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준비 없는 12시간 거래제
2026-02-02 15:57:28 2026-02-02 18:04:41
한국거래소(KRX)가 오는 6월29일부터 '12시간 거래 체계'를 도입한다. 2027년 24시간 거래라는 장기 로드맵의 첫 단추로, 오전 7시 프리마켓과 오후 8시까지의 애프터마켓을 신설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절박하다. 자본시장의 선진화라는 명분이 무색하게도, 현장에서는 물리적 한계를 외면한 졸속 추진에 따른 시스템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상식을 벗어난 일정이다. 거래소는 3월 중순까지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이후 석 달간 모의 테스트를 거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증권사 일선의 IT 인력들은 개발 인력의 희생을 전제로 한 속도전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이번 개편은 단순히 거래시간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대체거래소(NXT) 출범과 맞물려 도입된 최선주문집행시스템(SOR)과의 연동, 복잡한 시장안정장치 설계, 그리고 전 채널의 개편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1월 중순에야 구체적인 안이 나왔는데 3월에 개발을 끝내라는 것은, 자본시장의 생명인 안정성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거래소는 회원사(증권사)의 요청을 반영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시장을 지탱하는 다른 축들은 소외됐다. 특히 이번 연장안에 상장지수증권(ETF) 거래가 포함되면서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인력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무 주문을 집행하는 사무수탁사들이 제도 개편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점이다. 기관투자자의 주문 프로세스가 멈춘다면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숙의 없이 '개별 면담' 식의 압박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민주적인 시장 운영 원리에도 어긋난다.
 
정부는 코스피 5000 시대를 외치며 거래시간 연장이 시장 활성화의 기폭제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거래시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투자 수익률이나 지수가 정비례로 상승한다는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시스템에서 발생할 주문 사고와 민원, IT 노동자들의 피로도는 고스란히 투자자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마저 NXT와의 지분 관계로 인한 한국거래소와 경쟁 구도 속에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하는 태도는 업계의 실망감을 키우고 있다.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라는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사람을 갈아 넣어' 6개월 만에 뚝딱 해치우는 식이어선 안 된다. 안정적인 테스트 기간 확보와 수탁사·운용사를 포함한 전체 생태계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거래소는 일방적인 기한 설정을 멈추고, 지금이라도 시장 참여자들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번갯불에 콩 볶듯 만든 시장에 투자자의 소중한 자산을 맡길 수는 없다.
 
이보라 증권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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