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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엄인호 "신촌블루스는 내 삶의 종착지"
올해 음악인생 43주년…자서전도 준비 중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
"세대 교체 이룬 신촌블루스는 생전 마지막 활동 될 것"
2023-02-22 16:55:57 2023-02-22 16:55:5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신(新)' 신촌블루스가 내 생전 마지막 음악 활동이 아닐까 생각하며 임하고 있습니다. 트로트와 아이돌 일색인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에 이런 보석 같은 친구들이 있음을 (대중에) 알리는 게 내 삶의 종착지가 되겠지요."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 인근의 한 지하 음악 연습실. 백발의 꽁지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를 따라가자, 세월의 먼지가 번뜩이더니 시계가 거꾸로 돌았습니다. 1980년대부터 그룹 ‘신촌블루스’를 이끈 전설적 기타리스트 엄인호(71). 
 
올해로 음악 인생 43년을 맞은 그는 "팬데믹 기간 멈췄던 공연장 시계가 다시 돌아가면서, 예전의 나처럼 '돌격 앞으로' 성격이 튀어나오고 있다"며 웃어보였습니다.
 
신촌블루스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토종 블루스를 정립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밴드입니다. 1986년 신촌 라이브클럽 레드 제플린에서 엄인호, 이정선(기타), 한영애, 정서용(보컬) 등이 모여 결성했습니다. 이후 굴지의 음악 터전이던 동아기획 소속으로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정경화, 이은미, 강허달림 등 주옥 같은 음악가들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명실상부 살아있는 역사로 우리 대중음악사와 국내 블루스 역사에 긴 발자취를 새겨온 팀입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인근의 한 지하 음악연습실에서 만난 신촌블루스 엄인호와 강성희. 권익도 기자
 
현재는 엄인호를 주축으로 강성희, 제니스, 김상우 같은 젊은 피를 수혈해 새로운 편성을 갖춘 상태. 지난해부터 ‘리턴 오브 레전드’라는 이름의 소극장 공연을 전석 매진으로 진행했고, 올해는 전국 투어까지 이어갈 예정입니다. 서울 앙코르(11일, 19일) 때 녹음한 실황 음반은 따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2021년 10월과 2023년 1월 라이브 앨범을 연달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왜 또 실황 음반일까.
 
"음악은 음악으로, 살아있는 공연으로 말을 해야지요. 방송국에서 우리 팀을 자주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 (웃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세대 교체를 이룬 신촌블루스'를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단지 '김현식-한영애 없는 신촌블루스'가 아니거든요."
 
저돌적인 직선적 형태(강성희)와 소프트한 재즈 느낌(제니스), 허스키한 스타일(김상우)의 삼합 음색. 엄인호의 귀는 늙지 않는 청춘의 메아리 같은 것. "내가 세 사람을 선별할 땐 기준이 있었어요. 나는 카피를 원하지 않거든요. 기존 신촌블루스를 따라하지 않는 보컬이 필요했으니까. 이들 모두 자신의 색깔을 새롭게 입혀 내주는 뛰어난 친구들이에요." 
 
이날 엄인호 곁에 함께 있던 40대의 보컬리스트 강성희는 "한영애-김현식 같은 걸출한 선배들이 거쳐간 밴드고 제가 고교시절 즐겨듣던 밴드라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했다"며 "여전히 내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도, 부를수록 신촌블루스 만의 깊은 감정선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스페이스브릭에서 진행한 신촌블루스 앙코르 공연. 신촌블루스·스페이스브릭
 
엄인호는 20대 때 카페와 바에서 DJ를 하고 독학으로 배운 기타 연주를 하며 전국을 떠돌다 신촌에 정착한 풍운아입니다. 이광조, 이정선과 1979년 트리오 앨범 ‘풍선’으로 데뷔했고, 전인권(들국화), 이주호(해바라기), 전유성, 한영애, 김현식(1958∼1990) 등과 어울렸습니다. 이후 블루스가 좋다며 신촌 바닥을 누비다 결성한 팀이 바로 신촌블루스.
 
"가난한 대학 자취생들이나 연극쟁이, 음악인, 개그맨 같은 문화인들이 연대 앞부터 쫙 깔린 값싼 술집들에 죽치고 있었죠. 대낮부터 튀김에 막걸리나 마시며 있다 보면 누군가가 계산하고. 그런 낭만이 결국은 그 시절 신촌블루스를 낳은 거예요.”
 
