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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2024년 금융정책은 달라야 한다
2024-01-08 06:00:00 2024-01-08 06:00:00
금융지주와 은행권이 올해 경영전략의 최우선 목표로 일제히 '상생금융'을 내걸었습니다. 지난해 초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 이후 일 년 내내 이어진 금융당국과 정치권의 사회적 역할 강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인데요.
 
은행들은 연말 조직개편에서 상생금융 전담 부서를 신설, 은행권 공동으로 마련한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방안 실행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중은행들이 상생금융 전담 부서를 신설·확대한 것은 정부 요구가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초부터 은행들이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며 금융 취약계층, 소상공인 등을 위한 상생방안을 요구해 왔습니다.
 
고금리 상황에서 서민·소상공인들은 원리금 상환부담에 허덕이는데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올려 사상최대 실적을 거두는 등 이자이익에만 매몰하고 있다는 인식입니다.
 
은행권이 올해 또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연간 당기순이익 추정치는 17조2316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순익 추정치(16조5510억원)보다 4.1% 늘어난 수치입니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 등이 기대되면서 은행 이자이익이 대폭 증가하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다른 이익 변동 없이 성장세를 이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만큼 은행으로서는 막대한 이자이익으로 촉발된 '돈 잔치' 비난여론도 잠잠해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금융권에선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당국과 정치권의 전방위적인 상생압박 등 사회적 책임이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또한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민생금융 지원안의 빠른 실행을 요구하고 있어 올 1분기 모든 경영 역량을 상생금융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금융혁신이라는 단어는 구문이 된지 오래입니다. 은행들은 이자이익에 치중된 수익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수년째 각고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낡은 규제에 대한 혁신 없이 은행의 자체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규제 혁신에 대한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금융당국은 이자이익을 줄이라고 압박하면서 대체할 수익원을 찾을 수 있는 규제 혁신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완화가 있는데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하면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합니다. 김 위원장은 취임 당시 규제 혁신을 통해 금융산업의 '방탄소년단'이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다고 선언하며 금융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금융시장 상황이 불안하고 고금리의 부작용이 드러나는 가운데 금융시장 안정과 민생 대책이 당상 최우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업의 본질은 자금 중개에 있습니다. 고객으로부터 수신을 유치하고, 그 자금을 여신 형태로 배분하는 것입니다. 상생금융을 압박하면서 명분으로 내세운 '이자장사' 역시 은행업 본질인데, 은행을 탐욕 집단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 본연의 역할은 일회적 이익 환수보다는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 자금 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리·감독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이자장사'와 '돈잔치'라는 정치적 수사에 휩쓸려 채찍질만 한다면 제대로된 금융정책은 나타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3년차에 접어드는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정한 '룰'이 작동할 수 있고, 나아가 금융 혁신의 발목을 잡는 낡은 규제를 바로잡는 역할에 집중해주길 바랍니다.
 
이종용 금융증권부 선임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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