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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다가오는 에너지 공급 위기
2023-10-06 06:00:00 2023-10-06 06:00:00
최근 유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여름에 70달러 아래로 내려갔던 국제 유가는 이후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90달러를 돌파했고, 일부 금융기관들은 2026년까지 배럴 당 150달러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전세계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원전 신규 건설 여부가 화제이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로 대표되는 전통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과 적절한 가격 수준 유지는 세계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유가가 급락했지만, 2021년초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했었고,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으로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는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의 공급과 유통에 전에 없던 제약이 생기면서 세계적으로 혼란이 발생했으며 특히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유럽은 에너지 위기를 톡톡히 치렀으며 현재까지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올 여름 이후 유가가 다시 올라가고 천연가스 가격 또한 동반 상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코로나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의 여파가 지나가면 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로 인해 향후 5-10년 이상은 고유가와 화석 연료 공급 불안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세계가 노력하고 있으나 재생에너지, 원전 등 탈탄소 에너지의 비중은 세계적으로 20% 수준으로, 인류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석탄은 2024년 전후로, 석유와 천연가스는 2030년은 지나야 소비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으나, 운행중인 차량 중 내연기관 차량은 여전히 15억대나 되는게 현실이다. 가정의 난방과 온수 역시 95% 이상 화석 연료를 태우는 각종 보일러에 의존하며 이를 탈탄소 전기를 사용하는 히트펌프로 모두 바꾸려면 20년 이상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석탄은 물론 석유, 천연가스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원전 등 대체재로는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못채우는 상황에서, 화석 연료의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2010년 이후 북미에서 셰일 오일이 대거 개발되었으나, 13년 동안 세계인구는 10억명 증가했고, 개도국들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늘어난 석유 수요를 겨우 맞추었다. 또한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은 자국의 에너지 수요 대응, 재정 확보를 위해 안정적인 공급보다는 감산 등을 통해 석유 판매 수입을 극대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천연가스는 국가와 국가간 파이프라인을 통해 70% 이상이 공급되고 있었는데, 지정학적 변화와 갈등이 빈번해지면서 공급 차질이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직수입하고자 독일이 15조원을 투자해서 노드스트림 1,2 파이프라인을 건설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폐쇄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중 갈등의 심화로 지정학적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에너지 인프라의 건설 역시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땅속에 있더라도 이를 채굴하고 정제해서 소비자에게 공급하려면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수이다. 하지만, 석유/천연가스의 높은 가격 변동성, 정치적 위험의 증가, 전기차 등 탈탄소 에너지 기술의 빠른 발전, ESG 트렌드 등으로 이 분야의 투자 매력도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 분야의 투자 규모는 이미 10년전 대비 1/3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중동 산유국 조차도 신규 유전, 가스전 개발에 신중하다. 화석 연료 인프라에 투자하는 공공, 민간 투자 펀드들은 기후위기를 촉발한다는 비판을 받고, 다수의 대형 펀드들이 관련 분야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투자 수요는 많은데, 투자자들의 의지는 약해지고 있고, 최근의 고금리는 투자 여력 자체를 고갈시켜 투자 부족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유전과 가스전의 상업적 수명과 투자 감소 정도를 고려할 때 2025년 이후 전세계 적으로 심각한 화석 연료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수년 내 에너지 수요를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탈탄소 에너지 공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급등과 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는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96%를 수입하고 있는 에너지 빈국이다. 이미 2022년에 유가가 120달러를 돌파하고 천연가스 가격이 앙등했을 때 연간 50조원 이상의 추가 수입 비용이 발생하여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한전과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이 경영위기 상황을 겪었다. 향후 10여년 간 에너지 공급 위기가 반복될 경우, 이를 어떻게 극복해 갈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에너지 공급 위기는 특정 설비 – 태양광, 원자력, ESS – 의 추가 건설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국내 에너지 정책 논의가 여전히 설비간 비교 논쟁이나 추가 건설 여부에 매몰되어 있으면 곤란하다. 하루라도 빨리 충분한 화석연료 공급원을 해외에서 확보하고, 국내 에너지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을 준비해야만 최악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도 현실이고, 에너지 수요도 현실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경제을 꾸려가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다가오는 에너지 공급 위기를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히 요구된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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