임희윤 음악 전문 기자(동아일보)는 “신촌블루스의 음악은 ‘흐르지’ 않는다. ‘탁!’ 전등처럼 켜진다”며 “엄인호의 진득한 기타와 칼칼한 목소리가 실내에 깔리는 순간, 그곳이 어디든 귤빛 가로등 아래 어둑한 지하 라이브 클럽 입구가 돼버린다”고 표현합니다. ‘골목길’, ‘아쉬움’, ’78 가을편지’… 곧 전국투어(올 상반기 예정 대구, 인천, 부산 등)에서 보일 옛 곡은 젊은 세대조차 그 귤빛으로 물들일 만큼 매혹적일 것.
 
“한국어 가사를 입혀 토종 블루스를 만들었다는 성과만큼은 자랑스러워요.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거든요… 전 시간 질질 끌거나 밍기적 대는 그런 거 못 참아요. 결단력이 빠르고, 돌진하는 스타일이죠. 곧 신촌블루스 신곡도 쓰고 자서전도 낼 겁니다.”
 
서울 마포구 스페이스브릭에서 열린 '신촌블루스 앙코르' 포스터. 신촌블루스·스페이스브릭
 
<에필로그: 신촌블루스, 엄인호, 음악 인생 43주년>
 
-이번 서울 앙코르 공연(11, 19일)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에 나선다고 들었습니다. '세대 교체 이룬 신촌블루스'로요.
 
엄인호: 코로나 시절, 공연도 없으니까 자꾸만 우울해지고 술만 마시게 되고. 에이, 이럴 바에 우리 친구들 앨범을 솔로로 하나씩 만들어 LP를 내볼까 했어요.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독일에 맡긴 LP 제작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신보가 나오지 못했죠. CD는 팔리지 않는다 해서 못 찍었고, USB는 낯간지럽고. LP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가 지금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소극장 투어를 시작했고, 상상 이상의 매진 행렬을 이뤘고. 느낌이 좋아요. 전국투어로 이 분위기를 이어가보려고요. 
 
-서울 앙코르 공연(11, 19일)을 실황 앨범으로 녹음해서 낼 계획이라고요. 이미 2021년과 2023년에도 라이브 음반이 나왔는데, 또 나오는거네요. 라이브 실황 녹음 하면, 과거 동아기획 시절 낸 '신촌블루스 첫 라이브 음반' 제작 후 들어보니 "완전 목욕탕에서 녹음한 것 같았다"고 했던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 실황음반이 갖는 의미란 무엇인 것 같으신지.
 
엄인호: 그 시절 들국화의 라이브 앨범이 우리보다 좀 먼저 나왔는데 그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거고, 저는 홀에서 녹음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롯데 잠실 홀을 빌려 1집 녹음을 했는데요. 당시 한국의 기술이 많이 부족했던지라 공명을 전혀 잡지 못하니 그런 소리가 났었죠. (웃음) 그 목욕탕 소리를 듣는데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런데 요즘은 녹음이나 믹싱 장비도 전부 디지털로 바뀌었고, 이펙터도 여러 기자재로 하니까 그런 문제는 없죠. 라이브 실황음반의 의미는 결국 살아 있는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에요. 지금 저와 함께 하는 이 친구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그걸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우리가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팀도 아니고. 알릴 수 있을만큼 알려야죠. 그걸 제 죽기 전 소명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얘기가 나온 김에 신촌블루스의 옛 음반들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요. 1집 '아쉬움'에 얽힌 일화가 재밌는데요. 이게 부산 바닷가에서 고백했다 거절을 당하고 쓴 경험을 녹여낸 곡이라 봤습니다. 
 
엄인호: 맞아요. 그 당시 그 친구가 제게 자작곡도 없고 무대 올라가면 외국 곡만 부르고, 하물며 매일 술이나 먹고 방황한다면서 거절했었죠. 부끄럽기도 해서 집에 오고 나서 그날 저녁 세 곡을 연달아 썼는데, 그 중 하나가 '아쉬움'이고, 풍선 때 이광조가 부른 '이별', 솔로앨범 1집에 있는 '78, 가을편지'죠. 제 곡은 거의 경험에 의한 곡이 많아요. 이성과 헤어지고 나면 허전할 때 밀려 오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거 중요한 얘기에요. '골목길'이 터진 후에 '곡 좀 만들어주세요' 돈싸라기를 여기저기서 들고 온 적이 있어요. 그때 호텔방에서 혼자 술마시면서 머리를 붙잡고 며칠 밤을 새도, 그게 안되더라고요. 다시 돈싸라기 그거 다 돌려줬죠. 스스로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올 때 곡을 쓰는 편이에요.
 
Q.당시 '아쉬움' 때부터 이미 신촌블루스에 대한 반응이 터졌나요?
 
