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대법관 제청과 관련해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결과에 구속될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취지로 발언해 제청권을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률에 근거한 추천 절차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 국정감사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조 대법원장은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진행한 대법원 국정감사에 기관장으로 출석해 “모두가 궁금해하시니까 부득이 선서와 증언을 거부한 사유를 말씀드리겠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직접 준비한 종이를 꺼내 국감 증언과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제청하면 의무 끝”…협의·추천위 구속력 부정
조 대법원장은 “헌법의 근거는 없지만 대법원장이 신속하고 원활한 임명을 위해 자진해 협력해 온 것”이라며 “대법원장이 협의를 안 해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고, 역대 대통령도 결과적으로 전부 이러한 제청권을 끝내 다 존중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서면 제청도 헌법에서 전혀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 인선과 관련해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합니다. 구체적인 제청 방식이나 협의 절차까지 헌법에 명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 대해 “국회가 대법관추천위원회라는 제도를 신설할 권한은 헌법상 없지만 당시 대법원장 양해 아래 제정된 것”이라며 “그동안 대법원장도 (추천 결과를) 존중해 왔고 저 역시 이번에 추천위를 존중했다. 그렇지만 추천위 결과를 존중하지 않아도 정치적 문제에 그치고 위헌이나 위법은 전혀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은 헌법에 따라 대법관을 제청하는 것으로 모든 권한과 의무가 끝난다”고 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등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문에 헌법 조항을 읽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법이 모든 걸 규정하진 않아…기존 관례 지켜야"
이를 두고 헌법에 세부 근거가 명문화돼 있지 않은 영역을 사법부와 행정부, 입법부가 협의와 관행으로 운영해 왔는데, 이제 와서 헌법의 명문 근거를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에는 없지만, 법원조직법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라는 조항이 분명히 있다”며 “헌법이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입법자가 결정권을 가진다고 봐야 한다. 더군다나 사법부라면 입법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현행 법원조직법 제41조의2는 대법원장이 제청할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해 대법원에 추천위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를 두고는 헌법상 명문 규정의 유무와 별개로, 그간 인선 과정에서 이어져온 관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이날 김의겸 민주당 간사는 "이승만정부 이후 대법관 제청은 청와대와 대법원장이 서로 협의해 왔다"며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청한 것이 오히려 기존의 관례를 깬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법원 내부선 “제청권 지켜야”…재제청 갈등 장기화
한편 법원 내부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지키기 위해 헌법 세부 근거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한 부장판사는 “그간 대법관 제청을 위해 청와대와 협의를 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후 얼마나 많은 모욕을 들었냐”며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법대로 해보자고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다른 부장판사 역시 “특정 결론을 요구한다면 대법원장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제청 절차가 될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새로 추천위를 꾸리거나, 이미 추천된 3인 중 1명을 택하는 등 대법원장이 갖고 있던 선택지 중 제일 강한 선택지를 택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했습니다. 추천위가 후보 4명을 추천한 지 약 7개월, 노 전 대법관의 퇴임일을 기준으로는 약 5개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 실질적인 협의 없이 서면 제청이 이뤄졌다”며 손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이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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