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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2022-12-16 06:00:00 2022-12-16 06:00:00
20년쯤 된 듯 싶다. 서울 지하철의 한 역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열차가 달려오는 선로에 몸을 던졌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모든 지하철 역에 스크린도어가 없었다. 경찰을 통해 파악한 원인은 ‘입시중압감’. ‘늘 하던 대로’ 보고를 하고 작성지시를 받아 ‘짧게’ 기사를 썼다.
 
기사가 나간 당일 오후쯤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았다. 한 여성이 한참동안 울먹였다. 기사를 쓴 장본인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했다. 이후 한참동안 울음소리만 이어졌다.
 
울음이 조금 멎는가 싶더니 흐느끼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퍼졌다. “남의 죽음을 그렇게 쉽게 보지 말아 달라. 당신들에게는 그저 그런 기사거리지만, 우리는 찢어지는 아픔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전화가 툭 끊겼다. 악을 쓰는 항의도 아니었다. 담담하게 겨우겨우 입을 뗀 목소리. 몇마디 되지 않는 소리였지만, 한참동안 먹먹했다.
 
20년 가까이 됐지만, 아직 그 목소리의 느낌은 귓가에 생생하다. 이후 ‘죽음’에 관한 기사를 쓸 때는 두려워졌다. 직업상 작성을 안할 수 없었지만, 모든 죽음 관련 기사에는 경외심을 갖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4·16 세월호 참사’ 이후 혜화역 2번과 3번 출구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2번 출구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뮤지컬이나 연극을 보러가던 설레는 마음의 길이었다. 그러나 큰 길 맞은 편 3번 출구는 가슴찢는 고통을 안고 걷는 길이었다.
 
3번 출구는 갑자기 힘든 병을 얻은 첫째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길이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세월을 잃은 첫째가 지금이라도 씩 웃으며 불쑥 나타날 것 같아 혜화역 3번 출구만 보면 주위를 둘러본다고 했다.
 
김 지사는 이를 두고 ‘죽을 것 같은 그리움도 세월 앞에는 먹빛처럼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아주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고 했다.
 
김 지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자식 대신 나를 가게 해 달라고 울부짖어 보지 않은 사람, 자식따라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아픔이라고 담담히 되뇌었다.
 
말 없는 글에 흐느낌이 묻어 나고, 한자로 따라 쓰기조차 어려운 ‘자식 먼저 잃은 부모 마음’을 뜻하는 참척(慘慽)이 애절하다.
 
서울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가 설치됐다. 희생자 영정과 위패도 놓였다. 16일까지 잠정 운영된다. 15일까지 ‘10·29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는 158명이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안타깝게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인까지 더하면 모두 159명이다. 적지 않은 희생이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막말을 쏟아낸다.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 의원은 ‘시체팔이’ '자식팔아 한 몫'이라는 말로 이태원 참사를 정의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놓고 "애초에 합의해 줘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사망원인이 압사가 아닌 마약이나 독극물일 수 있다”(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의 가시돋힌 말이 넘쳐난다.
 
굳이 고귀하신 시의원과 국회의원들뿐이랴. 세간 ‘장삼이사’들에게서도 막말이 쏟아진다.
 
사람의 격은 ‘인격’이다. 인격은 주로 말에서 나온다. 장제원 의원은 야당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반대하면서 “괴물은 되지 말자”고 했다. 
 
맞다. 우리, 자식 잃은 사람들 앞에 두고 진짜로 ‘괴물은 되지 말자’

오승주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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