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흥국생명발 채권시장 경색이 보험사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자본 확충이 시급한 보험사들은 채권 발행을 통한 자본 확충으로 방법을 찾지 못하고, 고금리 저축보험 판매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발 채권시장의 신뢰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채권 발행을 검토했었던 보험사들이 전면 재고에 들어갔다.
앞서 흥국생명은 오는 9일 예정된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사실상 흥국생명이 돈을 못 갚겠다고 선언한 것이라 투자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보험사의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실제로 보험사 등 국내 금융사들이 발행한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액면가 100달러였던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의 거래 가격은 콜옵션 미행사 공시 전이었던 10월 가격(99.7달러)에서 72.2달러로 27% 가량 급락했다. 만기가 2025년 9월로 만기가 3년 가량 남은 동양생명의 신종자본 역시 10월 말 83.4달러에서 52.4달러로 거래가가 낮아졌다.
이번 사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생명보험사들이다. 3분기 들어 자본잠식에 빠졌던 NH농협생명은 빠른 시일 내에 자금 확보에 나서려던 계획이 뒤집어졌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자본 확보 시기가 올해가 될 지, 내년이 될지 정해진 바가 없고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자금 확보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것"이라며 "자본확충 방법은 영구채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RBC비율(지급여력비율)이 악화된 KB생명·DGB생명·푸르덴셜생명 등도 유동성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채권 시장이 막힌 상태에서 보험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며 "유동성 확보가 어렵고 국내 금융사의 채권 수요가 줄어든 동시에 채권 금리는 오르고 있어 '버티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KDB생명의 경우 내년 초 콜옵션 만기가 도래한다. 이들이 흥국생명·DB생명에 이어 또 한차례 콜옵션 조건 변경에 나설 경우 채권 시장 경색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보험업계에서는 KDB생명의 콜옵션 연장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매각을 준비 중이어서 채권 발행도 되지 않을 뿐더러, 콜옵션 연기 여부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KDB생명 관계자는 "아직 시간이 있는 관계로 금융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대주주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본 사안에 관한 구체적인 시기, 방식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2025년 9월 콜옵션 만기가 도래하는 동양생명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다. 동양생명측은 "따로 증자나 자금 확보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시납 거치식 보험을 판매해 한번에 현금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선택한 보험사도 있다. 내년 콜옵션 만기가 예정돼 있는 한화생명이다. 한화생명은 기존 4.5% 확정금리형 저축보험의 금리를 5.7%로 1.2%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한화생명에서 구체적인 저축보험 판매액을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는 4.5% 금리에서 1조원을 판매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화생명이 앞서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 역시 채권 발행 계획을 중단한 뒤 내린 것으로, 유동성 확보를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일시납 거치식 보험 판매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보험업계의 대안으로 여겨진다"며 "올해까지는 저축보험 판매경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방안도 검토되고는 있지만 일부 대형 보험사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환매조건부채권은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정해진 가격으로 다시 환매하기로 결정하는 조건으로 매매하는 채권이다. 보험업계에서는 금융당국에 환매조건부채권 매도를 위한 기준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RP 매도가 가능한 보험사는 체력이 있는 보험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회사 상황에 따라 RP 매도가 불가능한 보험사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 흥국생명)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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