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아직도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되었단 말인가
2023-03-27 06:00:00 2023-03-27 06:00:00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해 그동안 축적된 국민 불신에 대해서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2003년 10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에 던진 말입니다. 취임 8개월도 채 안 되었을 당시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으로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무참히 공격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그 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저는 모든 권력수단을 포기했기 때문에 도덕적 신뢰만이 국정운영의 밑천인데 지금 최씨 문제로 적신호가 켜진 만큼 국민심판을 겸허히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도덕적 신뢰'만이 국정운영의 밑천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앞에 모든 것을 던질 만큼 주위 사람들을 믿었고, 그것은 그를 지탱하고 있는 진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의 이런 신념의 발로를 상당수 여론은 '치기 어린 기행'쯤으로 치부했지요.
 
그로부터 5년여 뒤인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 선택을 합니다. 날아가던 새도 나래짓을 멈추고 울음을 터뜨렸을 법한 이 비통한 사건은 참으로 오랫동안 모든 국민의 기억 저 밑에 봉인되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영면에 들었던 이 사건이 최근 한 회고록을 통해 다시 소환됐습니다. 소환 주체는 14년 전 그날 노 전 대통령과 일가를 수사했던 검사.
 
그 전직 검사에게 왜 지금 노 전 대통령을 소환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에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14년간 숨죽이고 지내야만 했던 그의 인간적 억울함을 아주 이해 못할 바도 아니기에. 
 
이인규 변호사(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가 펴낸 제법 두꺼운 회고록에는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수사 내용이 529면 중 217면에 걸쳐 세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다만, 수사 시 검찰이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 대해 최대한의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는 거듭된 고백은 읽는 이의 흐름을 끊어 거슬릴 정도인데, '무능한 변호사 문재인', '선동가 문재인'이라는 뜬금없는 저격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라는 제목을 무색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전 부장과 당시 검찰은 ‘노무현의 죽음’에서 과연 자유로울 것인가. 
 
“40년 지기 친구인 정상문과 아내인 권양숙이 해외에서 주택을 구입한 사실 및 140만 달러라는 거액을 수수한 사실…주변 인물은 모두 미국 주택 구입 문제를 알고 있었는데 노 전 대통령만 모른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508면
 
노 전 대통령의 항변은, 제기된 의혹들을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나중에야 알게 됐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몇몇 관련자 진술만으로 모든 일이 대통령 임기 중에 있었다고 단정한 뒤 이를 기정사실로 몰아갔습니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부패한 권력자’로 낙인 찍어 광장으로 끌고가 조리를 돌렸습니다. ‘MB 정부 기획, 국정원 연출, 주연 대검 중수부, 출연 대한민국 언론’이라는 이 희대의 잔혹극은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 것입니다. 
 
14년 전 비극의 원인은,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엄중했던 노 전 대통령의 ‘도덕적 신뢰’였을 것이나, 그 방아쇠를 당기게 한 것은 검찰과 언론의 야만이었습니다. 이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진실에는 결코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검찰과 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사실이자 진실 아닙니까.
 
범죄를 처단하고 벌주는 것이 검사의 임무이지만, 사건 당사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또한 검사의 본분입니다. 그 본분을 다 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먼저겠지요. 아무리 자타가 공인하는 '수사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역대 검찰 안팎에서 존경받아 온 선배검사들이 피의자에 대한 이해를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일 겁니다.
 
지금에라도 입을 연 이 전 부장이 해야 할 말은 “노무현은 유죄였으니 나는 무고하다”는 외람된 자기 합리화가 아닙니다. 수사 책임 검사로서 유족을 향한 진지한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라고 검찰에 노골적으로 지시한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논두렁' 운운하며 장단을 맞춘 검찰, 그리고 그를 받아 쓴 언론의 '삼각 카르텔'에 대한 통렬한 폭로가 있어야 했습니다.
 
‘내가 안 그랬다. 나도 피해자’라며 노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 그를 광장에 세운 이 전 부장은 아직도 그날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최기철 법조기자·미디어토마토 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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