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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바위그림)솔롭키의 여름 풍경 그리고 역사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18)
2024-04-01 06:00:00 2024-04-01 18:34:12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솔롭키로 가는 배 위에서의 단상
 
솔롭키는 솔로베츠키 제도를 줄인 말로, 러시아인들이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다. 솔롭키는 백해의 남서쪽에 위치하는데 6개의 큰 섬과 약 10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가장 큰 섬이 솔로베츠키섬 또는 볼쇼이() 솔로베츠키섬이다. 솔롭키는 1992솔로베츠키 제도 문화·역사 유적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큼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이어서 여름마다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여름 한때의 시끌벅적한 시간이 지나면 북극권 근처의 외떨어진 이 군도는 다시 고요 속에 잠긴다. 15세기 솔로베츠키 수도원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사바티 성인이완전한 고독과 침묵의 기도를 위한 장소로 선택할 만했던 곳이다.
 
(볼쇼이)솔로베츠키섬의 백야. 사진=박성현
 
켐시의 외곽에 있는 라보체오스트롭스크 마을 선착장에서 솔로베츠키섬까지는 약 2시간이 걸린다. 향후 개별적으로 솔롭키를 방문하는 데 관심 있을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정보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둘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은 6월부터 9월 중순까지 운항된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갈 경우 무르만스크행 기차를 타고 켐에서 내린 후 택시나 1번 버스를 타고 라보체오스트롭스크 마을 부두로 가 배를 탄다. 만약 백해 암각화를 보고 갈 경우 벨로모르스크에서 내려 암각화를 구경하고 다음날 켐으로 가는 교외선을 타면 된다. 켐시 근교 마을의 부두에서 출발하는 여객선 표는프리찰(Prichal, 부두)’ 관광단지 웹사이트에서 예약을 하고 그 건물 매표소에서 구매해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인 보트를 대여해 오가는 방법도 있었다. 전에는 벨로모르스크에서 출발하는 여객선도 있었다는데 2023년 여름 당시에는 운항이 중단된 상태였다. 백해가 얼어붙는 겨울철에는 아르한겔스크에서 출발하는 소형 비행기가 솔로베츠키섬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솔로베츠키섬이 가까워지면 수도원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박성현
 
라보체오스트롭스크 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릴 때스웨덴과 핀란드에서 온 상품이라 쓰인 가게를 보고 의아했다고 지난번에 말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서방의 제재를 받는 중인데 두 나라의 상품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몹시 궁금했던 나는 결국 가게 안에 들어가 직접 물어보았다. 구체적인 방법을 들을 순 없었지만 오랜 세월 왕래를 해 온 국경지역 주민들에게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나름의 가능한 방식이 있는 듯했다. 이번 여정 말기에 나는 노르웨이의 알타 암각화를 보기 위해 무르만스크에서 버스로 국경을 넘었는데, 당시 러시아 승객들과 함께 이동하면서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었다.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드디어 바다 건너편에 솔로베츠키 수도원이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볼쇼이)솔로베츠키섬의 마을 풍경. 버려진 배들 뒤로 저수지와 수도원이 보인다. 사진=박성현
 
유네스코 세계유산 솔롭키로 모여드는 사람들
 
여름이 한창인 7~8월의 솔롭키는 소수의 현지 주민 외에 두 종류의 사람들로 붐빈다. 하나는 관광객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상대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다. 솔롭키가 속한 행정구역인 아르한겔스크주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숙박비가 비싼 곳이라 나는 이곳에서도 텐트생활을 할 계획이었는데 하차한 부두에서 텐트촌까지 가는 길을 몰라 물으니 다들 외지인이라 모른다 한다. 짐은 무겁고 택시를 잡기도 어려워 난감한 상황인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여름철 가이드 일을 하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외항선원 출신의 미하일 씨다. 외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이들은 현지 주민과 그룹을 이뤄 함께 일한다. 그가 동료인 현지 주민에게 전화해 알아본 결과 텐트촌은 꽤 멀었다. 다행히, 그의 다른 동료들이자 모스크바에서 온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머물다 철수하게 된 숲속 자리를 내가 이어받기로 했다. 그곳이 텐트촌보다 마을 중심에서 가까워 훨씬 효율적이었지만, 세면과 배터리 충전 문제는 전임자들이 알려준 대로 매일 카페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양해를 구해 해결해야 했다. 알고 보니 현지인의 그 카페가 외지인들과 협업하는 투어 조직이기도 했는데 그런 그룹이 여럿이어서 여름철 솔롭키의 경제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물고기를 널어놓은 현지 주민의 집 마당. 사진=박성현
 
솔롭키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이유는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집약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선사시대의 흔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군도는 고대 빙하의 영향으로 형성됐는데 대부분의 영토가 숲으로 덮여 있고 600개 이상의 호수가 있다. 솔로베츠키 제도의 영토와 인접 수역은 자연보호구역으로 여러 숲 동물과 각종 식물의 보고라 할 만하다. 여름철 벨루지곶에서는 극지방의 벨루가를 볼 수 있는데, 백해 암각화의 한 주인공이기도 한 이 북방흰고래가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곳이라 한다.
 
