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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실패한 이스라엘을 닮아가는 국방부
2023-10-26 06:00:00 2023-10-26 06:00:00
2018년에 남북 간에 합의된 9.19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하겠다는 국방부 장관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듣기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중에도 “북한이 17번이나 합의서를 위반하였으니 이 합의서의 효력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압권이다. 마치 범죄자가 법을 위반하였으니 아예 법을 없애자는 주장처럼 들린다. 이런 식이라면 휴전 이후 북한이 정전협정을 42만 번 위반했으니 정전협정을 아예 없애자는 주장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나는 국방부가 이런 설명을 할 때마다 국방부 출입 기자들이 왜 폭소를 터뜨리지 않는지가 더 놀랍다. 이건 한 편의 코미디 아닌가.
 
군사합의서에서 명기한 비행금지구역으로 인해 일선의 사단급 무인정찰기의 비행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처럼 도발할 경우를 대비해서 경계를 강화해야 하므로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참으로 놀랍고 기발한 상상력이다. 이 역시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다. 내 기억으로는 1993년 이후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한 간에 교전이 벌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한국군이 북한군에 비해 야간의 경계와 전투 능력이 일방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남북 간에는 폭이 4km에 달하는 넓은 완충구역, 즉 비무장지대가 있고, 중첩된 경계와 방어 시스템이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는 볼 수 없는 안전장치다. 최근 하마스와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이 한반도처럼 가자지구에서 완충구역을 확대하는 새로운 안보 체제를 구상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스라엘이 오히려 한반도 안보 체제를 모방하는데, 왜 우리는 멀쩡한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하면서까지 완충구역을 축소하려 하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중동 전쟁을 보고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이야기인가. 9.19 군사합의서는 정전협정에서 설정한 완충구역을 더 확대하여 안전을 보장하자는 군비통제 규범이다. 이렇게 성공한 안보 체제를 제거하자는 건 실패한 이스라엘 안보를 답습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서북 해역에서 사격훈련을 금지한 평화수역을 천명한 군사합의서가 무력화되는 즉시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긴장을 급격히 고조될 것이다. 어민들에게는 가혹한 조업 통제가 실행되어 삶의 질이 추락할 것이다. 군사합의서가 무력화되면 연쇄적으로 2018년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합의도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 사태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밤에는 남북 확성기가 일제히 소음을 토해낼 것이고, 낮에는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긴장이 고조될 것이다. 밤낮으로 군사적 긴장을 안고 살아야 하는 2백만 접경지역 주민의 삶이 파탄날 위험이다. 이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합의서를 무력화하겠다는 건가.
 
멀쩡한 합의서를 굳이 우리가 무력화하겠다고 나서는 진정한 이유는 뭔가. 지난 정부의 남북 합의가 “가짜 평화”라고 비난하면서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거다. 그남북 간의 군사적 적대와 긴장이 좋은 거다. 안보 지상주의와 극우 통치로 권력을 강화하려는 세력에게는 한반도 냉전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이스라엘이 감시장비와 무기가 없어서 하마스에게 당한 게 아니다. 팔레스타인과 단절하고 힘을 앞세워 평화를 유지하겠다던 그 오만이 문제였다. 이스라엘의 무능한 네타냐후 총리에게서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것은 그 오만과 독선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가장 하책이다. 손자는 병법에서 외교와 지략으로 평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힘만 믿고 으스대는 군주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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