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비이성적 치킨게임
2024-09-06 06:00:00 2024-09-06 06:00:00
요새 어딜 가든 사람들이 병원 이야기만 합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과 응급실 대란으로 안타까운 죽음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때 '의정갈등', '의료대란', '의료공백' 등을 언급하는 글을 썼었습니다. 이제 '의정갈등이냐, 아니냐', '의료대란이냐, 아니냐' 등을 따지는 일은 허상과 같은 일이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2024년 9월5일 현재, 대한민국 의료 현실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을 열흘가량 앞두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에 문을 닫는 병원이 많은데, 응급실 파행 운영이 현실화되면서 '정작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 때문이지요. 우스갯소리로 몇몇 지인들은 "이번 추석 땐 절대 아프면 안 되겠다"라는 말을 수십 번 하더군요. 웃자고 한 소리지만 사실 되새겨보면 맞는 말입니다. 응급환자·구급대원들의 '뺑뺑이' 아우성이 대한민국을 흔드는 현실 속에서 추석 연휴 응급실 대란 사태는 예고된 수순입니다. 아파도 정작 갈 데가 없다는 말이지요.
 
정부는 응급실 대란 조짐이 짙어지면서 군의관·공중보건의 250명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비상진료 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말이죠. 이 말인즉슨 지방은 물론 수도권 일부 대형병원까지 응급실 진료 차질이 확산되자 응급의료 대책을 긴급 가동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의사 돌려막기'로 상황을 대처하는 게 정부의 계획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일부 어려움은 있지만 붕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추석 연휴 의료 특별 대책을 마련하고 비상 진료 대응 일일 브리핑도 하면서 국민 불안감 달래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이런 의사 돌려막기로 진료 차질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요. 더구나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250% 가산하는 대책을 내놨는데, 가격을 올려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저 헛웃음이 나옵니다.
 
현재 57개 대학병원 응급실 중 분만이 안 되는 곳은 14개, 흉부대동맥 수술이 안 되는 곳은 16개, 영유아 장폐색 시술이 안 되는 곳이 24개 등이라고 합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정부와 의사들이 체면 싸움을 벌여오면서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린 응급실 결괏값입니다. 정부와 의사들이 버티기로 일관한 결과라는 얘기입니다.
 
이젠 명절 때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까를 걱정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즐거운 마음이 앞서야 하는데, 아플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는 게 과연 살기 좋은 나라일까요. 정부와 의사단체는 당장 비이성적 치킨게임을 멈춰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국민 생명과 직결된 응급의료가 무너지는 상황은 막아야 합니다. 국민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습니까.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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