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지극히 취향적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 ‘가장 혁신적 히어로’란 타이틀이 붙어 있는 것을 감안해 보면 단순히 ‘취향’ 문제로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가 될 수도 있을 듯싶다. ‘블랙 팬서’는 마블이 탄생시킨 수 많은 히어로 가운데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선 거의 유일한 캐릭터로 규정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우선 흑인이다. 지구상 흑인이 절대 다수인 아프리카 대륙, 이 곳에 존재하는 가상의 국가 ‘와칸다’. 이 나라 국왕이자 수호자인 ‘티찰라’(고 채드윅 보스만, 블랙 팬서). 그는 영화적 세계관 속에서 ‘히어로’란 단어 자체를 재정립하는 것에 가장 큰 노력을 한 점을 인정 받아 마땅한 캐릭터이자 인물이었다. 현재까지도 어떤 식으로 읽어도 현실 속 아프리카 대륙 국가는 빈곤과 가난 그리고 약자의 시선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영화 속 ‘와칸다’는 전혀 다르다. 지구상 최강국이면서 가장 발달된 과학 문명을 보유했다. 이 곳의 통치자 티찰라는 그래서 힘의 균형을 통한 공존과 번영을 바라는 강자, 즉 영웅으로서의 아량과 배려 그리고 그걸 넘어선 고결함의 진심을 담아낸 결정체처럼 그려져 왔다. 마블의 영화적 세계관 MCU에서도 티찰라, 즉 블랙 팬서의 그런 존재감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다. 9일 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속 와칸다가 현실 속 지구상 최강대국들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고 바라보는지를 지켜보는 순간에서 극중 티찰라가 생전 노력했던 힘의 고결함이 바라보는 이상향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결과였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게 어쩌면 가장 현실적 시선 이었는지도 모를 것 같다. 그래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티찰라의 부재에서 벗어날 수 없단 건 이미 예상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앞서 버린 현실이 지극히 안타까운 결과물로 이어졌단 게 힘겨울 뿐이다. 이제 티찰라는 죽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남은 사람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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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2020년 8월 실제 대장암 투병 끝에 사망한 고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추모로 시작해서 마침표를 찍는 과정으로 흘러간다. 161분 러닝타임 자체가 그에 대한 일종의 헌사처럼 그려젔다. 현실이 영화를 극단적으로 앞서가 버리면서 남은 모두가 느끼는 상실의 고통을 이 영화가 그린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티찰라가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 직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발달한 과학 기술을 보유한 와칸다. 하지만 인간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티찰라의 동생이자 와칸다의 공주 슈리는 오빠가 죽음 직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실에서 무언가에 몰두한다. 오빠를 살릴 무엇인 듯하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티찰라는 숨을 거뒀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다. 와칸다는 여전히 국상 중이다. 통치권은 티찰라의 엄마 라몬다 여왕에게 넘어갔다. 슈리는 연구실에서 뭔가에 몰두 중이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혼돈에 빠진다. 지구상 최강 물질 비브라늄 독점 보유국 와칸다. 티찰라는 생전 지구의 안전을 위해 다른 모든 국가와 비브라늄 공유를 약속했다. 하지만 티찰라가 죽었다. 지구상 여러 나라는 와칸다에게 비브라늄 독점권 해제를 주장하며 압박한다. 이제 세상 모두가 두려워하던 ‘블랙 팬서’가 없다. 와칸다와의 전쟁도 해볼만하다 여긴다. 세상의 이런 시선에 라몬다 여왕은 괴롭다. 남편 트차카 전임 국왕이 사고로 사망했고(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참고) 아들 티찰라가 원인 모를 질병에 또 다시 사망한다. 전 세계 국가들이 와칸다를 압박 중이다. 하나 남은 혈육 슈리는 여전히 오빠의 죽음에 슬퍼하며 연구실에 틀어 박혀 있다. 티찰라 사후 와칸다를 구성하는 부족 원로들도 분열 직전이다. 모든 것이 위기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런 상황 속 상상도 못했던 인물이 와칸다를 방문한다.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해저 도시 ‘탈로칸’의 수호자 네이머. 그들 말로는 깃털 달린 뱀신이란 뜻의 ‘쿠쿨칸’이라 불린다. 그는 뜻밖의 제안을 와칸다에게 한다. 자신들과 손 잡고 이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는 것. 와칸다의 독점 생산 물질 ‘비브라늄’이 탈로칸에도 있었다. 와칸다를 압박하던 여러 국가의 공격이 있었다. 