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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두 번 우는 에너지 공기업
2024-03-14 06:00:00 2024-03-14 06:00:00
4월 10일 총선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난방비 이슈로 정부를 공격하는 포스팅이 요즘 자주 눈에 띈다. 천연가스 가격은 크게 내려갔고, 가스공사는 2021년부터, 지역난방공사도 2023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는데, 왜 난방비는 수십만원을 내야 하느냐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즉, 에너지 공기업들은 수입 비용 절감으로 쉽게 돈을 벌고 성과급 잔치를 하면서, 서민들의 난방비는 갈취하고 있으니 이를 조장하는 정부를 투표로 심판하자는 식이다.
 
이런 주장들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22년 6월 이후 대폭 하락하여 현재는 고점 대비 1/10 수준인 점을 지적한다. 또한 지역난방공사가 23년 4분기에 회사 사상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한 점도 강조한다. 참고로 가스공사는 잠정 경영실적 기준으로 23년 매출액 44조5560억원, 영업이익 1조5534억원을 공시했고, 지역난방공사는 매출 3조9536억원, 영업이익 3147억원억원을 공시했다. 언뜻 보면 정말로 에너지 공기업들은 돈을 잘 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에너지 공기업이 서민들에게 난방비를 더 받아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는 주장은 좋게보면 오해, 나쁘게 보면 가짜뉴스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첫째, 소위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원유는 보관이 쉽기 때문에 성분이 다소 다르더라도 원산지별 유가 차이가 크지 않다. 그래서 단일한 ‘국제유가’라는 개념을 적용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하지만, 천연가스는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원산지와 유통 방식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고 단일한 가격지표가 없다. 다양한 천연가스 가격 지표들이 있는데, 이중 2022년 여름 고점 이후 1/10 이하로 가격이 폭락한 건 북미 대륙 파이프라인 천연가스 가격 지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북미 대륙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은 없고, 우리가 수입하는 천연가스는 전량 천연가스를 영하 163도로 냉각한 액화천연가스인 LNG이다. 수입 LNG의 평균 단가는 계산 방식이 복잡하다. 주로 국제유가에 연동되며 그 외 여러 계약 조건과 시장 유통 상황에 따라 수입단가가 결정된다. 수입 LNG 가격 통계를 보면 2022년 9월 LNG 톤당 1470달러로 고점을 기록한 이후 2023년 가을 이후 톤당 65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LNG 역시 국제 에너지 수급 상황에 따라 고점 이후 가격이 하락한 것은 맞지만, 1/10로 떨어진 건 아니다.
 
둘째, 가스공사와 지역난방공사 모두 22년에는 국제 에너지 위기로 수입 가격이 폭등하면서 적자를 기록했고, 23년에는 모두 흑자 전환했다. 그럼, 이들 에너지 공기업은 수입 LNG는 가격이 하락했지만, 서민들 난방비는 갑자기 올려서 돈을 벌어 흑자전환 한 것일까? 사실은 전혀 다르다. 이들 기업들은 지금도 원가 이하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2022년 LNG 수입 가격이 폭등했지만, 정부는 난방비 부담을 이유로 이들 기업들이 모든 부담을 지도록 강제했다. 실제로 2021년 LNG 수입가는 톤당 554달러였던게 2022년 9월에는 톤당 1470달러도 거의 3배가 올랐지만, 가정용 도시가스 가격은 입방미터당 14.2원에서 17원으로 20%만 인상되었다. 비유하면, 콩을 사서 두부를 만들어 팔지만, 두부값이 콩 값의 절반도 안 된 것이다.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들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는 것은 에너지 가격을 안정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들이 원가 이하로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감당하는 손실을 차후에 서서히 요금을 인상하여 회수하게끔 하고 있다. 이런 논리로, 수입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지만, 공급 에너지 가격에는 반영하지 않아 발생한 손실은 회계적으로는 ‘미수금’으로 처리하고 있다. 언제 얼마나 회수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회수할 수 있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손실인지 미수금인지 애매한 이 돈은 규모가 상당히 큰데, 가스공사는 16조원 규모이고 지역난방공사는 4000억원 규모이다. 하지만, 미수금은 현금이 아니기 때문에 에너지 공기업 입장에서는 애물단지이다. 당장 LNG를 수입하려면 대금을 지급해야 하므로 결국 채권 발행에 의지하게 되며, 가스공사의 경우 부채비율이 440%에 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말 미수금은 급증하고, 23년에도 흑자 달성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자, 정부는 미수금의 회계처리기준을 변경하도록 했다. 에너지 공기업이 LNG를 수입하고, 은행 차입을 하려면 회사 경영상태가 최소한 장부상으로는 건전해야 한다. 그런데, 적자가 누적되면 LNG 수입과 채권 발행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이로 인해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회수 기약은 없지만, 미수금을 비용이 아닌 채권으로 처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흑자를 달성하게끔 해서 급한 불을 껐다. 사실 미수금은 자산으로 분류돼 장부상으로 흑자지만, 실제로는 적자나 다름없다. 이는 정부도 업계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국제 에너지 시세 변동을 일정하게 흡수하면서 서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지난 수십년간 헌신해왔다. 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모두 손실, 적자, 미수금 등 표현만 다르지 본질적인 구조는 동일하다. 그 과정에서 공기업들의 직원들은 본인들의 잘못도 아닌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뼈를 깎는’ 원가 절감과 고통 분담을 강요받아 왔다. 또한 원가에 무관하게 에너지가 공급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에너지 절약 의식이 희박해지는 문제도 심각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마치 에너지 공기업들이 본인들은 큰 돈을 벌면서, 서민을 갈취하는 듯한 주장은 우는 사람 뺨 때리는 격이다. 차라리 원가를 반영하지 않는 왜곡된 에너지 시장 구조를 방치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맞다. 정부 여당이던 야당이던 사실을 왜곡하고 가짜 뉴스에 의존한다면 표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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