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일단 두 가지 선입견이 생긴다. 우선 연출자 이름이 ‘윤제균’이다. 국내에서 가장 흥행 성적이 좋은 영화 감독이다. 국내 최초로 ‘쌍천만’이란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해양 재난 영화 ‘해운대’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을 그대로 담아낸 ‘국제시장’. 단 두 편으로 끌어 모은 관객이 2000만을 훌쩍 넘는다. 그가 세운 JK필름은 충무로 최고 흥행 제작사다.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윤제균이 만들면 뻔하다’란 비판도 존재했다. ‘해운대’ ‘국제시장’에서 보여 준 특유의 신파 감성을 향한 일부의 비난이었다. 그래서 ‘윤제균의 영화는 뻔하다’란 평가 절하의 목소리도 분명 있었다. 이런 의견 놀랍게도 윤제균 감독 본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건 연출자의 인장 같은 것이기도 하다. 외부의 비난과 비판에 자신의 버린다면 연출자로서 한 작품을 온전히 그대로 스크린에 투영시킬 결과물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면 결단코 ‘아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윤제균의 영화는 이런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의 욕구를 가장 ‘잘’ 그리고 ‘만족스럽게’ 채워주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1일 개봉한 뮤지컬 영화 ‘영웅’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윤제균의 인장이 너무도 강력하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가슴 가득 뭔가를 얻어오게 된다. 그게 어쩌면 감독 윤제균의 힘 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웅’ 개봉 직전 만났다.
윤제균 감독. 사진=CJ ENM
‘감독 윤제균’으로 대중들과 만나는 건 2014년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이다. 8년 동안 그는 JK필름 수장으로서 제작자 그리고 최근 직함을 더한 CJ ENM스튜디오 대표이사까지. ‘영화감독’이란 직업보단 좀 다른 직업으로 업계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 사실상 8년 만의 본업 전환이다. 그래서 너무 떨리고 너무 무섭다고 엄살 아닌 엄살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웬만하면 떠는 스타일이 아닌 무던함으로 유명한 윤제균 감독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닌가 보더라.
“감독으로선 8년 만이네요. 진짜 농담 아니라 너무 떨려요. 울컥한 기분도 있고, 모든 게 새로운 느낌이에요. 많은 분들에게 칭찬도 받고 많은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노력이 그 만큼의 보상을 받게 되면 지금의 불안감과 부담이 좀 많이 없어질 듯할 것 같아요. 그때까진 계속 이런 기분이 이어지겠죠. 매번 경험한 부담인데, 이번에는 좀 체감이 다른 듯 해요(웃음)”
윤제균 감독이 이번에 선보이는 ‘영웅’은 뮤지컬 영화다.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뮤지컬 무대에선 그 이름만으로도 ‘1000만 흥행’ 타이틀 못지 않은 유명한 작품이 바로 ‘영웅’이다. 무려 국내에서 14년 가량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윤 감독은 이 작품을 감상한 뒤 그 감동에 매료돼 영화화를 결심하고 진행 했단다.
윤제균 감독. 사진=CJ ENM
“2012년에 정성화가 출연한 ‘영웅’을 우연히 보고 영화화 결심을 했죠. 단순하게 안중근 의사 얘기로 갔다면 드라마로 구성했을 거에요. 하지만 난 정체성 자체가 영화 감독이니 무조건 영화, 그리고 영화로 가려면 같은 장르인 뮤지컬. 그러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죠. 첫 째는 뮤지컬을 본 관객이 봤을 때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결과물. 두 번째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 이 결과물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무조건 라이브 녹음 밖에 없다 싶었죠.”
동명의 인기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뮤지컬을 본 관객들이라면 그때의 감동을 영화에서도 느끼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과 영화는 너무도 다른 전달 방식이다. 뮤지컬이 라이브로 배우의 연기를 느낄 수 있는 매체라면 영화는 ‘스크린’이란 필터링이 배우와 관객 사이에 존재한다. 감동의 결과 크기 그리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차이가 분명 다르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할 수 있는 게 ‘각색’ 작업이 될 듯했다.
“각색이 진짜 중요했어요. 뮤지컬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가 설희(김고은)의 개연성 부분일 거에요. 영화는 공연보다 설희의 개연성이 좀 더 확보되지 않았나 싶은 느낌이 있어요. 설희에게 명확한 미션을 주지 않으면 ‘왜 이토를 처단하지 않았지’ 싶은 의문이 들게 되죠. 그걸 해결한 느낌이 들어 만족합니다. 그 외에 조우진-박진주 캐릭터가 사실 공연에선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에요. 그걸 영화 전체의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 바꿨는데 잘 한 것 같아요.”
