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제조기업의 생산과 연구개발 공간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된 지식산업센터가 분양·투자상품으로 활용되면서 본래 산업시설로서의 기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저금리 시기 투자수요가 유입된 가운데 공급이 늘었고, 이후 기업 수요 둔화 등이 겹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미분양과 공실 문제도 커졌습니다. 이에 지식산업센터가 제조기업의 연구개발과 인공지능 전환(AX)을 뒷받침하는 산업 거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9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전국에 설립승인된 지식산업센터는 1553개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준공된 지식산업센터의 평균 공실률은 43.5%, 미분양률은 26.9%에 달했습니다. 공급과잉과 시장 침체가 겹친 가운데 대출 중단과 시세 하락으로 분양 계약자의 연체·파산 위험도 커졌고, 지난해 지식산업센터 경매 건수는 3876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지식산업센터는 1990년대 수도권과 대도시의 산업용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형 공장’ 형태로 도입됐습니다. 이후 제조업뿐 아니라 정보통신과 연구개발, 벤처기업 등으로 입주 대상이 확대되면서 2010년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현재의 지식산업센터로 명칭이 변경됐습니다.
실수요보다 투자수요…분양형 부동산 된 지식산업센터
그러나 산업시설이 분양형 부동산으로 활용되면서 당초 취지가 흐려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인화 산업혁신파트너스 대표는 “지식산업센터의 당초 목적은 제조업 육성과 산업 생태계 형성, 국가산단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시설 공급”이라면서도 현실에서는 “분양형 부동산으로 시세차익 추구를 위한 투자·투기 상품화 자산”이 되면서 산업집적 기능이 약화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저금리기 부동산 투자상품으로 인식돼 지역별 실수요 분석 없이 인허가 및 공급이 폭증했다”며 “실제 기업 입주보다 임대수익·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수요가 대거 유입됐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수도권에서는 오피스형 업종과 플랫폼기업, 1인 창업, 단순 법인 주소지 활용이 늘고 있으며 “일부 수도권 외곽과 국가산단에서는 실수요 부족에 따른 공실과 형식적 입주 사례도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렇듯 투자수요 유입과 실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공급 확대가 맞물리면서 과잉공급이 발생했다는 분석입니다.
공실 줄이기 나섰지만…AX 전환은 과제
정부도 지식산업센터의 공실과 미분양 해소를 위해 입주 규제 완화와 공급 관리에 나섰습니다. 산업통상부는 이달 10일 ‘지식산업센터 공실 대책 및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생산시설 입주 방식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일부 제한 업종을 제외한 업종의 입주를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신규 설립승인 때 인근 지식산업센터의 공실·미분양 현황과 기반시설 여건 등을 함께 검토하는 수급 조절 체계도 구축한다는 방침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해 다양한 기업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신규 공급 단계에서 실제 기업 수요를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며 “주변 산업단지와 기업의 입주 수요, 공실률 등을 반영해 과잉 공급이 우려되는 지역은 신규 공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일률적인 공급 총량 규제보다는 지역별 실수요에 따라 공급과 입주 규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공실과 공급 문제를 조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식산업센터의 기능 자체를 AX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정 대표는 “물리적 공간 공급에서 벗어나 입주 기업의 성장과 DX·AX 혁신을 지원하는 서비스와 산업 생태계 제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G밸리 현장에서도 기업 간 집적이 협업과 AX 전환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재우 G밸리경영자협의회장은 “지원 시설을 제외하고 1만4000여개 기업이 있지만 기업 간 거래나 협업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며 “입주 업종의 다변화로 업종별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지 않고, 협업을 통한 상승효과를 추구할 만큼 정보 교류나 필요성 인식도 부족하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소규모 중소기업일수록 AX에 필요한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이 회장은 “입주 기업 중 90% 정도가 10인 이하 사업장”이라며 “전문업종의 중견기업과 별개로 소규모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 수준은 낮고, 여러 지원제도가 있지만 비용이나 부담감으로 인해 검토 단계에서부터 소극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공간 분양 넘어 AX 플랫폼으로…공급·운영·성과 모두 바꿔야
이에 전문가들은 지식산업센터를 공동 AX 인프라와 기업 성장 지원 체계를 갖춘 산업 플랫폼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단계는 공급 방식의 전환입니다. 정 대표는 “‘맞춤형 혁신 인프라 기획’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초기 기획 단계부터 특화산업이나 앵커기업의 수요를 반영한 설계를 제안했습니다. AI 특화센터의 경우 “대용량 전력망과 공용 데이터센터, 실증용 테스트베드 등을 갖추고 기업의 성장 속도에 맞춰 공간을 확장하거나 융복합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가변형 벽체와 코워킹 공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김 교수도 “공동 데이터센터와 AI 실증공간, 스마트 제조설비, 연구개발 장비 등을 마련하고 기업과 대학·연구기관이 공동으로 R&D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운영 방식의 전환입니다. 정 대표는 ‘스마트 플랫폼 및 생태계 운영’을 제안했습니다.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을 연계해 입주 기업의 경영 지원과 투자 유치, 판로 개척을 돕고, 센터 운영 주체가 기업 간 연결을 지원하는 ‘커뮤니티 매니저’ 역할을 맡는 방식입니다. 또 “IoT 센서, DX 기술을 도입해 건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입주 기업의 탄소중립·ESG 경영을 인프라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이 회장도 “지식산업센터 단위나 업종별 기업들이 공동 장비·데이터 인프라·AI 솔루션·전문 인력을 공유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이러한 자원을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은 지식산업센터의 성과 자체를 임대수익이 아닌 입주 기업의 성장과 AX 융복합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정 대표는 “대기업·중견기업의 R&D센터를 유치하고 스타트업과 기술 교류·융복합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허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입주 기업 간 협업 매칭과 공용 B2B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AI 기반 협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어 “단순 분양률 대신 고용 창출과 제조업 비중, R&D 투자, 수출액, 입주 기업 생존율 등을 지식산업센터의 성과지표로 활용하고, 산단별 제조업 수요와 입주율·공실률을 평가한 뒤 신규 공급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정 대표는 “지식산업센터를 부동산 투자상품이 아닌 디지털·AX 전환을 지원하는 산업 플랫폼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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