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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55주년 '가왕' 조용필, 한국 음악사 길이 남을 '꿈의 무대'
80년대 '주경기장 시대' 열고 닫은 가왕…반세기 마주하는 일이자 동시대성의 산물
2023-05-15 18:00:00 2023-05-16 09:02:1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배경 음악으로 흐르던 인스트루멘탈 재즈가 차츰 잦아들자, 백자처럼 둥근 곡선미의 잠실주경기장이 '푸른빛 성운(星雲)'이 됩니다.
 
3만 5000명이 들고 있던 무료 응원봉의 발화, 정중앙 거대 반원형 전광판의 번뜩임, 무대 앞부터 경기장 가운데까지 심지처럼 타들어가다 포화처럼 하늘위로 솟아오르며 '펑펑' 터지는 폭죽 세례들….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73)의 무대('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는 시작부터가 펄펄 끓는 용광로였습니다. 질곡의 시대를 주물러가며 만들어온 역사이자,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산물로서의 예술. 지난 13일,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왕의 잠실주경기장'은 콜드플레이나 방탄소년단(BTS) 같은 세계적인 수퍼 스타들과 견줘도 크게 이질감이 없을 정도의 스케일과 세련된 연출 미학이 남달랐습니다.
 
이날 검은 외투 속 별무늬 셔츠를 입고 등장한 조용필은 곡 '미지의 세계'로 화려하게 포문을 열었습니다. 곡의 하이라이트 구간마다 딱딱 맞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폭죽들의 향연과 미끈하게 올라가는 고음이 맞물리자, 우레 같은 함성이 객석에서 반사돼 경기장을 휘감았습니다.
 
13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73)의 콘서트('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푸른빛을 띄던 응원봉은 곡 스타일과 '메인 콘솔(음향·조명 관제소)'의 조명에 맞춰 빨간·하얀·분홍 등의 색깔로 달라지며 공연 분위기를 시시각각 바꿨습니다. '못찾겠다 꾀꼬리' 같은 오랜 명곡들조차 파스텔톤의 영상을 배경으로 세련되게 선보였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평생을 여러분과 함께 해왔습니다. 제 나이가 지금 몇인 줄 아시죠. 55세(데뷔 55주년)입니다. 아직 괜찮습니다."
 
올해 하반기 발표할 20집의 선공개곡들 순서가 이날 공연의 최대 전환점이자 백미였습니다. 거대 반원형 전광판을 활용한 압도적인 연출은 해외 록·팝 전설들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세렝게티처럼' 순서 때 드넓게 초원이 펼쳐졌고, '찰나' 때는 알록달록한 페인트 칠들이 튀어댔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한 신곡 'Feeling of you'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조각한 호랑이가 곡선을 그리며 반원형을 천천히 날아오르는 연출이 특기할 만 했습니다.
 
특히나 이번 공연은 '80년대 주경기장 시대'의 문화를 열고 닫는다는 측면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기록으로써도 중요한 무대였습니다. 그간 '한국 대중음악 성지'이자 '꿈의 무대' 불려온 잠실주경기장은 가왕의 무대를 끝으로 6월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이라 일찌감치 어느 때보다 대중음악, 공연업계 이목이 쏠린 게 사실입니다.
 
13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73)의 콘서트('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조용필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지난 반세기사를 마주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특히 곡 '서울서울서울' 때는 '88 서울올림픽' 영상들을 쏘아올리며 한 시대의 종언과 새 시대의 도래를 은유적으로 수놓았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년)'와 '창밖의 여자(1980년)' 때 '한(恨)의 소리'는 민요 같은 굵고 거친 음역까지 아울렀습니다. "TV에서 한번도 이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는 '잊혀진 사랑'을 들려줄 땐 거대한 LP판이 돌아가는 영상으로 관객들을 추억에 젖게 했습니다.
 
상당한 고음을 요하는 '고추잠자리'나 '태양의 눈'을 원키로 부를 때는 "음의 색깔과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는 방증"이라는 평론가들의 말이 새삼 절감됐습니다. 동시에 뮤지컬스러운 편곡과 연출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2014년 서태지와 만남 당시 '공연 연출을 위해 뮤지컬 하나를 12번이나 본다'던 그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용필 공연 기획사인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의 장상용 대표는 "지난해부터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연출을 맡은 총괄자가 이번에도 달라붙어 영상과 조명을 매만지며 공연을 함께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13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73)의 콘서트('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단발머리', '꿈',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시대를 관통한 명곡들이 울려퍼질 때마다 관객들은 그 때 그 '단발머리' 시절 모습으로 "오빠", "형님"을 외쳤습니다. "제 공연은 멘트가 별로 없다"며 맞바람에 콧물을 훔치면서도 히트곡 '바운스'까지 총 25곡을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부르는 그를 왜 '가왕'이라는지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1984년 개장해 ‘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거친 '주경기장 시대'는 이렇게 가왕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끝났습니다. 후련합니다.” 조용필의 긴 노래 끝 두 마디, 그리고 공연장을 나서는 찰나, 긴 현수막에 적힌 문구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이름만으로 존재의 의미가 되는 그, 우리 곁에 조용필.”
 
13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왕' 조용필(73)의 콘서트('2023 조용필 & 위대한탄생 콘서트').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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