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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을 살리자-④)"학전 문화적 가치, 정부 개입 논의 필요"
학전 폐관에 부쳐…문화계 전문가 4인의 제언
2023-12-07 06:02:17 2023-12-07 06:02:1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33년 간 한국 대중문화계의 산실 역할을 해온 '학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운데, 문화예술 공간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을 돌아보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물론 학전은 공공이 향유한 문화터전·공간이기에 앞서 개인의 자본으로 일궈온 예술 텃밭이기에, 단순히 정부의 지원 부족 문제로 치부할 사안은 아닙니다. 다만, 김민기 학전 대표의 건강 문제를 계기로 내려진 이번 폐관 결정을 두고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공간에 대한 공공 개입의 문제를 고려해보는 것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문화계 전문가들은 내놓고 있습니다.
 
배해선(왼쪽부터), 장현성, 설경구, 방은진, 김형석, 박승화, 루카, 한경록이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열린 학전 AGAIN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학전 폐관 여부 결정 안돼…"공공 개입 논의 필요"
 
앞서 전날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지하 1층 KOMCA 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크가수 박학기는 "학전이라는 물리적인 장소의 존속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학전의 존폐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후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함께 고민이 필요하다. 문화적 재원이 정부든, 서울시에서든 나와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박학기는 학전 폐관을 앞두고 과거 이 출신 문화예술인들을 한 데 모으는 릴레이 공연('학전 AGAIN' 프로젝트’)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김민기 학전 대표의 그늘에서 나무로 성장한 이들이 내년 2월28일부터 3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프로젝트 기간동안 여행스케치, 시인과촌장, 크라잉넛, 유재하동문회, 하림, 이정선, 노찾사, 한상원밴드, 최백호, 한영애, 윤도현,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유리상자, 이한철, 이은미, 자전거 탄 풍경(자탄풍) 등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오릅니다.
 
박학기(왼쪽부터), 배해선, 장현성, 설경구, 방은진, 김형석, 한경록, 박승화, 루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열린 학전 AGAIN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그에 따르면 김민기가 회장직을 맡았던 김광석 추모사업회를 통해 현재 4억의 돈이 모여있는 상태입니다. 향후 이 금액과 이번 공연의 4000만원쯤 될 순수익을 합쳐 김민기의 순수성으로 대표되는 '학전의 정신이자 DNA'를 유지시켜가겠다는 입장입니다. 마음을 함께 하는 시민들의 후원도 독려할 예정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학전이라는 공간의 존폐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암 투병 중인 김민기 대표는 "공연장은 닫을 수 있어도 학전이라는 상징의 벽과 김광석 흉상 만큼은 유지해 마로니에의 산실로 분명히 지키고 싶다"는 입장입니다.
 
박학기는 "향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학전을 인수한다면, 김민기 형 개인의 소유를 책임져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 급여와 퇴직금 문제도 걸려 있을 것이다. 현재 형은 자신의 조그만 집 정리까지도 해서 빚을 청산할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학전의 폐관 결정이 단순히 정부의 지원 문제는 아니지만, 차후 공공 개입의 문제를 고려해보는 것은 필요하다는 게 문화계 전문가들의 입장입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학전의 경우 대학로라는 지역의 변화와 김민기라는 대표 창작자의 한계가 맞물려 멈추게 된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현상을 뭉뚱그려 지원이 부족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나이브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봤습니다. 그는 "오래된 문화 터전·공간이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어떤 변화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며 "다만 그 문화터전·공간이 꿈꾸었던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여러 다른 공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공공이 개입해야 할까를 이야기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2018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이 열린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가수 김민기가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정부, 공동체 삶 의미 깊은 문화 공간에 지원해야"
 
학전과 더불어 최근 들어 문화예술 성장에 물을 대는 공간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상이 곳곳에서 관찰됩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던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최근 철거됐고, 인디신에서는 '버텨내고 존재하기'라는 영화는 88년 된 광주광역시 최고(最古) 극장인 '광주극장'에서 찍으며 인디의 위기, 극장의 위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화 터전이자 공간들이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할까.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지역민 가까이에서 오랜 기간 함께 호흡한 문화 공간이 사라지는 일은 정서적으로 매우 안타깝다"고 짚었습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문화 종사자들도 이런 상황에 맞서 잊힌 문화 공간의 가치를 환기하고 대중의 여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개선의 노력과 의지가 얼마나 있었는지, 위기에 맞서 어떻게 다같이 고민하였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음악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점차 줄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특히 공연장 공간과 진작을 위한 지원사업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학전 폐관 문제를 계기로 유서깊은 문화 공간은 향후 공공 차원에서 개입 문제를 검토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의견이 나옵니다.
 
임희윤 평론가는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공간은 따로 지정해 관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며 "홍보 마케팅이나 재정에 관해 지원을 하는 방식도 있고, 끝내 문을 닫을 때는 영 다른 상업 시설이 되지 않고 또 다른 문화적 공간이 들어설 수 있도록 주선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대기업 문화재단 같은 곳에 맡기는 안도 제안하면서 "정부야말로 당장 티는 덜 나지만 공동체의 삶과 문화에서 의미가 깊은 곳에 지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한국 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시장 논리를 벗어나는 순간 생존 기반이 흔들려 음악계에 다양성과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대중성과 무관하게 존중받을 만한 성과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며, 이는 공공성의 성격이 강한 만큼 관이나 재단 같은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김민기 대표. 사진 = 극단 학전
 
<학전 폐관에 부쳐…한국 대중음악·공연계 전문가 4인의 제언>
 
-학전은 김광석을 비롯해 동물원, 들국화, 안치환, 나윤선, 전인권, 윤도현 등을 배출한 한국 대중음악계의 산실이자 공연계의 터전이었습니다. 학전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남긴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서정민갑:학전이라는 공연장의 존재는 1990년대 한국대중음악계의 라이브 문화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활발하게 펼쳐졌다는 사실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홍대라는 지역·공간에서 라이브 공연이 주로 펼쳐지지 않았던 시대니까요. 학전은 대학로의 다른 공연장들과 함께 신인·중견 뮤지션들의 라이브 콘서트를 소화하면서 대학로가 연극인들의 공간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즐기는 지역이 될 수 있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김광석의 릴레이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 같은 신화가 만들어졌겠지요.
 
