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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동료 시민
2024-01-08 06:00:00 2024-01-08 06:00:00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쓰는 말이 다릅니다. 비대위원장 취임사에서 핵심 단어로 ‘동료 시민’을 사용했습니다. 그동안 정치인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구호를 남겼지만, 연설에서 호출하는 단어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동료 시민!’ 한국 정치에서는 참 생소한 말입니다. 대부분 처음 듣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주 쓴다고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에도 등장하고, 얼마 전까지 오바마 대통령도 항상 동료 시민(fellow citizen)으로 연설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동료 시민’의 단어를 소개하고, 널리 쓸 것을 호소한 정치학자가 있습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입니다. <정치의 발견>, <정당의 발견>이라는 정치입문서 저자로 ‘국민보다 동료 시민’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칼럼도 썼다고 합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 칼럼을 보고, 배운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적확하지 않은 ‘국민’이라는 단어보다는 ‘동료 시민’이 상당히 신선하고, 색다른 호칭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정치권에서 널리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동료 시민’은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연대감을 가지는 각각의 주체인 시민들이라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고, 5000만 언어로 말하겠다는 한동훈 위원장의 연설에서 정말 아쉬운 점은 동료 시민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야당인 민주당을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 전체주의”라는 규정과 차별화는 이해할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동료 시민’을 갈라치고, 구분을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지방순회로 선택한 대전에서 현충사 참배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또 다른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동훈 위원장이 지나가는 곳에 마침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 집행위원장이 작년 7월 사망한 해병대 채 상병 추모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4m 옆을 지나가니까 정원철 위원장이 “한동훈 위원장님, 오늘 채상병 생일입니다! 참배하고 가주십시오!”하고 목소리로 여러 번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동훈 위원장은 앞만 보고 가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날은 채상병의 생일이라서 준비한 것이지 한동훈 위원장을 곤란하게 하려고 계획적으로 준비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한동훈 위원장이 말한 ‘동료 시민’ 속에는 채상병은 포함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동훈 위원장이 정치적 시각으로 본다면, 채상병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 해임과 기소 사건에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 사건만큼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 해병대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호국영령에게 참배하는 현충원에 가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숨진 채상병의 추모행사에 그냥 지나치는 것은 ‘동료 시민’이라는 연설이 자기편에 대해 호칭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키울 뿐입니다.
 
정치인의 말은 할 때보다 지킬 때가 중요합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선당후사’가 아니라 ‘선민후사’라는 멋진 말도 했습니다. 용산대통령실 입장보다, 국민의힘 당론보다,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이 먼저입니다. ‘동료 시민’은 다치고 아프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국민의 손과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한동훈 위원장의 진짜 용기와 헌신을 기다립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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