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유독가스 냄새 때문에 너무 더운데도 문을 다 닫아놓고 있어요."
20일 인천 서해구의 쿠팡 물류센터 화재 이후 신현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선 일상이 송두리째 빼앗긴 주민들의 탄식이 이어졌습니다. 체육관 바닥엔 이불과 매트리스가 줄지어 깔려 있었고, 한쪽에선 현장 의료진이 주민들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휴대전화로 가족 안부를 확인하거나, 베란다와 차량에 검게 내려앉은 분진 사진을 서로 공유하며 피해 상황을 나눴습니다.
화재는 61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사고 현장에서 끊임없이 풍겨 오는 연기와 유독가스 냄새 탓에 창문조차 열지 못하는 답답함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연신 목을 가다듬거나 기침을 하며 답답함을 호소했습니다. 인근 아파트 주민 A(68)씨는 "유독가스 냄새 때문에 목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럽다"고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연기 유입을 막으려고 모든 창문을 닫고 생활한 탓에 성큼 다가온 더위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에어컨을 틀어도 환기를 할 수 없어 실내 공기는 이내 답답해졌습니다. 주민들은 "문을 잠깐만 열어도 탄 냄새가 훅 들어온다"며 "환기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미지=뉴스토마토)
취약계층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폐가 좋지 않다는 B(70)씨는 연신 기침을 하며 "연기를 계속 마셔서 너무 걱정"이라며 "어린 손주도 유독가스 냄새 때문에 일단 다른 지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인근 어린이집 31곳과 초등학교 1곳이 휴원·휴교에 들어가면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습니다. 맞벌이 부부인 C(36)씨는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다"며 "갑작스러운 돌봄 공백에 애가 탄다"고 했습니다.
체육관 한쪽엔 주민들이 급히 챙겨 나온 최소한의 생필품이 놓여 있었습니다. 갈아입을 옷이나 세면도구를 미처 챙기지 못한 주민들은 연기와 분진을 뚫고 다시 집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D(61)씨는 "연기가 빠졌는지 보려고 집에 갔다가 불길이 다시 살아나는 걸 보고 바로 튀어나왔다"며 "씻는 것조차 쉽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집에 가는 것마저 불안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물류센터 근처에서 만난 주민들도 차량과 주택 곳곳에 내려앉은 검은 분진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대피소로 향하던 길에 만난 E(58)씨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네 사진을 보여주며 "차에 시커먼 재가 다 내려앉았다. 아침에 세차를 했는데 금방 또 날아왔다"고 허탈해했습니다. 사진 속 차량 유리와 지붕에는 검은 분진이 수북했고, 비를 맞은 자국을 따라 검은 물이 길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베란다와 창틀에도 재가 쌓여 "닦아도 닦아도 또 쌓인다"고 토로했습니다.
재난 의료·심리 상담 이어져…대피소에 의료진 상주
피해 주민들을 위한 의료지원과 심리상담도 현장에서 긴급히 이뤄졌습니다. 의료진은 대피소 주민들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며 건강 상태를 살폈습니다. 목 통증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이들에겐 상비약을 제공하거나 병원 진료를 안내했습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주민들은 의자에 앉아 증상을 설명했고, 의료진은 기저질환 유무를 하나씩 확인하며 진료를 이어갔습니다.
20일 인천 서해구 신현초등학교 대피소에 마련된 현장 응급의료소에서 의료진이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현장에서 주민들을 진료한 한 간호사는 "대피소를 찾은 주민들 가운데 목이 따갑거나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고령자나 기저질환이 있는 주민들은 증상을 더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현재는 대부분 경미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지만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면 병원 진료를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료부스 옆에는 대한적십자사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상담 부스도 마련됐습니다. 상담사들은 주민들과 마주 앉아 당시의 충격을 차분히 경청한 뒤, 심리 안정 프로그램과 '마음안심 키트'를 건네며 불안을 덜어줬습니다. 상담이 더 필요한 주민들에게는 지역 상담기관과 연계한 후속 상담도 안내했습니다.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관계자는 "재난은 직접적 신체 부상이 없더라도 심리적 트라우마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며 "화재를 직접 목격한 주민들은 작은 불빛만 봐도 당시 상황이 떠오르거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난 직후에는 괜찮다가 며칠이 지난 뒤 뒤늦게 증상이 나타나는 사례도 많아 초기 상담과 지속적인 추적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인천=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