엄인호: 오, 당연하죠. 그때부터 반응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우린 그때 공연을 돌고 있었거든요. (김)현식이는 1집 앨범에는 없었지만 남자 보컬로 함께 했죠. 한영애도 함께 소극장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때 느낌이 왔어요. '이 팀은 성공이다'. 2집 내면서 동아기획 갔을 때는 최고였죠. 대극장들 지방에 있는 1000석 하루 2회 꽉꽉 채울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피곤한 것도 모르고 하루 2회씩 했다고요.(웃음) 근데 그때 생각해보면 공연 문화가 서서히 싹틀 시기였어요. 홍대쪽은 전멸이고 신촌에는 레드제플린만 있었지만, 이대 쪽에 3개, 그리고 대학로는 파랑새소극장부터 해서 김민기의 학전 같은 곳에서도 연극보다 음악이었죠. 
 
최근 신촌블루스는 젊은 피를 수혈해 세대교체를 이뤘다. 올 상반기 대구, 인천, 부산 등에서 전국투어를 할 예정이다. 신촌블루스·스페이스브릭
 
-2집부터 4집까지 동아기획 소속으로 앨범도 내셨었는데요. 동아기획 사단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사에 어떤 자취를 새겼다고 보시는지요.
 
엄인호: 돌아보면 청춘을 동아기획에서 다 보내며 늙었어요. 돌아보면 아주 편안하게 음악할 수 있는 분위기였거든요. 조동진 같은 거장부터 들국화도 있었고. 조동진 같은 거장이 나갈 때는 정말 슬펐어요. 그리고 김영사장과도 한참 얘기했어요. "동진이형 같은 분을 왜 놓치세요, 잡으셔야죠." 들국화에 관해선 탄생부터 모든 산 역사를 다 봐온 사람이에요. 그리고 또 들국화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공연기획을 내 재산을 다 날려가면서 한 사람이고요. 가끔 정 힘들면 동아기획 사장님께 손도 벌리기도 했었지만. 그런 점에 대해 나는 자부심이 있어요. 지금의 신촌블루스 공연의 모든 것을 내가 설계하는 것 또한 그런 맥락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내 매니저 할 사람은 아마 없을걸요. 하하. 
 
-펜더와 깁슨을 둘다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기타 소리가 블루스와 잘 어울리는 것 같은지. 
 
엄인호: 요즘 허리디스크가 조금 심해져서 무거운 깁슨보다는 펜더를 많이 쳐요. 근데 또 펜더만 치다보면, 그 소리가 좀 지루하더라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두 개를 같이 써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어요. 사실 종류를 달리 쓰면 약간 귀찮거든요. 엠프가 두대에 있어야 하고, 공연하면서 톤을 일일이 바꿀 수가 없으니까. 깁슨 같은 경우는, 올디한 사운드면서, 중후한 맛이 느껴지죠. 펜더는 마누라가 바가지 긁듯이 신경질 섞인 소리가 나고요. 블루스를 가만 들어보면 그런 거 있거든요. 흑인 특유의 수다쟁이 톤 같은 거. 그래서 더 펜더를 치는 것도 있긴 한 것 같네요.
 
-디스크가 있으시다고요? 건강 관리는 잘 하고 계신지요.
 
엄인호: 35년 전 수술한 게 있는데, 다시 나이먹으니까 오더라고요. 약은 먹고 있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잘 관리하는 수밖에. 술은 뭐 예전부터 많이 먹었지만, 요즘 조금은 줄였는데, 그래도 무대 올라갈 땐 조금 마시고 올라갑니다.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느낌. 수채화처럼 풀어놓고 어우러지는 맛"이란 말을 하셨다고요. 
 
엄인호: 내가 그렇게 멋진 표현을 했었나요? 하하. 어쨌든 음악은 예술이지 기술은 아닙니다. 제 아무리 외국의 유명한 음악대학에서 외국 연주 스타일을 배우고 왔어도 카피만 한다면 그건 음악이 아니죠. 저는 우리나라 음악의 정서를 좀 배울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신중현씨 음악이라든가. 한국 대중음악사의 메인스트림부터 쭉 이어져온 음악들 말이에요. 
 
-43년의 음악생활을 해오셨습니다. 초기로 돌아가면 여전히 다시 음악을 하고 싶으신지.
 
엄인호: 제가 돌아갈 곳이 어딨나요. (음악 말고) 있어야죠. 하하. 나는 언더그라운드가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이 아니에요. 남 얘기 안 듣고 하고 싶은 음악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돼 있었거든. 코로나 때문에 그간 공연 활동은 위축돼 있었지만, 이젠 '세대 교체 신촌블루스'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야해요. 신곡도 쓸 것이고 내 생전 마지막 활동이 될 것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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