네이머의 제안에 라몬다 여왕 그리고 슈리와 와칸다 최강 부대 ‘도라 밀라제’와 이 부대를 이끄는 장군 오코예는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 고민이 거듭되는 과정 속 슈리가 네이머에게 납치되고 와칸다와 탈로칸은 생각지도 못한 오해를 하게 되면서 전면전에 돌입한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전작에서 ‘블랙 팬서’를 연기한 채드윅 보스만에 대한 추모로 가득하다. 그가 죽기 전 이 영화 초고가 완성됐을 듯하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시나리오는 분명 수정과 각색 작업이 거듭 됐을 것이다. 다시 말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제작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인 셈이다.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든 달리 선택의 방향성은 없었을 듯하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때문에 161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이 눈에 띈다. 이런 결과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관객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전작 자체가 히어로 영화 개념 재정립을 넘어 흑인 문화의 다른 영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기존 히어로 영화 비주얼로 다운 그레이드가 됐다. 히어로 영화의 절대 가치인 주인공이 불가항력적 이유로 교체 됐다. 그래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관객들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결국 영화 오프닝부터 절반지점까지, 티찰라 국왕 추모에 집중한다. 마블 영화 전매 특허인 오프닝 리더 필름(영화 상영 전 등장하는 마블 로고)에서 조차 다른 마블 작품과 달리 온전히 티찰라 추모로 재구성해 상영 됐을 정도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절반 가량을 죽은 티찰라 국왕(현실의 채드윅 보스만) 추모에 집중했다면 나머지 절반은 상실의 공간을 채워야 한다. 즉 새로운 블랙 팬서다. 예상대로, 그리고 당연하게 슈리가 새로운 블랙 팬서로 등장한다. 새로운 블랙 팬서가 된 슈리를 통해 영화는 ‘블랙 팬서’가 지닌 고결함의 의미와 그 무게를 감당하게 한다. 자신의 아버지 마저 죽인 원수조차 용서하며 힘의 고결함과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한 영웅 티찰라가 될지, 아니면 자신의 분노를 감추지 않고 세상을 향해 폭발시킨 티찰라의 배다른 형제 ‘킬몽거’(전작 ‘블랙 팬서’의 빌런)가 될지. 그 선택은 오롯이 새로운 ‘블랙 팬서’ 슈리에게 달렸다. 물론 그의 선택을 우린 모두가 알고 있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서 또 다른 눈에 띄는 점은 빌런 네이머 그리고 그가 다스리는 해저 도시국가 ‘탈로칸’에 대한 재해석이다. 원작에선 고대 아틀란티스의 후예로 그려진다. 하지만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에선 고대 중남미 마야 문명 후손들로 변화시켰다.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일순간 사라진 찬란했던 고대 문명, 그리고 강자와 약자의 관계 속 힘의 균형을 말하고자 하는 설정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DC코믹스 소속 ‘아쿠아맨’을 떠올리게 한다. 마블 측에서 네이머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제작에 대한 의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영화 속에 슬며시 담긴다. 이 장면 역시 ‘블랙 팬서’가 담고 있는 연대를 통한 힘의 균형과 공존의 유지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마블의 영화적 세계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페이즈4의 마무리다. 이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퇴장했다. 호크 아이도 세대 교체를 통한 OTT시리즈가 선보였다. 블랙 위도우는 죽었다. 헐크는 여성 버전이 이미 공개됐다. 앞으로 이어질 페이즈5에선 젠더 교체와 세대 교체가 완료된 새로운 마블의 히어로 군단이 등장할 전망이다. 문제는 전작들이 너무 훌륭했다. 그리고 그 전작을 이끌어 온 주인공들이 너무도 컸다. 세대 교체를 통한 새로운 페이즈의 시작. 이건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마블이란 거대한 세계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됐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그걸 증명해 버렸다. 마블에게 너무 큰 숙제를 남겨 버렸고 그 존재를 인식시켜 버린 결과물이 이번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다. 9일 전 세계 최초 국내 개봉.
P.S 마블을 상징하는 히어로 ‘아이언맨’ 후계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으로 젠더 교체가 된 ‘블랙 팬서’가 다시 남성으로 교체될 수 있단 가능성도 담겨 있다. 해당 내용은 쿠키 영상에 등장한다. 참고로 쿠키 영상은 하나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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