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타다 무죄' 판결 ? 정치는 '혁신경제의 편'이 되어야 한다
2023-06-05 06:00:00 2023-06-05 06:00:00
대법원은 타다 서비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9년 검찰은 타다 서비스에 대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2020년 타다 서비스는 1심에서도 무죄를 받았다. 그러자, 정치권은 법 자체를 바꿔 버렸다. 일명 ‘타다 금지법’이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타다금지법은 민주당이 주도했다. 국민의힘도 적극 호응했다. 특히나 총선을 앞둔 시점에,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택시업계의 조직력이 더 중요했다. 무죄가 나올 것 같기에, 법 자체를 바꿔서 금지한 경우다.
 
타다 금지법 이후, 타다 서비스는 결국 종료됐다. 타다 금지법은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권이 ‘혁신경제를 죽여버린’ 대표 사례로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중세 유럽의 황제들이 기술 혁신을 반대한 이유는 ‘사회불안’ 때문 
 
“유럽의 군주들은 그저 산업 발전을 장려하지 않았던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막았다.” 칼 베네딕트 프레이가 쓴 <테크놀로지의 덫>(에코리브르 펴냄)은 정치권력이 ‘새로운 기술’을 반대한 역사를 잘 보여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1세는 1802년 빈의 공장 신설을 금지했다. 1811년에는 신형기계 수입을 금지했다. 증기 철도 건설 계획도 반대했다. 객차를 말들이 끌던 시대를 더 오래 유지시키고, 증기철도의 시대를 막았다. 
 
차르 니콜라이 1세도 러시아에 ‘기계화한 공장 확산’을 막았다. 그는 발전속도를 늦추려고 산업박람회를 금지했다. 1848년 유럽에서 혁명의 물결이 일자, 모스크바의 공장 수를 제안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직물공장과 주철 고장의 신설을 대놓고 금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황제가 새로운 기술을 반대한 이유는 ‘사회 불안’ 때문이었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기존 기술’로 먹고 살던 사람들을 위협했다. 공장 설립은 가내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정부에 대한 반란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유럽은 왜 기술 혁신을 수용하게 됐을까? 산업혁명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국가간 전쟁’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15세기, 유럽의 정치공동체는 약 5000개였다. 30년 전쟁이 끝나고 '베스트팔렌협약'이 수립되던 1648년 시점에 약 500개로 통합된다. ‘국가간 경쟁’의 활성화는 봉건적 과두제 권력을 중앙집권화된 권력으로 바꾼다. 
 
정리해보면, 유럽 역사에서 기술혁신의 도입 및 확산 과정은 ①국가간 전쟁의 활성화 → ②자원의 효율적 동원 필요성 → ③혁신의 수용 → ④기득권 세력의 약화 → ⑤혁신세력의 강화 순서로 진행됐다. 중국의 청나라도 새로운 기술을 반대했다. 1840년 아편전쟁으로 인해 영국에게 박살이 난 이후, 서양 기술을 받아들이는 운동이 벌어진다. 
 
유럽사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 역사에서, 혁신을 수용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동일한 교훈을 제공한다. 혁신 반대는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모든 혁신은 ‘기존 질서’의 부정을 내포한다. ‘기존 질서’는 강자(强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택시 운전사처럼 상대적 약자도 포함한다.
 
그래서 ‘정치’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정치는 혁신경제의 편에 서되, 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중재안을 만들고, 제도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정치권은 가장 나쁜 선택을 했다. 혁신 경제를 죽여버렸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좋은 불평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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