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족쇄' 된 불법체류자 신분…경찰 "에어건 학대 노동자, 안전가옥 제공"
사건 발생 한 달 넘었지만 분체자 신분에 신고 안 해
본국 송환 우려했지만…경찰 "강제출국 계획 없어"
이재명 대통령 "야만적 인권침해 철저히 조사하라"
2026-04-08 13:48:24 2026-04-08 15:14:53
[뉴스토마토 박진석 기자] 사업주로부터 '에어건 학대'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가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 자신이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보니 강제 출국을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그의 본국 송환 대신 안전 가옥을 제공하는 등 지원에 나섰으며, 업주를 상대로는 자세한 범행 경위를 수사 중입니다.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8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날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대를 중심으로 수사관 10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편성해 피해자 A씨 및 현장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같은 날 가해자인 사업주 B씨를 상해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습니다.
 
앞서 지난 2월20일 경기 화성시 소재 도금업체에서 태국 국적 외국인 노동자 A씨(50대)가 근무하던 중 사업주 B씨가 A씨 항문에 에어건을 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A씨는 복부가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장기 손상 및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1차 응급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병원 치료 중입니다.
 
그런데 A씨는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찰도 이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언론 보도를 접하고 사실을 확인한 수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A씨는 본인이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강제 출국을 우려해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2011년쯤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해 한국에서 일하다가 2020년 비자 만료 후 미등록 신분으로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해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씨를 돕는 조영관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A씨는 국내 체류 자격이 없어 경찰 신고를 생각조차 못 한 상황"이라며 "사건 이후 2차 수술을 받아야 해 지인들을 통해 수술비를 마련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또 "그가 치료받은 병원에서도 경찰에 별도로 신고하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B씨가 '장난으로 에어건을 쐈다가 사고가 났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고, A씨가 국내 비자가 없는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해당 업체에서 일하는 동안 B씨와 다른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폭행하는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그는 1차 응급수술 후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장폐색 등 중상을 입었으며 현재 장루 주머니를 착용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고, 그와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차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비싼 병원비를 부담하기 어려워 난처한 상황입니다. 조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에 A씨의 산재 요양급여를 신청하는 등 지원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소재 국내 이주민 지원 단체 관계자는 "불법체류자라 해도 인권이 있다. 가혹 행위로 인권을 유린했다면 지탄받아야 한다"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불법체류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본국으로 송환될까 두려워 가혹 행위나 부상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불법체류자도 폭행이나 산업재해를 당하는 등으로 상해를 입으면 경찰이나 노동 당국에 신고할 수 있으며 치료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의 우려와 달리 그를 본국으로 송환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수술한 병원의 진단 내용 등을 살피는 등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조만간 B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입니다.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치료가 급하게 필요하거나 범죄 피해자인 경우 강제 출국 시키지 않는다"며 "A씨가 지낼 안전 가옥을 제공했고, 체류 신분과 관계없이 심리 상담 및 치료비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사건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경찰과 노동당국에 "사건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전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중대 범죄"라며 "이주노동자는 함께 미래를 열어갈 소중한 동반자이며, 마땅히 존엄을 보장받아야 할 인격체다. 야만적인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엄중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에서 다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국내에 머무르고 있다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부와 법무부 등 관계 기관이 적극 조치할 것으로 주문했다고 했습니다.
 
노동부는 경기지방고용노동청과 함께 해당 사업장의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행 및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관계법 전반의 위반 여부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할 계획입니다. 법무부도 피해 외국인의 회복을 위해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제공하고 범칙금 면제 등 가능한 보호 방안을 지원하고 불법 고용 등 출입국관리법 위반 여부를 파악할 방침입니다.
 
박진석 기자 ptba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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