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과학자들이 밝힌 ‘인지 피로’의 뿌리
뇌가 피로하면 몸도 쉽게 피로해져
수면 부족, 인지 피로 극대화 요인
2025-12-12 09:56:44 2025-12-12 15:01:57
사람들이 흔히 겪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피로’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뇌 대사 변화와 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생물학적 현상이라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감염 후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롱코비드(long COVID)’ 환자들의 극심한 피로 증상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인지 피로에 대한 연구가 급속도로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10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는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인지 피로의 원인이 뇌 대사 스트레스와 신경 신호의 어긋남에서 비롯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했습니다.
 
인지 피로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피곤한지 잘 모르게 된다. 지난 2월 대구의 한 정신건강디지털치료실에서 한 시민이 가상현실을 이용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지친다”
 
파리 뇌과학연구소의 마티아스 페시글리오네(Mathias Pessiglione) 박사는 인지 피로의 핵심을 ‘인지 제어(cognitive control)’ 영역에서 찾습니다. 익숙한 길을 운전할 때는 큰 피로가 없지만, 처음 가는 길을 주의 깊게 운전하면 금세 피곤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뇌는 전전두엽(lateral prefrontal cortex)을 집중적으로 쓰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글루타메이트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쌓이고 에너지 소모가 급증합니다. 페시글리오네 연구진은 2022년 실험에서 “고난도 인지 작업을 몇 시간 수행한 참가자일수록 즉각적 보상, 즉 쉬운 선택을 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밝혔습니다. MRI에서는 전전두엽의 글루타메이트 농도가 뚜렷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겪는 ‘퇴근 후 야식을 참지 못하는 이유’나 ‘야근 뒤 결정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분석입니다.
  
인지 피로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은 ‘대사 찌꺼기 독성 축적’ 이론입니다. 벨기에 겐트대의 클레이 홀로이드(Clay Holroyd) 교수는 피로를 ‘신경계가 보내는 일종의 경고음’으로 봅니다. 그는 “뉴런이 활동하며 남기는 대사 노폐물이 쌓이면 뇌는 손상을 막기 위해 피로 신호를 보낸다”라며 “이는 통증이 몸의 손상을 막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글루타메이트, 아데노신, 젖산, 아밀로이드-β 등이 관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인지 피로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자기 보고식 설문이나 수행능력 저하 등으로 평가해 왔지만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미시간대 다니엘 포거(Daniel Forger)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피로 정도를 매우 부정확하게 인식한다”며 “수면, 스트레스, 동기부여, 좌절감 등 변수가 많아 기존 측정법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뇌 대사물질의 변화나 뉴런 활동 패턴, 뇌영상 지표 등을 활용한 생물학적 피로 측정법 개발이 향후 연구의 핵심 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지 피로는 롱코비드, 만성피로증후군, 다발성경화증, 파킨슨병, 우울증, 암 치료 후 피로 등 다양한 질환에서 주요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미국 플로리다의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인 아나 리아 타마리즈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몇 줄 읽는 일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며 “수술 마취에서 깨어난 몽롱함이 계속되는 느낌”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뇌가 힘겨워 한다는 증거입니다. 
 
전문가들은 신체 피로와 인지 피로가 상호 강화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는 “힘든 정신 작업을 한 뒤 사람들은 육체적 노력을 기피하는 경향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인지 피로는 뇌가 보내는 경고 신호라는 것이 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이미지=챗GPT 생성)
 
“작은 일에도 뇌가 무너지는 경험”
 
수면 부족은 인지 피로를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입니다. 연구진은 장시간 각성 상태가 지속되면 뇌의 특정 뉴런 집단이 ‘국소적 수면(local sleep)’ 상태에 빠져 순간적으로 활동을 멈추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순간적인 판단 오류나 집중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피로 누적을 예측하기 위한 개인별 모델링·모바일 센서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 중입니다. 장거리 운항 조종사, 군인, 의료인 등 고위험 직군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피로는 ▲짧은 낮잠 ▲카페인 섭취 ▲햇빛 노출 ▲가벼운 산책 등으로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롱코비드나 근육통성 뇌척수염/만성 피로 증후군(ME/CFS) 같은 만성 피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질환마다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범용 치료제는 나오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만성 피로에 대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주요 접근법은 ▲작업에 대한 부정적 예측을 조절해, ‘할 수 있다’는 동기 체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인지행동치료(CBT) ▲비타민 B12나 항산화제, 영양제 등으로 에너지 대사 효율을 끌어올리는 전략 ▲뇌 염증 조절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저용량 날트렉손(Low-dose Naltrexone) 등을 투입하는 약물치료 등입니다.
 
페시글리오네 박사는 “피로를 무시하고 지속적으로 과부하를 주면 오히려 나중에 큰 붕괴가 올 수 있다”며 “뇌가 보내는 경고 신호를 적절히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언제 피로 신호를 무시해도 되는지’ ‘언제 반드시 쉬어야 하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네이처>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피로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생물학적 경고 신호다.” 결국 이 경고 신호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하느냐가 우리 일상의 건강과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