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고정금리 늘리라는데…은행권 '난색'
2026-10-20 13:27:44 ㅣ 2026-10-20 14:46:12
[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금리 상승기가 본격화하면서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10년 이상 순수 장기 고정금리 상품 확대를 유도하고 있지만, 정작 은행권의 반응은 미온적입니다. 장기 자금조달 비용과 금리 변동 위험 등 부담이 만만치 않아서인데요. 금리를 장기간 고정할수록 대출금리가 높아지는 구조인 만큼, 실제 소비자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변동금리 대세…고정형은 외면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주담대의 변동금리 비중은 64.7%로 집계됐습니다. 전월(68.1%)보다 3.4%p 낮아졌지만, 여전히 신규 주담대 10건 중 6건 이상이 변동금리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당장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변동형을 선택하는 차주들이 많아진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고정금리 대출이 대세였던 2년 전과 대조적입니다. 지난 2024년 7월 신규 주담대의 변동금리 비중은 3.6%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금융당국이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을 위해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유도하면서 은행들도 고정형 금리를 변동형보다 낮게 책정하는 등 판매에 적극 나섰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시 고정금리 비중이 96.4%에 달했음에도 만기까지 금리가 유지되는 순수고정형 상품은 드물었습니다. 은행권에서 판매한 고정금리 주담대 대부분이 5년 혼합형이나 주기형이었는데요. 혼합형은 최초 5년간 금리를 고정한 뒤 변동금리로 전환되고, 주기형은 5년 등 일정 기간마다 금리를 다시 산정하는 구조입니다. 결국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높아졌지만, 차주들이 장기간 금리 변동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품은 제한적이었던 셈입니다.
 
금융당국은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을 통해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추진해 왔습니다. 변동금리 중심의 대출 구조가 금리 상승기에 차주의 이자 부담을 키우고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내에서 순수고정형 주담대는 대부분 보금자리론 등 정책모기지를 통해 공급돼 왔습니다.
 
정부가 최근 장기 고정금리 확대를 다시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금리 상승기 대비 취약차주 지원 방안'에서 올해 하반기 은행권의 자체 순수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출시를 유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금리 고정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려 차주들이 장기간 금리 상승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넓히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장기고정 출시해도 수요 불투명
 
은행권에서는 상품 출시를 둘러싼 부담이 적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장기 고정금리 주담대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은행의 자금조달 구조입니다. 은행은 주로 예금과 은행채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주요 조달 수단의 만기가 주담대보다 짧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대출금리를 장기간 고정하면 자산과 부채 간 만기 및 금리 구조의 불일치에 따른 위험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를 줄이려면 장기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거나 금리 위험을 별도로 관리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장기 자금조달에는 단기 조달보다 높은 비용이 듭니다. 이 부담은 결국 대출금리에 반영돼 기존 상품보다 높은 금리를 책정할 수밖에 없고,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변동형이나 5년 주기형과의 금리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를 10년 이상 장기간 고정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변동성과 수익성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일반적으로 10년 고정형은 5년 고정형보다 금리가 높아 고객들도 당장 이자 부담이 적은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장기 고정형 상품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신한은행과 IBK기업은행은 2024년 10년 주기형 주담대를 출시했지만, 변동형이나 5년 주기형보다 금리가 높아 판매 실적은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차주 입장에서는 향후 금리 상승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보다 당장 부담해야 할 이자가 많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 겁니다.
 
여기에 주담대는 만기가 30~40년에 달하더라도 주택 매매나 대환대출 등을 통해 조기에 상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주가 향후 더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 장기 고정형을 선택할 유인은 더욱 줄어듭니다. 반면 은행은 대출이 조기에 상환되더라도 기존에 확보한 장기 조달자금 등 운용 리스크가 남을 수 있습니다. 수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은행들이 공급 확대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부가 상품 출시를 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은행의 조달 비용과 금리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커버드본드 시장 활성화가 꼽힙니다. 금융연구원 역시 커버드본드 등 금융사가 활용할 위험관리 수단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합니다.
 
커버드본드는 은행이 주담대 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하는 장기채권으로, 은행이 장기 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금융당국도 2024년 고정금리 대출 확대를 추진하면서 커버드본드 시장 활성화에 나선 바 있으며, 현재는 커버드본드 등을 주택금융공사가 매입하는 '커버드본드 재유동화 프로그램' 도입도 추진 중입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주담대는 금리 추이를 살펴보다 더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며 "정책적 지원으로 장기 고정형 금리를 기존 상품과 비슷하게 낮춘다면 수요가 있겠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 악화나 역마진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부 방침에 따라 상품을 출시하더라도 실제 수요가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어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구조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시중은행 ATM 기계가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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