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마다 도서관에 간다. 평소 인당 5권씩인 대출 한도가 두 배인 10권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도 역시나 책을 잔뜩 빌려왔다. 돌아오자마자 개중 마음이 가는 것을 대충 뽑아 침대에 누워 펼치는데 무언가 팔랑하며 얼굴 위로 떨어졌다. 흠칫 놀라 살펴보니 바싹 마른 은행잎 한 장.
순간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땅에 떨어졌던, 고로 뭐가 묻어 있을지 모르는 은행잎에 대한 불결함, 딱히 이물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타인의 흔적이 도서관 책에 남았다는 불쾌함, 그에 더해 아주 약간의 감탄과 신기함. 요즘도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이 있네? 같은.
그러고 보니 이제는 책 속의 낙엽을 보면 불결한 감정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낙엽을 주워 본지 오래된 것이다. 한때는 책갈피로 꽂힌 낙엽이 낭만의 상징 같은 것이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바닥에 잔뜩 떨어진 낙엽 중에서 예쁜 것을 골라 책 속에 고이 넣어서 말리고, 잘 마른 것은 비닐로 코팅해서 간직하던 시절.
나 역시 어느 시절인가 그랬던 적이 있었다. 은행잎과 단풍잎을 정성스럽게 말리던 시절이. 그에 더해 네잎클로버까지. 중학교 3학년 때 어떤 시험을 준비 중이었던 나는 그 시험을 앞두고 집에서 가까운 한강 공원에 나가 열심히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와 같은 시험을 준비 중인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그날따라 유난히도 안 보이는 네잎클로버를 그 애를 생각하며, 그의 합격을 기원하며, 몇 시간이나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상태가 좋고 큼지막하기까지 한 네잎클로버를 찾아내고선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책갈피에 고이 넣어 말린 뒤 다 마르면 코팅해서 건네주리라고, 그럼 굉장히 기뻐하리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었다.
하지만 네잎클로버가 채 다 마르기도 전에 우리는 사이가 틀어졌고, 잘 마른 클로버를 코팅해서 전해줄 기회 또한 사라졌다. 또한 그 애는 시험에 합격했고, 나는 떨어졌다. 그러면서 나는 그 애를 몹시 미워하게 되었는데, 미움이란 방향만 다를 뿐 애정과 어찌나 비슷한 감정인지, 몇 시간 동안 공원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아 헤맬 때만큼 열정적이고도 집요했던 것이다.
코팅도 못하고 건네주지도 못했던 네잎클로버는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생이 되어 대대적인 책장 정리를 하던 즈음에야 다시 발견되었다. 마르다 못해 파삭한 상태의 네잎클로버. 오랜 세월 존재가 잊힌 채 책갈피 속에 고이 남아 있던 커다랗고 예쁜 네잎클로버. 그렇게 크고 예뻤던 클로버는 여기 이런 게 있었네! 하는 반가움에 손을 대자마자 가루처럼 부서져 내렸고 결국 책을 뒤집어 탈탈 털어낸 뒤에야 해결할 수 있었다.
책장을 털어내며 정말 오랜만에 그 애를 떠올렸다. 아주 오랫동안 그 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토록 사랑했고, 그토록 미워했던. 그러고 보면 사랑도 미움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바삭한 나뭇잎처럼 모두 흐릿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은 끝끝내 남기도 하지만 대개 그대로 잊혀지고, 희미해지고, 흐릿해지고, 바싹 말랐다가, 가루가 되는.
그러다 보니 문득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은행잎을 꽂아둔 사람이 궁금해졌다. 얼굴도 나이도 성별도 모르는 그 사람은 왜 은행잎을 주워다 이 책에 꽂아두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은행잎을 주웠고 왜 꽂아두었을까. 다 말린 은행잎은 어떻게 할 작정이었을까.
더워서 잠 못 이루던 나날이 엊그제 같거늘 어느덧 9월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서늘하다. 곧 나무들이 알록달록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조만간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아야겠다. 그러면서 같이 나뭇잎을 주워 보아야지. 이십여 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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