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경주 기자] 기록상으로 남아 있는 커피를 처음 마신 한국인은 민건호입니다. 그는 1884년 7월 27일 청나라 관리 탕샤오이에게서 커피를 접대 받았다고 자신의 일기(해은일록)에 남겼습니다. 1896년 9월 15일자 독립신문에는 독일인이 커피를 판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개화기의 일이지만, 이제 커피는 가장 보편적인 기호 음료가 되었습니다.
문체부 산하 국제문화홍보정책실 내놓은 영문 해외홍보 자료에는 한국을 ‘커피 공화국’이라고 지칭한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을 보면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런던에 있는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Euromonitor)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평균 커피 소비량은 2023년 기준 405잔으로 전 세계 1인당 평균 소비량(152잔)의 2.7배에 달합니다.
과학자들은 커피가 심장병, 결장암, 제2형 당뇨병과 같은 질병의 위험을 낮춰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탈리아 트렌토 대학, 미국 하버드 대학, 영국 킹스칼리지와 장내 미생물 연구에 특화된 연구기업인 ZOE 등에 소속된 31명의 연구원이 참여한 대규모 연구팀은 커피가 장내 유익균의 증식을 도와준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Microbiology)에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다국적·다학제 연구팀은 미국과 영국에서 총 2만2867명의 참가자로부터 수집한 메타유전체학(metagenomics) 샘플을 분석했으며, 참가자들은 장기간의 커피 소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제공했습니다. 연구팀은 참가자 개개인의 일일 커피 소비량과 이들의 대변 DNA를 분석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커피 소비와 인간 장내 미생물군의 관계를 조사한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였습니다.
그 결과, 커피와 특정 장내 미생물인 비당분해성 로슨박테리아(Lawsonibacter asaccharolyticus)사이에 강한 상호작용이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이 박테리아는 최근 인간 대변에서 분리된 종으로, 연구팀은 이 박테리아가 커피가 포함된 배지에서 더 잘 성장한다는 사실을 시험관(in vitro) 실험을 통해 입증했습니다.
연구진은 또한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을 활용해 장내 미생물군 조성과 커피 소비량 간의 연관성을 평가했습니다.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 사람 사이에는 장내 유익균의 조성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지만 적당히 마시는 사람과 많이 마시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크지 않아 커피 섭취가 장내 미생물군에 미치는 효과의 용량 의존성(dese-dependence)은 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쉽게 말하면 많이 마실수록 좋은 것은 아닙니다.
로슨 박테리아는 장내 대사과정에서 부티르산(Butyrate)을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물질은 장내 환경에서 장 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항염증과 장내 미생물 간의 균형 유지 작용을 합니다. 또한 손상되거나 비정상적인 세포를 제거하여 암 발생을 줄인다는 연구 보고도 있습니다. 따라서 부티르산을 만들어내는 로슨박테리아는 인간의 장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익균입니다. 커피가 로슨박테리아를 증식시키는 효과는 디카페인 커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번 연구의 공동책임자인 하버드대학 밍양 송 교수는 “현재 박테리아와 관련 대사산물이 실제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이를 통해 이 박테리아가 커피의 건강상 이점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서경주 기자 kjsuh5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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