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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북한 전략에 대한 오독과 한반도 핵전쟁
2024-01-23 06:00:00 2024-01-23 06:00:00
연초부터 ‘한반도 전쟁’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미국 전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1990년대 초 북핵 1차 위기 당시 북미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박사는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가리키는 동북아 핵전쟁이란 바로 북한발 위기를 말한다. 한편, 북한이 전쟁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는 더 엄중한 경도도 제기됐다. 로버트 칼린과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에 나설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김정은의 최근 언행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군사적 해결을 가리킨다”고 지적하며, 글로벌 진영화라는 국제 정세가 김정은에게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들 전문가들의 경고는 꽤나 단정적이고 섬뜩하다. 한국 언론도 이들의 주장을 반복해서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염려하는 이들의 견해가 오히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높이며, 이는 북한의 전략 의도를 오독한 결과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 그러한가?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규정하며 “통일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유사시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강조했다. 표현만으로 보면 의심할 여지 없이 호전적이다.
 
그러나 호전적 주장으로 포장된 이면에는 핵무기와 신냉전 구도를 발판으로 자신의 체제보장을 확고히 하려는 현실적인 계산이 깔려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선대부터 계속되어 온 남조선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며, 남북한 간의 특수관계 유지가 오히려 북한 흡수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다. 동서독 관계에서도 유사한 전례가 있다. 서독은 양독 관계가 ‘특수관계’라는 입장을 견지한 반면, 동독은 1974년 통일 조항을 삭제하며 ‘두 국가론’을 주장한 바 있다. 국력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흡수통일을 두려워하는 약자의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동서독 관계와 지금의 한반도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북한은 응징을 위한 초기 수준의 억제를 넘어 전술핵 탄두, 신형 단거리 미사일 등을 통해 실전적인 핵전쟁 수행 능력까지 추구해 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북한의 핵 독트린이 억제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억제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자살적 핵 보복에 의존하는 것은 억제의 실효성과 신뢰성이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실전적 핵전쟁 수행 능력을 구축해 억제의 신뢰성을 높이고 유사시 대응이 가능한 현실적 옵션을 확보하자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다. 즉, 대미 응징 억제와 대한반도 거부 억제를 배합하는 전략이 북한 핵 독트린의 요체인 것이다. 이렇듯 억제와 전쟁 수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상대가 전쟁을 언급하거나 전쟁 수행 능력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를 전쟁 결심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속단이다.
 
상대의 의도가 불확실할 때는 최악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전쟁을 결심했다는 해석은 이를 좌절시키기 위한 한미의 예방적 군사적 대응을 요구한다. 그렇게 되면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북한의 전술핵 사용 임계점을 더욱 낮추게 되고,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상황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50년 김일성이 일으킨 전쟁은 부적절한 역사적 유추다. 2024년 한반도 전쟁은, 만약 일어난다면, 한미의 억제력이 약해서 김정은이 밀고 내려오는 형태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터져버렸던 제1차 세계대전, 1914년의 여름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리고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억제력 경쟁이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촉발 사건이 터지자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번져간 역사를 상기하자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진단이 잘못되면 역효과를 내는 처방이 나올 수 있다. 북한은 전쟁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억제력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 올바른 진단이다. 또한 신냉전 구도는 북한에게 한반도 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한국과의 화해·협력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진단이 이렇다면 우리의 처방은 더욱 냉정해야 한다. 북핵 억제태세의 유지, 강화 못지않게 한반도 위기 안정성이라는 엄중한 과제에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모아져야 한다. 지나친 비관주의와 과잉 대응의 압박감은 취약한 한반도 안보 상황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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