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준혁 기자] 한식을 향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식 셰프와 레스토랑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모던 한식’, ‘컨템포러리 코리안 퀴진’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한식 재해석 시도는 국내외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익숙한 식재료를 새로운 조리법으로 풀어내 신선함을 주었고, 해외 소비자에게는 낯선 식재료를 친숙한 방식과 결합해 심리적 장벽을 낮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식 고유의 색이 옅어지며 정체성이 흐릿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 역시 존재합니다. 한식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묵묵히 좋은 식재료를 기르는 사람, 정통 조리법을 복원해 알리는 사람, 전통 식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정민서 겨자김치 명인 역시 그중 한 명입니다. 정통 겨자김치 복원에 성공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명인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평창을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배추 수확에 한창인 농민들. (사진=뉴스토마토)
재료부터 생산까지 빈틈없는 명인의 시선
이른 아침 도착한 강원도 평창의 한 유기농 배추밭에서는 이미 수확을 시작한 농민들의 분주한 손길이 한창이었습니다. 밭에서 만난 정 명인은 “최상의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직접 여러 밭과 농장을 다니며 농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곳에서 재배되는 배추는 유기농 배추인 동시에 고랭지 배추”라며 “유기농 배추는 일반 배추보다 크기는 작지만 본연의 맛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고랭지 배추는 큰 일교차 덕분에 조직이 촘촘하고 단단해 특유의 단맛이 잘 살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상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명인의 하루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 명인의 공장인 ‘평창 꽃순이’에서는 김치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창이었습니다. 정 명인은 “체험 및 구매를 위해 방문한 고객들께서 김치가 만들어지는 환경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위생적인지 직접 확인하실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유기농 배추와 고랭지 배추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정민서 겨자김치 명인. (사진=뉴스토마토)
생산실 내부, 공정의 첫 단계에서는 배추 밑동을 자르고 절임을 위해 반을 가르는 과정에 정 명인이 특별 제작한 기계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정 명인은 “직원들이 배추를 하나하나 칼로 자르다 보면 어깨나 손목에 무리가 가고 베이는 일도 생긴다. 직원들의 신체적 부담과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절단된 배추는 절임과 여러 번의 세척 과정을 거쳐 양념을 바르는 단계로 들어섭니다. 양념을 바르는 과정 역시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제작한 특별 기계가 도입되어 있었습니다. 작업자 앞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정해진 양의 양념이 일정한 간격으로 공급되어 양념이 특정 부분에 뭉치거나 부족함이 없도록 돕는 시스템입니다. 정 명인은 “손맛은 한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감각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계량, 온도 및 습도 조절 등 현대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의 맛을 지키되 현대 기술을 활용해 일정한 맛을 꾸준하게 낼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가 지금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명인의 시선은 단순히 생산의 숙련도나 속도만을 향하지 않고, 공정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일정한 양의 양념이 공급되도록 설계된 기계와 김치 양념을 바르는 생산실 직원들. (사진=뉴스토마토)
대를 이은 알싸함, 명인의 비법으로
정 명인은 김치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기억하는 모든 유년 시절에는 늘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김치를 담그고 계셨다”고 회상했습니다. 『농정회요』와 『조선요리법』 등 옛 조리서에도 기록된 겨자김치는 집안 대대로 이어져왔고, 정 명인은 그 조리법을 계승하고 체계화해 2025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100호로 지정됐습니다. 명인의 겨자김치는 국산 갓의 씨앗인 겨자를 이용해 만든 김치로 고춧가루의 매운맛과는 다른 겨자 특유의 알싸함이 살아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호박을 더해 노란 빛깔과 은은한 단맛을 입힌 호박겨자김치, 갓 잎과 황태를 넣는 집안의 비법으로 담근 황태김치 등 특색 있는 김치들을 차례로 선보였습니다.
정 명인이 보여준 김치 양념에도 다른 김치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명인만의 비법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 명인은 “다시마, 보리새우, 표고버섯 등 감칠맛이 풍부한 재료를 직접 동결 건조 및 분말화해 자체 생산한 천연 조미료를 사용한다. 또한 설탕 대신 수국차를 활용해 체내에 남지 않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낸다”고 그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전통문화와 정통 조리법, 자연 원물 본연의 맛을 지키기 위한 명인의 노력은 다방면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양념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며 김치를 완성하는 과정을 시연하는 정민서 겨자김치 명인. (사진=뉴스토마토)
뻗어나가는 한식, 돌아봐야 할 헌신
‘발효’는 현재 국내외 다이닝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대표적 발효식품인 김치를 향한 관심 역시 매우 뜨겁습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강연과 일정을 앞둔 정 명인에게 김치의 세계화와 글로벌 경쟁력에 대해 물었습니다. 정 명인은 김치의 경쟁력을 ‘다양성’에서 찾았습니다. “김치는 재료와 지역, 계절과 숙성 정도에 따라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여러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며 “백김치, 겨자김치 등 다채로운 김치를 소개하고 현지 음식과의 조화를 고민한다면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더 나아가 정 명인의 시선은 김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김치가 받는 사랑과 관심이 김장 문화 보존을 위해 애쓰는 분들과 농민들에게 다시 돌아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명인으로서의 각오와 다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한식을 향한 세계인의 관심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해외에서 요리사 생활을 하며 지켜본 바에 따르면, 한식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는 셰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셰프가 아니더라도 한식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이들 역시 많아졌습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 고유의 것을 잘 지키고 발전시켜 어디서나 인정받는 한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식을 향한 이 관심과 애정의 따스함이 강원도 평창의 한 배추밭에도 깊이 닿기를 기대해 봅니다.
홍준혁 기자 jhh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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