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탄핵→구형…윤석열, 처음부터 끝까지 '궤변'
형사재판 핵심 변수 '반성'…책임 인정은 단 1번도 없었다
2026-02-18 18:00:00 2026-02-18 18:26:51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그리고 내란 우두머리 1심 재판 과정에서도 윤석열씨 대응 논리는 '전면 부정'이었습니다. 계엄의 위헌·위법성과 물리력 행사 정황까지 확인됐음에도 그는 이를 "대국민 호소용 조치"이자 "대통령 권한 행사"로 강변했습니다. 계엄 선포 책임은 거대 야당에, 실행 책임은 부하에게 돌렸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시민이 온몸으로 막아낸 내란에…윤석열 "군인들 스스로 나왔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씨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꺼내 든 논리는 "반국가 세력 척결"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 직후 선포된 1979년 비상계엄 이후 45년 만이자, 민주화 이후 첫 선포였습니다.
 
윤씨는 국회의 탄핵 추진과 예산 삭감을 "입법 독재"이자 "반국가 행위"로 지목하며 야당을 체제 전복 세력으로 규정했고, 계엄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국가 통합을 책임져야 할 최고 통치권자가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이를 체제 위협으로 규정해 군사력을 동원한 것입니다. 헌법상 선포 요건(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도 갖추지 못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이었습니다.
 
육군 최고 특수부대인 특수전사령부 소속 707특수임무단(707특임단)은 국회 유리창을 깨고 난입해 본회의장으로 향했습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하려고 의원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시민과 보좌진이 온몸으로 막아선 덕에,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 다음날인 12월4일 새벽 1시3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의안 통과 이후에도 계엄군 일부는 진입을 시도했고, 이들이 완전히 철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란이 실패로 돌아간 후 체포될 때도 윤씨 논리는 반복됐습니다. 그는 체포 직후 영상 메시지에서 "불미스러운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불법 수사에 응하기로 했다"고 주장하며 수사기관에 체포된 상황을 마치 '자진 출석'인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헌법 수호 책무를 저버린 당사자는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며 선동을 이어갔습니다. 계엄의 위헌성 논란이 커지자 "거대 야당의 행위가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판단했다"며 "대통령에게 독점적·배타적으로 부여된 비상계엄 권한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윤씨는 탄핵 심판 과정에서도 "군인들이 국회 본청에 진입했는데, 국회 직원들이 저항하니 스스로 나왔다", "체포하거나 끌어내려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계엄군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았고, 의결도 방해하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실제 707특임단은 국회 투입 과정에서 비무장 민간인을 폭행하고 케이블타이로 결박하려 하는 등 물리력 행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윤씨는 비상계엄 선포 역시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행사"라고 주장하며 위헌성을 전면 부정했습니다. 국가 권력을 헌정 질서에 의해 위임된 공적 권한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에게 귀속된 사적 권력처럼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 대목입니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내란 혐의를 부인하던 윤씨는 헌법재판소에 낸 답변서에서 국회가 계엄을 해제하는 데 "적어도 며칠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고 밝히며 자신의 주장을 뒤집기도 했습니다.
 
2024년 12월 밤 제707특수임무단 등 계엄군이 국회 내부로 진입하자 보좌진들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야당 탓 이어 '부하 탓'까지…끝내 "내 책임은 없다"
 
탄핵심판 막바지에서 윤씨의 책임 전가는 한층 노골적이었습니다. 정치인 체포 명단과 위치추적 요청을 두고선 "정말 불필요한 일이고 잘못됐다"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순 작전통이라 수사 개념 체계가 없다"고 깎아내렸습니다. 체포·위치추적처럼 정치적 파장이 큰 행위는 '실무자의 무지'로 돌려버린 것입니다.
 
자신에게 충심을 다했다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을 두고는 "나와 통화한 것을 가지고 대통령의 체포 지시와 연계해서 내란과 탄핵 공작을 했다"고 했습니다. 
 
포고령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은 비상계엄의 위헌성, 위법성을 가늠할 핵심 조항입니다. 윤씨는 이와 대해서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 책임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윤씨는 변론 과정에서 포고령 작성 경위를 구체적으로 먼저 제시하며 김 전 장관 답변을 유도했고, 김 전 장관이 "제가 주도적으로 작성했다"는 취지로 말하자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 전 장관이 윤씨 책임은 별로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이어 나가자, 윤씨는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궤변은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윤씨는 최후진술에서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87년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에 임기 후반을 집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초유의 내란 사태로 헌정 질서 전복을 시도한 당사자가 책임 인정이나 사과 대신, 개헌과 권력 구조 개편을 내세워 정국 구상부터 제시한 것입니다.
 
윤씨는 계엄 선포 이후 지금까지 위법성 인정, 사실관계 인정, 사과 등 형사재판에서 '반성'으로 평가될 만한 행위를 단 한 차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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