는 '구별짓기'에서 산업자본주의가 허영이라는 인간의 치명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적 취향이 계급적 아비투스의 전형적 사례로 보고 미적 취향이 그에 '걸맞은 실천이나 상품으로 인도한다'고 지적했다.
즉, 비싼 명품을 구입할 때 상류계급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류계급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인에게 입증하며 이 틈을 산업자본주의가 파고들어 화려한 소비사회를 만든다는 얘기다.
작가는 이런 허영과 욕망으로 인해 멍든 사람들이 '상처'를 자각하길 바라며 책을 맺는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한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누구보다 예민하게 상처를 감지한 문학가들 그리고 누구보다 치밀하게 상처를 해부한 사상가들의 시선을 빌린 것도 이 때문이지요. 상처를 상처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려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 또한 새롭게 싹틀 수 있을 겁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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