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이어진 폭염이 결국 추석 연휴까지 덮쳤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 3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각종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등 피해도 잇따랐는데요. 더위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가을이 실종됐다’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례 없는 폭염의 장기화는 전세계 주요 환경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후 변화’에서 기인하는데요. 이러한 기후 변화가 무서운 속도로 ‘위기’로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토마토Pick이 올해 우리나라를 덮친 폭염과 기후 위기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가을마저 실종
추석 덮친 ‘극강 폭염’
기상청에 따르면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18일 전국 183개 기상특보 구역 중 91%인 166곳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는데요. 폭염경보 발령지는 서울을 비롯한 125곳, 폭염주의보는 41곳에 발령됐습니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 대부분 최고 체감온도는 33도 이상으로 9월 일 최고기온 극값을 경신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08년 폭염특보제 도입 후 9월 중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것은 지난 10일이 처음인데요. 열흘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폭염경보가 내려지며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늦게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기록됐습니다. 또한 추석 당일인 17일 밤 서울의 최저 기온은 26.5도로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도 갈아치웠습니다.
-유례 없는 가을 폭염…원인은? : 기상학적으로 ‘가을’의 시작일은 ‘일평균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내려간 뒤 다시 오르지 않았을 때 그 첫날’로 정의돼 있습니다. 평년(1991~2020년 평균) 가을 시작일은 9월26일로 이번 추석도 기상학적으로 여름에 포함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올해 추석이 다소 이른 편이기는 하더라도 이 같은 무더위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으로 꼽힙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추석 당일(17일) 평년 최고 기온은 24~28도로 올해 보다 약 5도 가량 낮습니다.
올해 이례적인 가을 폭염의 원인으로는 고기압과 태풍이 지목됩니다. 현재 한반도 대기 상층에는 고온의 강력한 고기압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중국 동북부에서 동해상으로 이동하는 고기압과 제13호 태풍 ‘버빙카’ 사이에서 기류가 형성돼 덥고 습한 공기가 유입돼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제14호 태풍 ‘풀라산’도 버빙카와 같은 경로로 움직여 무더위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역대급 폭염에 온열질환자↑ : 올해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자도 크게 늘었는데요.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올해 5월20일부터 지난 17일까지 발생한 폭염에 의한 온열질환자는 3611명에 달합니다. 전년 같은 기간(2802명)보다 809명 많습니다. 이는 최악의 무더위를 기록한 지난 2018년 4526명 이후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추석 연휴기간에는 11명의 온열질환자가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가을 폭염 언제까지? : 추석 연휴까지 이어진 폭염은 20일 이후로 누그러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상청은 20일 낮 최고 기온이 31도로 떨어지고 북쪽에서 남하한 기압골에 의한 비가 오면서 더위가 한풀 꺾일 것으로 예보했는데요. 가을 비가 더위를 식히고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유입돼 서늘한 가을 날씨를 되찾을 것이라는게 기상청의 설명입니다.
원인은 ‘기후 변화’
전문가들은 폭염 장기화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꼽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공기가 팽창하면서 고기압의 세력이 커져 폭염이 갈수록 강해지고 장기화되고 있다는 건데요. 실제로 최악의 더위로 꼽힌 1994년 폭염과 이후 24년 뒤 찾아온 2018년 폭염, 그리고 올해까지 역대급 폭염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은 사회 곳곳에서 직간접적인 피해를 야기하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는데요.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교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부산대 의생명융합공학부 공동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거주지 연평균 기온이 과거 평년 기온보다 1도 높아질 때마다 우울증 호소 응답률이 13%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2월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된 허슬기 예일대 교수 연구팀의 ‘한국 내 폭력범죄에 대한 기온의 단기적 영향에 대한 시계열 분석’ 연구에 따르면 폭력범죄는 기온에 비례해 증가하고 28도에서 가장 높은 위험을 보였습니다. 특히 폭행과 가정폭력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보고서 ‘기후위기 불평등과 사회보장’은 폭염 등의 기후변화에 따라 취약계층이 당면한 불평등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는데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정책 적용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정부도 대책 마련 부심
기록적인 폭염으로 사회안전망과 국민 건강에 경고등이 켜지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폭염 등 기후 위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로 한 것인데요.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기후 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분석 및 평가도구 개발’ 연구 용역 입찰을 공고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기후 변화에 따른 정신건강·심리사회적 문제가 심화하고 있는데다 건강과 소득 수준, 연령 등에 따라 영향 정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라며 연구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내년 10월까지 연구 결과를 도출할 계획인데요. 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관련 지표와 정책 개발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방침입니다.
보사연은 지난 8월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과제’를 통해 기후변화의 영향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피해와 심각성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는데요.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근거 마련 및 정책으로의 연결 측면에서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폭염과 폭우 등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단순한 자연적 변동을 넘어 전세계적 ‘위기’로 다가온 상황인데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만큼, 조속히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 국민의 건강 보호와 식량위기 및 재해 극복 등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