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정부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따른 경제 위기 대응을 위해 총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했습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고유가 사태로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자 재정을 투입해 그 충격을 막아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는 이번 추경 편성으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그럼에도 올해 정부 목표인 경제성장률 2.0%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고유가로 인한 경제 충격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한국의 에너지 의존 구조를 근거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동발 악재에 추경 응급처방…초과세수로 재원 마련
정부는 31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총 26조2000억원 규모의 '중동 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추경안'을 확정·의결했습니다. 올해 출범한 기획예산처가 내놓은 첫 추경안이자, 지난해 6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추경안입니다. 이번 추경은 역대 여섯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추경 상세 브리핑에서 "추경 예산안을 19일 만에 속도감 있게 마련했다"면서 "정부는 하루빨리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덜어드리고 현 정부가 어렵게 되살린 경기 회복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신속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추경 편성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정부 총지출은 753조1000억원으로 본예산(727조9000억원)보다 11.8% 늘었습니다. 총수입은 700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7.5% 증가했습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52조5000억원으로 예상되며,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 흑자를 뺀 관리재정수지는 107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재원은 반도체 경기와 증시 호조에 따른 초과 세수 25조2000억원과 기금 자체 재원 1조원을 활용해 국채 발행 없이 마련했습니다. 정부는 이 중 1조원을 별도로 국채 상환에 투입해 재정건전성도 고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는 51.6%에서 50.6%로 1%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정부는 총 26조2000억원의 추경을 집행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 정부 지출을 고유가 피해가 큰 분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추경이 물가를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진단합니다.
박 장관은 "추경 효과로 올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0.2%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조용범 예산처 예산실장은 "경제 전반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고유가 피해 산업과 계층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데다, 현재 마이너스인 GDP갭률과 국채 발행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물가 자극 우려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26조 쏟아부어도 '역부족'…한국 성장률 전망치 '뚝 ↓'
하지만 추경 편성에도 올해 정부 목표치 성장률 2.0%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는 게 시장의 중론입니다. 앞서 정부와 한국은행 등은 반도체 호황, 소비 회복 등에 힘입어 올해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인 2%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현재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대다수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의 에너지 의존 구조를 하향 조정 이유로 꼽습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0.4%포인트나 끌어내렸습니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영국(-0.5%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하락 폭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NABO)도 전쟁 장기화 시 성장률이 최저 1.5%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NH금융연구소는 전쟁이 1년 이상 지속할 경우 0%대 성장에 직면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제시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씨티 역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낮췄고, 바클리도 2.1%에서 2.0%로 각각 하향 조정했습니다.
대다수 기관들의 성장률 하락 배경에는 고유가와 고환율이 작용했습니다. 현재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5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30일(현지시간) 전장보다 0.19% 오른 배럴당 112.78달러로 장을 마치는 등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가 급등에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4원이나 뛴 1530.1원에 거래를 마치며 1530원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증시 역시 위험회피 심리에 한국거래소에서 코스피 지수가 전일보다 4.26% 급락한 5052.46에 장을 마치는 등 5000선까지 후퇴했습니다. 정부가 26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지만, 중동발 '에너지 쇼크'를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시장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한은은 이날 '2025년 4분기 시장안정조치' 관련 브리핑을 열고 작년 4분기 외환시장에서 실시한 외환 순거래액이 -224억600만달러라고 밝히며, 최근 환율 상황에 대해 "특정 환율 수준을 직접 타깃(목표)으로 하지 않았지만, 환율이 속도 측면에서 빨리 올라가고 있고 저희 역시 긴장감을 갖고 보고 있다"며 "시장 심리와 쏠림 현상이 뚜렷하고 다른 통화와 괴리가 심해지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동 사태 대응을 위한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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