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전략회의'에서 로봇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이재명정부가 이른바 'K-팔란티어 육성 정책'으로 불리는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중소벤처기업부, 국방부, 방위사업청,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해 추진하는 이 정책은 지난 6월26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전략회의'에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2030년까지 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신안보 분야 기업 5곳과 매출 1000억원 기업 50곳을 육성해 K-방산 지속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정책에는 △신안보 전략 분야 및 혁신기업 지정 △1년 이내 첨단무기체계 최초 배치 가능한 신속 조달 체계 구축 △기업의 군 작전 참여 연구개발 △정부가 100% 직접투자하는 한국형 인큐텔 설치 등 전략적 공공투자 기반 구축 △혁신기업 개발 지식재산권 보장 등 신시장 진출 촉진 △국무총리 회의체 설치 등 범정부 협력 체계 구축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는 △군 선도 최신기술 실증 △국방 데이터 민·군 공동 활용 △첨단전력 신속·대량 획득 체계 구축 △국방 첨단전력 생태계 구축 등의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기존 무기체계 중심 방위산업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데이터, 드론, 로봇, 사이버보안 등 첨단 민간 기술을 활용하는 신안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형 국방 AI 플랫폼 기업 육성, AI 기반 안보 역량 강화, 신안보 분야 혁신 중소기업 집중 지원 등이 핵심 과제로 정해지면서 업계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전쟁 양상 변화 따른 K-방산 구조 전환
정부가 이런 정책 방향을 설정한 것은 최근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에서 나타난 전쟁 양상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론과 AI,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 자율 무인 체계와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 기술들이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국가 경쟁력은 단순히 무기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우수한 AI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존의 전차, 함정, 항공기 중심의 방산 구조를 넘어 AI와 플랫폼 중심 국가전략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책 발표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9일에는 1차 실무협의체가 가동되기도 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실무협의체 구성 및 운영 방안 △신안보 전략 분야 지정 및 관련 기술 로드맵 수립 △신안보 후보·혁신기업 지정 방안 △신안보 관련 법률 제·개정 일정 △국방 오픈이노베이션 및 투자설명회(IR) 개최 △기술특화 자산운용사 한국전략기술파트너스(KSTP) 설립 추진 방안 등이 중점 논의됐습니다. 정부는 향후 매월 실무협의체를 운영해 추진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신안보 전략 분야 및 혁신기업 선정기준, 한국형 인큐텔 설립 방안 등 세부 과제가 마무리되면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업계는 정부가 AI, 데이터, 드론, 디지털트윈, 사이버보안 등 첨단기술 기반 기업을 국가 안보 역량의 중요한 축으로 인식하고 범정부 차원의 육성 정책을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는 반응입니다. 그동안 안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혁신 중소기업들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정책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아직 현장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체감도가 높지 않다는 겁니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발표 자체가 아니라 현장에서 얼마나 체감할 수 있느냐인데 아직 그럴 수준이 아니라는 게 업계 소식통의 말입니다. 이 소식통은 "AI, 대규모 언어모델(LLM), AI 에이전트, 디지털트윈, 유무인복합체계 분야에서 독자적인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연구개발 사업 참여 과정에서 높은 진입장벽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정부가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을 선언했지만 실제 사업 공고와 평가체계를 살펴보면 기존 체계와 크게 달라진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방 AI 분야는 제조 중심 산업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 산업입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며 혁신 역시 중소벤처기업과 혁신기업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글로벌 AI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대부분 창업 초기에는 작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대부분의 국방 연구개발 체계와 사업 구조는 여전히 기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혁신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미래전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도 실제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을 위한 새로운 제도와 정책 체계가 완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미래 전장의 변화가 입법과 제도 정비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국내 혁신기업들은 성장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차원의 기술 경쟁력도 뒤처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도기 정책' 활용해 혁신 생태계 조성해야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전문가들은 법령, 조달 규정, 평가 기준 등을 포함한 제도적 정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안보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연구개발 사업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 정책을 써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미래전 핵심 분야 혁신기업의 연구개발 사업 참여를 지원하는 별도 트랙을 운영하거나, 혁신기업 전용 시범 과제와 기술실증 사업을 확대하는 등 일정 수준 이상 혁신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신안보 혁신기업을 육성하는 이유는 단순히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미래 전장의 핵심 기술이 대기업뿐만 아니라 혁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으로부터 등장하는 현실을 반영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정부가 이 정책으로 육성해야 하는 것은 미래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 생태계입니다.
방산중소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정책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들이 실제 연구개발 사업과 실증 사업에 참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며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와 사업 구조, 평가 체계가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혁신기업 육성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며 "정책의 취지가 현장에서 구현될 때 대한민국이 신안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