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나연기자] 전교학생회의가 끝나면 항상 시간이 꽤 늦어져 있었다. 교실

밖 신발장에서 조용히 신발을 꺼내 실내화를 갈아신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렸다. 담임선생님과 단둘이 있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선생님의 행동은 간혹 불쾌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한 번은 걸스카우트 야영을 갔다가 허벅지에 뜨거운 물로 인한 화상 입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날, 그가 상처를 직접 보겠다고 바지를 내려보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부끄럽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최대한 피해다니는 것뿐이었다.
작가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으면서 과거의 일들이 떠올라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약자 중에서도 약자인 장애아들의 한이 느껴졌다.
모두가 부당한 것에 맞서싸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위와 폭력에 맞설 수 있을까.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고, 맞서기도 전에 포기해버릴 것이다.
'도가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가치를 다시 일깨워준다. 저자는 숨겨져있던 진실을 온 세상에 알렸다. 권위와 폭력에 무너지고 마는 우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을 해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 이후 나는 평화의 한 끝자락을 잡은 듯 했다"고 밝혔다.
이 책을 보며 아이들에게 저지른 행위들이 상상돼 끔찍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느끼고 감싸안아줘야 할 때다.
"한번은 같이 밥을 먹다가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지. 이 일이 있기 전과 이 일이 있은 후, 가장 변한 게 뭐니? 그랬더니 민수가 대답하더라구.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요. 그때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어. 그러니 아이들이 이렇게 대견하게 커가는 것을 보면 우리가 꼭 진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드는 걸.(290쪽)"
공지영 지음, 창비 펴냄. 1만원.
뉴스토마토 이나연 기자 whitel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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