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폭력으로 지배하려고 한다면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그래서 폭력은 흉한 것이며 무기는 흉한 도구 라고 노자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 폭력의 사용은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완성된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도 이미 충분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폭력은 흉한 것이지만,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더 악한 세력의 폭력에 맞설 공권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여씨춘추》에서는 성숙한 시각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여씨춘추》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무기란 천하에 흉한 기물이며, 용기란 천하에 흉한 덕이다. 흉한 기물을 들어 흉한 덕을 실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럴 따름이다. 흉한 기물을 들면 반드시 사람을 해치게 되니, 죽임으로써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흉한 덕을 실천하면 반드시 위협을 하게 되니, 위협함으로써 두려워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적은 두려워하도록 하고 백성은 살아나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군대를 일으키는 목적이다.]
자신의 시와 문필로서 무신정권의 수탈이 부당함을 기록에 남긴 이규보. 사진=필자 제공
《여씨춘추》는 흉한 기물인 무기의 무조건적인 철폐와, 폭력인 전쟁의 폐지를 주장하는 데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리정연하게 반박합니다.
“대저 목이 메여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천하에 음식 먹는 일을 금지하고자 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다. 배를 타고 가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천하에 배 타는 일을 금지하고자 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다. 군대를 쓰다 나라를 잃은 임금이 있다고 해서 천하의 모든 군대를 없애고자 한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다. 대저 군대를 없앨 수 없는 것은 비유하자면 물과 불과 같다. 물과 불을 잘 쓰면 복이 되지만 잘못 쓰면 재앙이 된다. 약을 쓰는 것도 같다. 좋은 약을 얻으면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나쁜 약을 얻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정의로운 군대가 천하에 좋은 약이 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한 공동체를 폭력이 지배하도록 방치한다면 그 공동체가 이룬 문화는 모두 석기 시대의 것으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돌맹이 대신 경멸의 눈길을 던진 사람에 의해서 인류의 문명은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서 폭력이라는 수단을 포기함에 의해서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시각인 것입니다.
논리 정연한 글로써 고려를 몽골의 한 성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저지시킨 이재현. 사진=필자 제공
우리 공동체의 역사에서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 중세 일본의 센가쿠[戰國]시대와 같이 완전히 폭력이 지배하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는 무신정변 이후 대체적으로 폭력이 지배하던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고려 시기의 지배적인 사상은 불교였습니다. 국가의 통치를 위해 유학을 들여오고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광종 대에 와서는 과거제도도 실시하였으나, 고려시기를 전체적으로 지배한 사상은 불교였습니다.
고려 말기는 지식인들에게 가혹한 시대였습니다. 의종 24년(서기 1170년) 발생한 무신정변 이후 무신정권 치하에서는 무신의 폭력적 통치에 대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습니다. 1231~1257년 사이 20여 년 동안 지속된 당시 세계최강이던 몽골과의 항쟁과 그 후 아시아에서 유럽의 이르는 세계사에서 초유의 거대 제국을 건설한 몽골 원나라의 간섭 시기에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한 고려를 어떻게 존속시킬 것인지 고투해야 했습니다. 1388년 이성계의 이른바 ‘위화도 회군’ 이후에는 고려를 쓰러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려는 역성혁명가(易姓革命家)들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고려 왕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하는 고뇌를 해야 했습니다.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무신정변 이후 최충헌 등 무신 집권기의 고뇌와 지식인들의 오욕을 지고 갔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몽골 원나라 간섭 시기 일곱 임금을 섬기면서 고려의 존속과 자주를 위해 고투했으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는 조선 건국 세력의 역성혁명에 동조하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고려 왕조를 지키려다 백주의 테러에 희생되었습니다.
고려 말기의 지식인들은 무신 정변(군사 쿠데타), 세계 최강이던 몽골의 침략과 원나라의 간섭, 역성혁명을 주도한 이성계 무장 세력 등 사유와 논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물리력과 폭력 앞에서 자존과 자주를 지켜야 했던 가장 가혹한 역사적 시기를 통과했습니다.
기개(氣槪)로서 역성혁명 세력의 폭력 앞에 굽히지 않는 존재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준 정몽주. 사진=뉴시스
고려 말기는 이규보, 이제현, 정몽주 등 이 세 지식인의 사유와 삶의 궤적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의미를 지닙니다. 앞선 글에서 우리는 “힘의 불균형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 세 지식인 또한 어찌 대항해볼 염도 내볼 수 없는 물리력에 압도당하는 현실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이런 부조리가 닥쳐올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이런 가혹한 현실 앞에서 사유나 논리나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철학사를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이규보는 자신의 시와 문필로서 무신정권의 수탈이 부당함을 기록에 남겼고, 이재현은 논리 정연한 글로써 고려를 몽골의 한 성으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저지시켰습니다. 정몽주는 기개(氣槪)로서 역성혁명 세력의 폭력 앞에 굽히지 않는 존재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주었습니다. 이규보, 이제현, 정몽주 등 이 세 지식인은 자신의 공동체를 폭력으로 지배하려 하는 세력에 대해 붓과 논리와 기개로 맞서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이규보, 이제현, 정몽주 이 세 지식인의 이야기를 차례로 따라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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