여름철 벨루지곶에서는 극지방의 벨루가(북방흰고래)를 볼 수 있다. 사진=박성현
 
역사·문화유산으로서의 솔롭키의 핵심은 역시 수도원이다. 솔로베츠키 수도원은 순례지가 될 만큼 러시아 정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번성기를 누렸지만 스탈린 시절 강제수용소인 굴락으로 변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세 명의 설립자조시마, 사바티, 헤르만 성인의 유해가 이곳에 보존돼 있다. 1429년 헤르만과 함께 솔로베츠키섬으로 들어와 6년간 수도생활을 한 사바티가 세상을 떠난 후, 1936년 조시마 수도사가 다시 헤르만과 이곳으로 와 수도원의 교회들을 건설했다. 16세기 중엽에는 수도원장 필리프 콜리초프가 도로를 내고 섬의 수많은 호수들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관개시설을 건설했으며 제분소를 세우는 등 섬과 포모르 사유지에 새로운 경제·산업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솔로베츠키 수도원은 백해 연안 포모르 지역의 산업 및 문화 중심지가 된다. 성인 사바티와 조시마를 기리는 작업도 그의 주도로 이뤄졌다. 차츰 목조교회가 석조교회들로 바뀌고, 16세기 말에는 수도원의 오각형 영토가 7개의 문과 8개의 탑이 있는 거대한 석조 벽으로 둘러싸여수도원 요새를 이루었는데 수비대와 포병을 갖춘 중요한 국경 요새였다. 그 밖에도 솔로베츠키 수도원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곳은 17세기 후반 니콘 총대주교의 교회 개혁에 반대한 근거지였고 16세기부터 수도원 감옥이 존재해 온 곳이기도 하다. 정치 또는 교회와 관련된 이유로 사람들을 가두던 이 감옥은 1883년에 공식적으로 폐쇄됐지만 20세기 초까지 이어지게 된다.
 
솔로베츠키 수도원 안뜰과 방문객들. 여성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입장한다. 사진=박성현
 
역사와 선사의 흔적
 
사회주의 혁명 이후 1920년 수도원이 청산되면서 수도원 영토에는 강제노동수용소가 등장했고 1923년부터 솔로베츠키 특수목적수용소(SLON)가 되는데, 이곳이 바로 굴락의 시초이다. 솔롭키의 수도원과 굴락박물관을 방문하면 이 역사과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죄수 막사 중 하나에 만들어진 굴락박물관의 전시물 속에 1927년 10월 1일 슬론(특수목적수용소)의 수감자들을 연령, 교육, 계층, 민족, 정당, 범죄 유형 등 여러 기준에 따라 분류한 표가 보인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민족별 항목에한국인(고려인) 1이 쓰여 있다. 이 먼 북극권 근처의 외딴 섬 수용소에도 우리 조상 누군가가 홀로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바라보았다. 모두 48개의 민족 출신이 표 안에 기록돼 있다
 
 
굴락박물관 전시물. '노동을 기반으로 - 문화생활을! 수용소에 더 가까이!' 라고 쓰여 있다. 사진=박성현
 
솔롭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해양박물관도 큰 몫을 한다. 해양박물관은 1841년에 지어진노 젓는 배를 위한 헛간을 복원해 2007년에 만들어졌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박물관의 아래층 중앙에는 백해에서 사용하던 포모르들의 전형적인 배를 재현해 놓았다. 예전에는 표트르 1세가 최초로 제작한 요트인성 베드로의 복제품을 4분의 3 크기로 축소해 이곳에서 만들었다 한다. 표트르 1세는 해양의 중요성을 알고 함대를 만들어 러시아 제국을 시작한 인물이다. 2003-2015년 사이에 제작된 복제품이 표트르 1세가 갔던 길을 따라 항해를 수행했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위층에는 북부 탐험의 열망이 담긴 지도들과 장비, 의복, 포모르의 항해 도구, 옛 사진 등 다양한 전시물이 지역의 해양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솔로베츠키 해양박물관에 전시된 포모르 선원들의 탐험 지도. 포모르는 백해와 북극해 연안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독자적인 민족지집단을 가리킨다. 사진=박성현
 
솔로베츠키 해양박물관에는 백해 연안 포모르들이 사용하던 전형적인 배를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사진=박성현
 
그런데 이 모든 견학거리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기대를 하는 것은 수천 년 전 유물로 추정되는 돌 미로와 돌무덤,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미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거대한 바위세이드이다. 그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군도의 다른 섬들로 가야 한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려는데 놀랍게 아름다운 솔롭키의 백야가 신비롭게 펼쳐져 잠을 방해한다.
 
(볼쇼이)솔로베츠키섬의 일몰과 백야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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