윤제균 감독. 사진=CJ ENM
워낙 화제작이고 또한 윤제균 감독 필모그래피 최초의 뮤지컬 장르란 점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주인공 ‘안중근’ 배역에 누가 캐스팅될지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막상 캐스팅이 공개되자 모두가 의아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뮤지컬에서 14년 동안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였다. 정성화가 뛰어난 배우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엔 리스크가 크단 지적도 많았다.
“일단 전 정성화 외에는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성화보다 ‘안중근’을 더 잘할 배우가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전 무조건 정성화 였습니다. 물론 투자사의 반대도 있었죠. 하지만 촬영하면서 내 고집이 맞다 확신했죠.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만약 정성화가 거절했다면 집에 찾아가 무릎 꿇고 빌려고 했어요(웃음). 진짜 입니다. 하하하. 다른 배역도 모두 마찬가지로 최고의 캐스팅이었죠. ‘설희’역의 김고은은 주변에서 추천 받았는데, 우리나라 여배우 중 노래 제일 잘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으니 딱 두 명 추천하더라고요. 그게 김고은 박진주였죠(웃음)”
‘영웅’이 화제를 모은 건 윤제균 감독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의 뮤지컬 영화 그리고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흔하지 않은 뮤지컬 장르란 점도 있다. 하지만 진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윤 감독이 제작 초기 단계부터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접근한 ‘현장 라이브 녹음’이었다. 쉽게 말하면 뮤지컬 장르이기에 당연히 노래가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촬영 이후 후시 녹음이다. 그런데 ‘영웅’은 극중 노래의 70% 가량을 현장 녹음으로 진행 시켰다. 엄청난 작업이었다.
윤제균 감독. 사진=CJ ENM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 속에서 솔로 독창은 100% 라이브, 두 명 이상이 부르는 건 무조건 후시였어요. 진짜 지금도 100% 후회를 하는 게 ‘내가 왜 라이브 녹음을 한다고 했을까’ 입니다(웃음). 후시녹음보다 체감적으로 3배 이상 힘이 들어요. 노래는 모조건 원씬 원컷의 롱테이크로 갈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현장 상황이 있다 보니 최초 3~4번 정도는 테이크가 가죠. 그럼 마지막 정도에 가면 배우들이 실제로 탈진을 해요.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장부가’는 정성화의 독창인데, 그건 보충촬영에 추가 촬영까지 더하면 실제로 30번 이상을 불러 찍은 장면이에요.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맙죠.”
일반 시사회 그리고 언론 시사회 이후 나온 지적 가운데 하나가 ‘자막’ 문제였다. 극중 일본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노래에선 스크린에 ‘자막’이 등장했다. 하지만 독립군 배역을 맡은 배우들 노래에선 자막이 안 나온다. 일본어 노래는 당연히 자막이 존재하고, 한국말 노래는 자막이 없는 셈이다. 참고로 뮤지컬은 노래 자체가 극 흐름의 대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부 독립군 노래의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자막 필요성을 언급한 지적도 있었다. 윤제균 감독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자막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 두 가지를 모두 준비 했었죠. 그리고 수 많은 블라인드 시사를 거쳤어요. 결론적으로 자막이 없는 버전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죠. 노래 가사가 안 들리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견이 정말 많았어요. 지적해 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 공감은 합니다. 우선은 자막이 없는 버전으로 개봉을 하는데 나중에 영화가 잘되면 자막 버전도 스크린에 오픈할 생각입니다.”
윤제균 감독. 사진=CJ ENM
2001년 영화 ‘두사부일체’로 데뷔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대한민국 최고 흥행 감독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영화인이 됐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영웅’을 통해 처음으로 돌아간 듯 긴장하고 가슴 떨려 하면서 좋은 결과를 꿈꾸는 연출자로서 돌아왔다. 단순하게 영화인 윤제균이 아니라 ‘영화감독 윤제균’이 돼 있었다. 오랜만에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긴장하고 부담된다고 하지만 반대로 기대감이 넘쳐 흘러 보이기도 했다.
“배우들에게 ‘간절히 기도하자’고만 말했어요. 흥행은 철저하게 관객 분들의 선택이니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습니다. 요즘 모두가 사는 게 너무 각박하고 힘들고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견디고 있는 거죠. 그게 어찌 보면 애국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시는 당신의 애국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 모두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희 영화가 그런 모든 ‘영웅’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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