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기후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해양 탄소 저장 메커니즘이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학계에서 설명되지 않던 ‘심해 탄소 고정의 미스터리’가 미국 UC샌타바버러(UC Santa Barbara, UCSB) 연구진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고정되는지에 대한 기존 통념을 흔들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UCSB는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게재된 연구 결과를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심해에서는 ‘암모니아 산화 고세균’이 무기탄소(DIC)를 고정하는 주요한 미생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들은 암모니아를 산화하며 얻는 에너지로 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이해돼 왔지만, 실제 심해 관측치와는 여러 면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탄소 고정량과 질소 기반 에너지 공급량을 계산하면, 설명되지 않는 격차가 반복적으로 나타나 과학자들의 의문이 이어져 왔습니다.
바다는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약 3분의 1을 흡수하며 기후변화를 늦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해양의 자연적 탄소 순환 과정에 대한 이해는 기후 변화 연구에 긴요하다.(사진=뉴시스)
탄소 고정의 주역, ‘헤테로트로프(heterotrophs)’
이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독창적인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UCSB의 바바라 베이어(Barbara Bayer) 박사 등 연구진은 심해에서 암모니아 산화 고세균만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화학 물질(phenylacetylene)을 활용한 것입니다. 만약 기존 학설대로 이들이 심해 탄소 고정의 중심 역할을 한다면, 활동이 차단되는 순간 탄소 고정률은 크게 감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고세균의 활동이 억제됐음에도 탄소 고정량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계산의 불일치는 이 지점에서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심해 탄소 고정의 실제 주역이 따로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그 역할을 ‘헤테로트로프(heterotrophs)’로 불리는 또 다른 미생물 군집에서 찾았습니다. 유기물을 분해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진 이 미생물들이, 사실은 무기탄소 일부를 직접 흡수해 고정하는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언급돼 왔으나, 실제 환경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계량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해양에서 탄소가 어떻게 고정되고 깊은 바다로 이동하는지는 기후 안정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바다는 인류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약 3분의 1을 흡수하며 기후변화를 늦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탄소가 표층을 지나 심해로 이동해 오랫동안 저장되기 위해서는 해양의 자연적 탄소 순환 과정(biogeochemical processes)이 필요하고, 그 기반에는 ‘누가 탄소를 고정하는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자리합니다. 이번 연구는 그 과정의 핵심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입니다.
UC산타바바라 연구진은 심해에서 무기탄소 일부를 직접 흡수해 고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미생물인 ‘헤테로트로프(heterotrophs)’의 역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구 기후시스템 이해의 핵심 요소
연구진은 앞으로도 심해 탄소 고정 과정을 더 면밀히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탄소와 질소뿐 아니라 철·구리 등 다른 원소 순환과의 상호작용, 미생물이 고정한 탄소가 어떤 형태의 유기물로 전환되는지, 그리고 그 유기물이 심해 먹이사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이번 연구에는 UCSB의 니콜라 폴(Nicola Paul), 크레이그 칼슨(Craig Carlson)을 비롯해 빈대학, 우즈홀 해양연구소(WHOI)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연구의 일부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는 오랫동안 과학의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어둠 속에서 탄소 순환의 기초를 담당하는 미생물들의 역할을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심해 생태계와 지구 기후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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