김도헌: 학전소극장은 김민기가 세운 예술 극장이자 음악 공동체로, 개인의 자본으로 예술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키며 한국 대중문화계에 새로운 얼굴과 목소리를 공급한 산실이었죠. 김민기 대표의 말처럼 ‘모내기를 하는 곳’이었어요. 특히 대중음악계에는 1990년대를 수놓은 수많은 가수들이 관객과 맞닿은 곳에서 실황 무대를 펼치며 경험을 쌓고 역사를 만들어간 공간이죠. 학전을 통해 데뷔하고 학전을 통해 경력을 쌓은 음악가들이 현재 대중음악계의 거목으로 성장했어요.
 
서정민갑: 2000년대부터 한국대중음악계의 공연 문화가 대학로가 아니라 홍대 앞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학전의 역할도 바뀌었죠. 학전에서 라이브 콘서트가 열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학전 블루와 그린, 두 공연장에서는 주로 김민기가 만든 뮤지컬을 공연했으니까요. 그 때부터 학전은 국내 창작 뮤지컬의 일익을 담당하는 공간이자, 김민기의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던 작품이 있었고, 좋은 배우들을 배출할 수 있었겠지요. 
 
임희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 소극장 문화의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기둥 중 하나죠.
 
-이런 문화 터전이자 공간들이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할까요.
 
서정민갑: 문화 터전과 공간이 사라지는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공공영역에서 충분한 지원과 연계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장의 상황이 바뀐 것도 있다고 봐요. 시장의 상황이 바뀌었을 때, 기획자/창작자의 기획력만으로 돌파하기는 쉽지 않을텐데요.
 
임희윤: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도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죠. 문화를 소비하는 양태와 매체의 변화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그렇게 문화는 흘러가는 것이죠. 다만, 지역민 가까이에서 오랜 기간 함께 호흡한 문화 공간이 사라지는 일은 정서적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서정민갑: 저는 오래된 문화 터전·공간이 사라지는 건 아쉽지만 어떤 변화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고요. 오래된 공연장, 의미있는 공연장이 학전만 있는 게 아닌데 학전만 지원해주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공간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공간의 정신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김도헌: 문화공간, 기억의 공간에 대한 존중의 시선이 결여돼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자체의 경우 공간의 가치를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그러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철거를 강행하는 과정도 폭력적이고 급작스럽죠. 
 
이대화: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취향도 변하는 만큼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공간들이 문을 닫거나 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마니아들의 숫자가 적고 매체들의 깊이가 얕은 한국적 상황을 감안할 때 적절한 환경만 갖춰졌다면 더 오래 지속되고 관심도 더 받았을 거란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런 문화 터전들이 사라지는 원인 중 하나는 점차 비싸지는 임대료에 비해 흥행이 되지 않는 문제가 꼽히기도 하는데요. 오래된 문화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정부의 지원 정책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식의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김도헌: 한가지로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다양한 문화 공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오래된 문화 공간의 경우 흥행이 되지 않으면 지원에 기대게 돼요.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겠지만, 예술인들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서사를 만들어주며 계속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바탕을 깔아주는 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서정민갑: 정부가 지원한다면 어디까지 지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지원을 통해 생존하는 방식이 의미가 있나에 대해 충분히 토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최근 음악계에서도 정부의 지원이 점차 줄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특히 공연장 공간과 진작을 위한 지원사업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요. 어떤 개선책들이 필요할까요.
 
서정민갑: 지금 공연장 공간을 지원하는 지원 프로그램은 많지 않은데요. 이 부분은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공공 공연장이 아니라 사설·영리 공연장에 어떻게, 왜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가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당장 어떤 개선책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어떤 개선책이 필요하고 효과적인지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김도헌: 코로나19 시기 소규모 공연장 ‘일반 음식점 등록’ 관련해서 논란이 되었지만 팬데믹 끝나고 나서 잠잠해졌잖아요. 공연장은 언제나 부족했습니다. 사실상 체육 시설을 활용하는 것 외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이라 할 수 있는 시설이 한국에 얼마나 있나, 음악계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정부의 지원은 역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예술인들이 살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학전과 같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도 대중문화 양성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공간, 역사적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장소에 대한 존중을 보여야 합니다. 동시에 문화인들 스스로도 언제나 절박한, 위기라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여야 하겠지요.
 
임희윤: 학전의 '전'이 밭 전(田) 자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풀뿌리 문화 공간은 우리 문화의 기초가 자라는 터전과 같은 것이죠. 눈에 보이고 티가 나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대기업 문화재단 같은 곳에 맡겨도 좋을 듯 합니다. 정부야말로 당장 티는 덜 나지만 공동체의 삶과 문화에서 의미가 깊은 곳에 지원해야 합니다. 최근 공연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코리아가 서울 영등포구에 명화 라이브홀(전 나이트클럽, 극장을 새로 단장)을 열어 노엘 갤러거 내한공연을 열었습니다. 물론 사기업의 영리 활동 일환이겠지만, 사라지는 문화 공간을 대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관점에 영감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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